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넷에 쓰는 이력서

 

  “밀양은 기차 타면 금방이지요. 아직 몸도 건강하고요. 작년 설부터 일을 구해봤는데 나이 때문인지 만만치 않고….”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사는 74세 어르신에게서 연락이 왔다. 며칠 전 인력난에 시달린 경남 밀양의 한 중소기업이 70대 마을 어르신까지 동원한다는 기사를 읽고,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고, 잔업과 주말 근무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일흔넷에 쓰는 이력서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이 구직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뉴시스
 

이외에도 각자 사연을 담은 어르신들의 이력서가 메일함에 10통 넘게 쌓였다. 50대부터 70대까지, 자의로는 평생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에 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한 중년 여성은 이번에도 취직이 안 되면 캐나다로 가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3년 전 코로나로 귀국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다시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한국인 기대 수명은 50년 만에 20세 가까이 늘어 83.6세가 됐다. 하지만 자존감과 행복, 경제적 안정까지 고려한 ‘행복 수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하는 어르신과 행복의 연관성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취업자 가운데 37.5%가 ‘건강 상태가 좋다’고 답했다. 일을 하지 않는 고령자(21.9%)보다 더 비율이 높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비율도 일하는 어르신 34.4%, 일하지 않는 어르신 36.4%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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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돈을 버는 상태인 것만으론 부족하다. 73세 최고령 국가대표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카드 게임 종목인 브리지 종목에 출전한 임현씨만 봐도 그렇다. 임씨는 최고령 출전자라는 타이틀보다 자신의 쓰임새를 인정받았다는 것에 감격했다. 그는 출전 소감에서 “(출전은) 깜짝 선물이다. 어깨는 무겁지만 애국심이 생겨났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단순 업무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체 노인일자리 사업의 70% 이상이 단순 업무 중심의 공공형 일자리다.

 

유튜브에는 어르신 구직자들을 위한 면접 팁 영상까지 인기다. ‘노인 일자리 면접 잘 보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선 ‘모르는 게 있을 땐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는 것 어필하라’ ‘면접관에게 존댓말하고 말 끊지 말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 어르신이 단 댓글에는 ‘내일 면접 보는데 영상 참고하겠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청년 취업 준비생 못지않은 간절함이 담긴 글이었다.

 

 

그저께, 어르신들의 이력서와 연락처를 밀양의 중소기업 사장님에게 전달했다. 겸연쩍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신입 이력서지만, 행간에는 수십년 세월의 경력이 담겨있음을 알고 있다. 최고참 신입 어르신들의 앞날에 좋은 소식이 들리길 간절히 바란다.

신지인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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