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에 왜 여인들은 가슴을 열어 놓고 다녔을까

 

프랑스 판화가 폴 쟈꿀레(Paul Jacoulet, 1896-1960)의 작품

 

조선 말기에 왜 여인들은 가슴을 열어 놓고 다녔을까

 

위 그림은 프랑스 판화가 폴 쟈꿀레(Paul Jacoulet, 1896-1960)의 작품으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조선 말기엔 여인들이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그림도 서양 화가가 그린 것인데, 조선인과 서양인의 조우를 그리고 있다. 정신없이 자료수집을 하다가 미처 기록을 해 두지 못했지만, 그 당시 영국인가 프랑스인가 잡지에 실린 삽화라 한다. 그림을 보면 항아리를 머리에 인 아낙이 가슴이 드러나게 옷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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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상의 色手語筆 | 여성들의 반란

조선 여자들 가슴 드러내기

 

요즘 그녀들은 '꼴린 대로 해'

 

   조선 후기 여성의 옷은 은폐와 노출이라는 성적 유혹의 양대 기호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치마는 가급적 부풀리고 저고리는 짧게 올린다. 왜 그랬을까? 벙글어진 치마의 곡선과 젖가슴도 채 못 가리는 저고리 섶의 라인은 제각각 에로틱 존을 강조하는 장치들이다.

 

치마 속은 사실 텅 비어 있다. 헛것으로 부풀어오른 치마는 그 속에 자유롭게 노니는 무엇을 마음껏 상상하도록 유혹하는 기제였다. 한 겹 커튼만 걷으면 바로 라이브가 가능한 그런 무대가 안에 있다는 기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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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여인이 춤을 출 때 치마 밖으로 쏙 삐져나온 외씨버선 발끝에서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 사람이 특별한 변태라 그런 게 아니라, 허풍처럼 꼭꼭 감싼 치마 속에서 살짝 성적인 정보를 내밀었을 때 임팩트가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서구의 빅토리아 시대가 이런 은폐 미학의 절정기였다. 평생 여성의 다리를 본 적이 없는 남자도 있었다는데 그들은 여성에게는 다리가 없다고 단정할 정도였다. 또 간혹 슬쩍 드러난 여자 다리를 보고 상사병에 걸린 자들도 있었다.

 

가슴은 또 왜 이런가? 꽉 조인 저고리는 어깨를 아프게 하고 벗을 땐 소매가 후두둑 뜯어질 정도다. 이런 의상은 기녀들이 먼저 퍼뜨린 패션이다. 기녀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의식하는 직업을 지녔다. 당연히 그 의상은 남자들이 음흉하게 따라가는 그 눈길에 맞춰 기획됐다. 특히 저고리는 겨드랑이도 가리지 못할 만큼 줄어드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가리개용 허리띠가 등장한다. 이른바 ‘조선 브래지어’다.

 

저고리가 짧아지니 가슴 사이즈가 문제가 되었는데, 요즘처럼 큰 것을 과시하는 풍조로 흐르지 않고, 가슴이 크지 못하도록 ‘졸잇말’이라는 베로 된 졸이개를 만들어 항상 입고 다녔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커다란 가슴을 부끄럼 없이 내놓고 다니는 사진들이 가끔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이건 무슨 변고인가 하고 탄식한다면 그건 ‘동방예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유방이 섹슈얼한 기호로 바뀐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중기 이후다.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표시로 그랬단다. 이제 할 일을 마쳤다는 선언을 가슴으로 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치마의 강조는 둔부의 크기를 과장함으로써 출산 파워를 홍보하는 행위라고 보인다. 조선 패션은 기녀의 ‘유혹’ 장치와 여염집 규수들의 ‘과시’ 장치가 기묘하게 접근한 결과물이었다면 지나칠까?

 

그러면 역으로 가슴은 골짜기를 드러내고 가슴띠를 노출함으로써 그 안에 숨겨진 콘텐츠를 강조하는 반면, 치마는 거침없이 짧아져 거즈 한 장처럼 붙어 있는 속옷을 가리는 데도 힘겨워지는 요즘의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성들이 견지해온 ‘은폐의 매력’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일지 모른다. 숨기는 전략이 보이는 전략에 비해 약발이 먹히지 않게 됐다는 말이다. 더 이상 은폐하면서 유혹해야 할 사회적 욕망이 사라지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출산의 의무감도 옅어지고 사내를 숙주 삼아 생계를 꾸려가는 시스템도 상당히 깨지지 않았는가? 다만 전방위에서 쏟아지는 사내들의 시선만 필요할 뿐이다. 그 시선들은 여자들의 자아만족에 꼭 필요하다. 자신의 매력을 값어치로 재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출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기실 오래된 성적 유혹 체계와 역할 양상을 바꾸려는 혁신이기도 하다. 모두 벗고 다니면 여성들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유혹 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남성 또한 유혹에 홀리는 방식이 지금보다는 훨씬 둔감해져야 한다. 다만 지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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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다 벗고 다니지는 않으면서, 노출은 하루가 다르게 기발해진다. 남성 관객들은 종래의 성적인 잣대를 여전히 지니면서, 아찔한 상황에 마치 목석처럼 둔감한 척 견뎌내야 하는 모순 구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각종 성적인 문제들은 노출의 시차(時差)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의 몽정(夢精)과 맥이 닿는다. 흥분되나? 치한 같으니라고! 당신이 졌다. 무슨 책에서 강조하듯 ‘둔감력’을 지니라는 말이다.

