[우리, 살자] "왜 그랬을까" 심리부검 통해 본 자살자 공통점 : 심리부검
죽음 언급, 감정기복, 물건 정리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
‘왜 그랬을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럴 수 없다. 고인은 말이 없다. 대신 고인이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며 생각해볼 순 있다. 그렇게 사연을 알고 나면 받아들이는 데 좀 더 도움이 된다. ‘심리부검’이 필요한 이유다.
심리부검은 또 다른 자살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고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징후, 고인들이 보냈던 도움 요청 신호 등을 알아둠으로써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심리부검을 진행해보면 자살 사망자에게 나타나는 여러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유가족을 돕고 자살 예방 정책을 수립·실행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전홍진 교수는 심리부검 전문가로, 그동안 많은 자살 유족들과 만나 심리부검을 진행해왔다. 중앙심리부검센터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통합되기 전까지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지내기도 했다. 전 교수를 만나 심리부검 절차와 심리부검을 통해 확인된 자살 사망자의 특징, 심리부검이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들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로 사망한 고인과 관련된 자료나 유가족 면담 등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1000회 이상 심리부검이 진행됐다. 심리부검을 통해 힘든 상황에 빠진 유가족을 돕고, 자살 예방 정책을 수립·실행하는 데 심리부검 자료를 활용하기도 한다.
진행 절차는?
유가족이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나 지역 자살예방센터 등에 심리부검을 신청하면, 해당 기관에서 유가족 심층 면담을 통해 고인의 자살 전 행동 변화, 스트레스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고인에게 변화가 처음 감지됐을 때부터 사망에 이를 때까지 나타난 모습들을 추적해보는 것이다. 면담은 선별된 질문·체크리스트 등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심리부검 전문가는 어떻게 구성되나?
심리학, 정신건강의학 등 대부분 자살·심리부검 관련 분야에서 일하거나 일했던 사람들이다. 진행 기관에서는 이들이 심리부검 전문가로 활동하기 전 다시 한 번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광역 주도형 심리부검을 위해 지역 단위에서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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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은 언제, 누구와 진행하는가?
보통 고인이 사망한 후 3개월이 지나고 심리부검을 실시한다. 고인이 사망한 직후에는 유가족이 감정적으로 동요된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면담 대상은 고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다. 가족이 가장 좋고, 불가피한 경우 직장 동료와 면담하기도 한다. 주로 배우자가 심리부검을 신청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들을 확인하나?
우선 고인이 사망 당시 어디에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을 파악한다. 이후 고인의 스트레스 요인과 고인에게 나타난 행동 변화, 정신적인 변화들을 모두 확인한다. 자살 사망자의 경우 사망 직전 심리·행동에 변화가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자살 사망자에게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점이 있다면?
크게 언어적·정서적·행동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언어적으로는 사망 전 반복적으로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특징을 보인다. 자신이 ‘죽은 뒤 어떻게 되겠다’는 등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죽음과 관련된 말을 한다. 정서적으로는 화가 많이 나 있고, 감정 기복이 심한 특징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우울하다 좋아지는 식이다. 잠을 전혀 못자는 것 또한 특징이다. 행동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갑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가 하면, SNS를 정리하기도 한다. 실제 심리부검을 해보면 스트레스나 가족 간의 갈등, 채무 문제 등으로부터 벗어나 갑자기 편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외부 스트레스 요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나?
심리부검을 진행해보면 당시에 별다른 문제가 확인되지 않을 때가 있다. 가정이 화목하고 직업적·경제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경우 대부분 우울증, 정신착란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원인이다. 외부 요인과 정신건강 문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과거와 달라진 점도 있을까?
노인의 경우 자살위해수단 중 농약에 의한 자살이 크게 줄었다. 과거 농약을 냉장고에 보관할 때는 홧김에 마시는 사례가 많았지만, 지금은 농약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의료보장이 잘 되면서 질환이나 통증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이 줄어든 것 또한 달라진 점이다. 반면 10·20대 청년은 고립된 상황에서 자살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졌다. 이미 고립된 상황에서 외부와 연결이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 발생 후 2~3년 사이에 생긴 문제들을 심리부검을 통해 발견하고 고위험군을 돕기 위한 방안들을 연구·논의 중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발표한 자살자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10명 중 9명 이상은 생전 주위에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부검이 필요한 이유는?
심리부검을 위해 면담을 받은 유가족의 경우 자조모임에 많이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고인을 떠나보낸 뒤 힘든 상황에서 자조모임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원스톱 서비스’ 등과 같이 초기에 유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결과적으로 심리부검에 참여한 유가족들이 자살을 예방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리부검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유가족이 자살로 인한 사망 사실을 숨기지 않도록 사회 분위기가 개선돼야 한다. 유가족이 심리부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며, 유가족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조 모임을 갖는 문화도 요구된다. 국가에서는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유가족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지 않도록 치료비를 지원하는 등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자살 징후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심리부검을 해보면 자살 전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죽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죽고 싶다고 말하고 물건을 나눠주는 등 자살 징후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접근해서 말을 걸어보도록 한다.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상대방 스스로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하며 자살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확실한 자살 징후가 보이는 사람에게는 실제 자살 생각이 있는지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직접 물어보면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내용이 구체적이라면 위험 징후가 있다고 보고, 즉시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줘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삼성서울병원 제공
전종보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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