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틀 깬다
정부, 300인 미만 일부 업종부터 ‘주52시간’ 틀 깬다
건설-연구개발 등 특정 업종 대상
선별적 근로시간제 유연화 검토
인천에서 건설기계정비공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70)는 최근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중소 건설업은 추가 근로를 해서라도 임금을 더 받길 원하는 구직자가 많은데, 주 52시간제 때문에 임금을 맞춰 주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가뜩이나 힘든 일이라 인력난이 심한데 일감이 몰릴 때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건설기계정비의 경우 건설현장이 멈춘 오후 4, 5시쯤 일을 시작해 다음 날 정비한 기계를 돌려줘야 해 연장근로를 해야 하는 날이 많다. 김 씨는 “우리처럼 특수한 업종이나 영세한 곳은 근로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추진 중인 정부가 300인 미만 건설, 연구개발, 일부 제조업 등 특정 업종에 선별적으로 근로시간제 유연화 적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되면 해당 업종은 ‘주 52시간’ 틀에서 벗어난 근로시간 운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6월부터 두 달가량 진행한 국민 6000명 대상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편 보완 방향을 마련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300인 미만 건설, 연구개발, 일부 제조업 등의 업종에서 연장근로시간을 더 유연하게 쓰려는 수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확인된 업종을 중심으로 유연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근로시간제를 개편하려다 ‘주 69시간’ 논란이 불거진 뒤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던 것을 고려해 필요한 곳에만 선별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참 융통성 없는 정부] 외국에서도 비판하는 '주 52시간 근로제'..."한국 성장 가로막는다"
인력난 中企 “연장근로 제한 풀어야”… 건설-SW개발 등 완화할듯
주52시간제 개편 재시동
“일감 몰릴 때 제대로 대응 안돼”
스타트업-수주산업 등 개편 요구
‘주69시간 역풍’에 일부 유연화
올해 3월 고용부는 현재 ‘주(週)’ 기준인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재 1주일에 최대 12시간까지만 가능한 연장근로를 ‘주 평균 12시간’으로 바꿔 일이 많을 때 몰아서 일하고, 나중에 몰아서 쉬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주 69시간 장기 근로를 조장한다”는 비판 여론에 부닥쳐 대국민 설문을 거쳐 보완하기로 했다.
일부 中企 “일손 없어 주 52시간으론 역부족”
현재 주 52시간제는 주당 ‘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이뤄진다. 앞서 고용부가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는 노사 합의를 거쳐 현재 ‘1주’ 단위인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 연 등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렇게 하면 일이 바쁠 때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인력난이 심한 중소기업이나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는 업종과 직종 등에서 이를 통해 근로시간을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실제로 중소기업계에서는 정보기술(IT)업과 스타트업, 조선 등 수주 산업, 에어컨 공장처럼 계절에 따라 수요가 몰리는 업종 등을 중심으로 근로시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업종이나 업무에 따라 주 12시간의 연장근로로 대응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중소기업은 사람을 추가로 뽑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관계자는 “새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수시로 중간 테스트를 해야 하고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기획 방향이 계속 바뀐다”며 “출시 일정 막바지엔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다른 중소 건설업체 관계자도 “발주자가 원하는 대로 공사 기간을 촉박하게 잡는 데다 대부분 야외 작업이라 기후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며 “공사 막판으로 갈수록 일이 몰려 초과근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사실 연장근로 유연화가 필요한 업종이 많지는 않다”며 “다만 조선업 같은 수주 산업이나 계절적 수요가 몰리는 업종 중심으로 연장근로 규제를 풀어주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했다.
의견 수렴 거쳐 추후 최종안 마련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근로시간제도 유연화를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필요한 업종을 중심으로 유연하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에 발표했던 개편안이 논란에 휩싸인 것도 전체 근로자가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게 돼 불필요한 우려를 키웠기 때문이다.
개편안 발표 직후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점만 부각되면서 국민적 반대 여론이 커졌다. 당시 이른바 ‘MZ(밀레니얼+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도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 개편안에 반대하며 “설령 초과근무가 필요하다는 노동자가 있어도 이는 예외적인 상황인데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입법을 하는 것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제도 보완을 지시해 고용부는 6월부터 두 달가량 일반 국민, 근로자, 사업주 등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과 관련된 인식과 제도 현황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를 토대로 국민 의견을 수용해 제도 개편안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8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근로시간 개편이 모든 업종, 직종에 똑같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직종별, 업종별 차등 적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고용부는 조만간 이번 설문 결과와 함께 개선 방향을 발표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제도 개편안을 다시 마련할 계획이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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