 

‘꼴리다’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음경(陰莖)이 흥분하여 일어나다’는 뜻이 있고 ‘어떤 일이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불끈 화가 나다’라는 의미로 속되게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 뒤의 뜻은 요즘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음경이 흥분되어 일어난다면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보이는 반응이다. 그런데 음경은 남성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 동사는 여성을 주어로 해서 쓰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내들이 이 말을 워낙 즐겨 써서 그런지 요즘엔 여자들도 쓰는 말이 되었다. ‘내키다’ ‘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다’와 같은 말로 본다.

 

하지만 ‘꼴리다’와 ‘내키다’는 제법 다르다. 성적인 행위에서 생겨난 말이라는 점 외에도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꼴리는 상황은 내키지 않을 때도 생겨난다. 유혹에 스스로 발휘하는 제어력은 한계가 있다. 그렇게 도가 높다던 지족선사가 황진이에게 넘어간 일이 어찌 내켰겠는가? 그저 꼴렸을 뿐이다.

 

둘째, 꼴리는 일은 음경이 거총(擧銃)하는 방향성이 명확하다. 성기의 끝이 향한 곳에 대상이 있어야 한다. 내키는 일은 저쪽에 있는 대상과 내 마음을 잇는 접속일 뿐이다. 꼴리려면 그 방향으로 향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뭔가 찌를 태세가 돼야 한다.

 

셋째, 꼴리는 일은 지금 하지 않으면 금방 식는다. 내키다에도 비슷한 의미가 숨어 있지만 꼴리는 쪽이 훨씬 더 다급하다. 그리고 꼴리는 일은 집중이 중요하다. 내킬 때는 다만 하느냐 안 하느냐 정도에서 결정을 내려주면 되지만, 꼴리면 뒷일까지 책임져야 한다. 꼴리기만 하고 문전처리 미숙으로 귀국하면 공항에서 계란 맞을 일이다.

 

넷째, 꼴리는 일은 드러나는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시간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뛰어나갈 때 항상 불시에 하체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얼마나 고심했던가? 특히 여학생들과 함께 뭔가 해야 하는 행사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키다는 마음의 변화에 불과하므로 입만 다물면 된다. 꼴리면 피가 몰리고 흥분이 생겨나고 그것을 추동력으로 해서 열정으로 변화한다. 꼴리는 것은 육체이며 외부인 반면, 내키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꼴리는 일이 훨씬 액티브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꼴리는 일은 수치감을 숨긴다. 물론 건전한 육체의 정상적인 반응임에도 오랫동안 성적 감금 상태에 있었던 음경은 이것을 깊이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함부로 꼴리면 안 된다는 자물쇠 마음까지 항상 들고 다닌다. 꼴리는 일에는 신중을 요구하는 경고문이 늘 붙어 있다. 그래도 꼴리나? 그러면 마음대로 해. 바로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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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리는 일이 남녀 모두 애용하는 말이 되고, 성기의 확장 현상과 상관없이 어떤 일에 보이는 열의를 뜻하는 말로 되어간다는 뜻은 어떤 의미일까? 남자들만이 지니던 금기의 영역이 깨지고 ‘꼴리는 일’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방향으로 변질되면서, 그 근사하던 일을 물타기하는 것은 아닐까?

 

여자들이 가짜 성기를 달고 ‘꼴리기’에 합류함으로써 남자들이 사회적 발기부전에 시달리게 되지는 않았을까? 여성 노출이 ‘꼴림을 권하는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자 세우기가 어려워질지 모른다. 노출에는 성적 전복을 노린 치명적 계략이 있다. 이렇게 보니 ‘둔감’이 남자 잡네!

중앙일보

jmagazine.joins.com/art_print.php?art_id=287486

 

 

 

 

조선 여성의 ‘젖가슴 사진’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

그녀들의 ‘미니저고리’가 ‘아들자랑’이 된 사연

 

전보경 이화여자대학교 논문 중에서

 

현대의 ‘한국인’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서구인들에 의해 재현된 조선 여성의 젖가슴 노출 사진을 ‘우리의 과거’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아들자랑’이라는 서구인들의 캡션을 반갑게 전유한다.

 

조선 후기 하층계급에서 아들을 낳은 여성이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 젖가슴을 내놓고 다니던 풍습이 있었고, 그 때문에 사진 속 여성들이 젖가슴을 내놓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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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조선여성의 노출된 젖가슴은 아들자랑이라는 단일한 이유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연구자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젖가슴 사진’을 둘러싸고 조선 여성들의 드러난 젖가슴이 기억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즉, 본 연구는 매체를 통해 과거가 기록으로 남고 그에 대해 ‘아들자랑’이라는 지배적 기억이 구성, 전승되면서 효과가 발휘되는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보경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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