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누구랑 살고 싶나” 물었더니: 한숨만 푹푹
자녀·부모 ‘샌드위치 부양’ 부담
귀촌보다 대도시, 아파트 선호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54)씨는 맞벌이로 월 700만원 가까이 번다. 시세 12억원대 아파트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3~4년 뒤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얼마 안 남은 은퇴 후에도 부모와 자녀 둘을 계속 부양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자녀 교육비로 매달 수백만원이 나간다. 부모에게 꼬박꼬박 용돈을 보내고, 병원비를 드리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마이너스 통장 잔고는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퇴직 후 돈을 벌 만한 일은 보이지 않는다. 김씨는 “달랑 집 한 채 있는데 책임질 가족은 많고, 고정 수입은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정년을 5~10년 남긴 50대 대도시 샐러리맨들이 ‘소득 절벽’을 앞두고 수많은 암초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연봉이 두둑하고, 내 집 마련에 성공하는 등 현재 살림살이는 대체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은퇴 준비, 재취업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또 부모와 자녀의 ‘샌드위치 부양’ 의무에 낀 채 허덕이고 있었다.
이는 본지가 국내 최대 은퇴 연구소인 ‘미래에셋 투자와 연금센터’와 공동으로 대도시에 사는 만 50~56세(1968~1974년생)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설문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 대상은 수도권과 6개 광역시에서 사기업에 다니는 샐러리맨으로 한정했다. 자영업자를 비롯해 교사, 공무원 등은 제외했다. 비교적 안정적 소득을 올리고 있으나 공무원·교직원 연금과 같은 보장된 노후와 거리가 있는 퇴직 예정자들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기 위해서다.
연 7600만원 넘는 소득, 7억 넘는 자산에도 암울
설문 결과를 보면 50대 대도시 샐러리맨의 소득은 높은 편이다. 절반 정도(55%)가 맞벌이인 가운데, 월 평균 가구 소득은 641만원(연 7692만원)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국내 소득 상위 20~40%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이 605만원인데 이보다 36만원 많았다. 자산도 적지 않았다. 4억9000만원 정도의 주택, 1억2900만원가량의 금융자산(개인연금 포함) 등을 합쳐 평균 7억4860만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는 평균 1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50대 대도시 샐러리맨의 절반 가까이(47%)는 “5년 안에 직장에서 퇴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반면 은퇴 후 필요 자산에 대해서는 절반 정도(48.1%)가 “50% 미만으로 준비돼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42.5%)은 퇴직 시 가장 걱정되는 것으로 ‘당장의 생활비 부족’을 꼽을 정도였다.
재취업 전망도 암울했다. 64%는 퇴직 후 “재취업이 잘 안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10명 중 7명 정도(70.8%)는 퇴직 후 예상 소득 경로로 재취업을 꼽았다. 더 이상 일할 의향이 없다는 사람은 7.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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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부모 ‘샌드위치 부양’ 부담
이들이 재취업을 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부양 부담 탓이 컸다. 양가 부모나 자녀에 대한 부양 부담에서 자유로운 경우는 10명 중 2명(21.3%)뿐이었다. 친부모와 자녀에 대한 월 평균 부양 비용은 각각 119만원, 53만원(배우자 부모 41만원)이었다. 특히 ‘자녀를 취업 전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답변이 43.9%에 달했다. 심지어 10명 중 2명(21.3%)은 ‘결혼 전까지 도와줘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자녀 분가 비용으론 평균 9488만원을 예상했다.
그러나 자녀에게 노후를 기댈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62.8%가 “(지원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활비와 의료·간병비를 지원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응답은 3.4%에 그쳤다. 미래에셋 투자와 연금센터 박영호 리서치팀장은 “2차 베이비부머에 해당하는 현재 50~56세는 1차 베이비부머에 비해 부모의 평균 수명이 늘었고, 자녀의 취업과 출가 시기가 늦다”며 “막대한 부양 부담을 떠안으면서 정작 본인들은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귀촌보다 대도시, 아파트 선호
이번 조사에서 50대 대도시 샐러리맨들은 귀촌이나 낙향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다는 특징도 나타났다. 이전 세대에서는 은퇴와 함께 지방 소도시로 내려가거나 전원 생활을 꿈꾸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젠 대도시와 아파트에 살기를 원했다. 전체의 절반 정도(991명)가 은퇴 후 이주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희망 거주지로 서울(21.8%)과 수도권(42.4%)을 압도적으로 꼽았다. 농어촌을 포함한 지방 소도시 선호는 15.1%에 불과했다. 원하는 거주 형태도 ‘아파트’를 1순위(64.2%)로 꼽았다. 해외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은 4명(2%)뿐이었다.
한편 이들은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모시고 살 의사는 높지 않았다.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는 대답은 139명(7%)밖에 없었다. ‘배우자와 둘이서만 살겠다’가 1116명(55.8%)으로 가장 많았다. ‘혼자 살겠다(이혼·사별 포함)’는 438명(21.9%), ‘배우자·자녀와 함께 살겠다’가 253명(12.7%)으로 뒤를 이었다.
김지섭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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