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건설 생태계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건설 생태계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 종합연구소 특임연구위원
잇단 부실공사가 드러나 국민이 불안해하고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 재산 목록 1호로 꼽히는 주택이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사태를 방관할 수 없어 국민의 경계심이 크게 높아졌다. 일부 언론은 불안과 불만 심리를 자극하는 용어를 검증 없이 쏟아낸다. 이런 현실 앞에서 관련 산업체는 한숨을 쏟아내고 한탄한다. 산업체가 침묵하는 사이에 정부는 10월 중 종합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잇단 부실시공에 불안감 커져
남 탓하니 영역 다툼으로 비쳐
민간 주도로 건설 비전 내놓길
한숨과 한탄의 울타리 안에 건설이 갇혔다. 울타리 안에서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학술단체·사업자단체·산업체·기술자 등이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낮은 보상, 턱없이 부족한 공사 기간, 불합리한 제도 등을 부실공사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주장의 한편에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해에 따라 남 탓으로 돌리기를 반복한다. 반성이나 대책 수립보다 변명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국민 눈에 울타리 속 업역 다툼으로 비칠 뿐이다.
종합대책 수립은 문제 발생의 근본적 원인 찾기에서 시작하는 게 정석이다. 사고가 발생하자 곧바로 총체적 부실, 전관예우, 이권 카르텔, 부실한 감독·감리 등이 주원인이라는 결론부터 내리려 한다. 1999년 이후 9차례나 정부 주도로 수립했던 각종 대책이 일회성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
7년 전 일본 요코하마 고급아파트에서 2.4㎝ 부등침하가 발견됐다. 입주민과 시민의 불안이 커졌다. 아파트를 공급한 민간시행사가 스스로 학술단체와 사업자단체 기술진을 동원해 7개월 동안 정밀하게 조사한 것과 차이가 크다. 이번에도 전례에 따라 “총체적 부실”로 결론 내고 대책은 일회용 반창고 땜질식 처방으로 끝날까 우려스럽다. 법과 제도가 부실공사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다시 법과 제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의 울타리는 국민소득 10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민의 눈높이는 3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격차가 너무 크다. 기술보다 영업을 우대한다. 현장에 기술과 시스템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리자와 다단계 하도급이 채웠다. 산업체와 기술자의 윤리마저 실종됐다. 청년층의 건설업 진입이 지난 20년간 75%나 줄었다. 총인구 감소율보다 5배나 높다.
최일선에서 일하는 기능인은 숙련도가 낮은 외국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기술자 2명 중 1명이 건설업을 부정적으로 본다. 각종 대책이 쏟아놓은 문서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각종 명목의 외부 방문단은 현장을 지켜야 할 기술자를 사무실에 가둔다.
해외현장에서 유능했던 기술자를 국내에서는 무능한 기술자로 둔갑시키는 게 국내 제도다. 지금의 건설 생태계로는 적정한 가격과 공사 기간을 보장해도 부실공사나 안전사고를 제로로 만들기 어렵다.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수준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겨 볼 때다. 건설 생태계에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건설 생태계의 수명이 끝났음을 이미 시장은 알고 있었다. 땜질식 또는 졸속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왜 이제 '건설 고부가가치' 외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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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일상생활은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 교통은 물론 전기와 물은 생활필수품이다. 쓰레기와 하수처리 등은 국민이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발생한다. 앞에 제시한 몇 가지가 생활 인프라다. 헌법에 국민을 재해·재난으로부터 보호하고 쾌적한 주거를 공급할 사명을 명시한 이유도 국민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프라는 국민과 국가가 존재하는 한 포기 할 선택권이 없다. 인프라를 안전하고 쾌적하게 공급해야 할 역할이 건설에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건설에 비난이나 폄하 일변도보다 파괴적 혁신을 주문하는 게 정답이다. 깎아내리면 할수록 피해는 국민의 삶과 생명으로 전가된다.
법과 제도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산업이 되지 않아야 한다. 국가 건설의 비전과 목표를 민간주도로 개발해 국민에게 약속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지만 신생태계 구축은 긴 시간과 지속성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라는 열차에 탑승하는 민간 주도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게 확실한 울타리 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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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 종합연구소 특임연구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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