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설인 시한부 '최원석 회장'의 삶
시한부 선고 받은 재벌 회장을 만나다.
동아그룹 최원석 전 회장 인터뷰
건설 역사에 한 획을 긋다
재계 서열 10위까지
동아건설 창업주 최준문의 아들이다. 1943년 충청남도 대전부(현 대전광역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동아건설 및 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 등을 거쳐 동아그룹 회장이 되었다.
[정치]
1981년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서울 중구 2선거구)에 민주정의당으로 출마해 당선 되었다.
[사업]
20세기의 대역사로 불리우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하고 지휘하면서 동아건설을 세계적인 건설사로 성장시켰다. 이 일로 카다피와도 친해져서 카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카다피도 그를 헤잔님(회장님)이라고 친근하게 불렀을 정도.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경영권을 내놓아야 했다.
최원석 본인의 주장으로는,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있긴 했어도 1기 신도시의 성공으로 인해 동아건설의 재정상태는 매우 우량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포 간척지 개발사업(현 청라국제도시 및 검단신도시가 들어선 부지)에 눈을 돌려 거금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현 수도권 매립지가 들어선 부지를 인천시와 환경부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농지로 묶여있던 청라와 검단 일대의 간척지를 택지와 업무용지 등으로 변경을 요청했으나 외환위기 도중에 출범한 국민의정부가 변경 요청을 모조리 거절했다고 한다.
차입은 물론 최 회장의 개인 사재까지 털어서 무리하게 진행한 사업이였기에 동아건설은 물론 대한통운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자금줄까지 마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주거래 은행과 채권단이 그룹을 해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최 회장의 퇴진과 최 회장 일가 지분 및 선산을 포함한 부동산 등 사유재산의 헌납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선친이 일군 그룹을 공중분해시키기 싫었던 최원석 회장이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및 지분 및 사유재산 헌납에 동의하고 물러났지만 결과는 동아그룹의 공중분해였다고
동아건설산업의 재도약...옛날 명성 되찾을까?
https://conpaper.tistory.com/52422
동아건설 부도 후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동생으로는 최원영 전 국제언론문화사(현 시사저널사) 회장 및 예음문화재단 이사장이 있다.
[결혼]
4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했다.
그는 지금 말기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다.
그의 나이 80세
파란만장 했던 그의 삶에 건설인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과 측은함이 함께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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