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처하는 법
죽음을 후회하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
호스피스 김여환 의사
저서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싸운다
왜 돈돈돈
죽은 후에 장례식 오는 것은 의미 없어
한번이라도 살아 생전에 찾아봐야
(편집자주)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개인의 삶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지만 죽음으로써 생이 마감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류 보편적인 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늘 그것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내가 불치병이나 큰 병에 걸려 죽을 상황이 아니라도 나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사람들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무렵은 20대 후반 무렵이었다. 그 전에는 가족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부모의 죽음은 그럴 만한 시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한데, 죽음을 염두에 두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그에 적합한 때는 없다는 것, 그러니까 ‘죽음엔 때가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치 않아도 도처에서 죽음을 학습할 수 있었다. 스물여덟, 30대 초반의 직장 동료가 위암 중기 판정을 받았다. 평소, 자주 배앓이를 하며 조퇴를 하긴 했으나 그 정도의 심각성은 당시의 본인도 주변인인 나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랬던 것이 돌연 ‘큰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수술과 치료를 통해 회복되긴 했으나, 그 당시의 내 심리 상태는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괜히 위가 불편한 것 같아, 내시경도 받고 그 외 장기들의 초음파 검사까지 받았다. 그때부터 약간의 건강 염려증이 생긴 것도 같았다.
이후, 죽음이라는 명제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경우는 늘어만 갔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이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병으로 죽음을 맞는 경우들을 마주하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자’라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는 상황. 그렇게 나는 삶의 저변인 죽음을 통해 유한한 삶의 참된 가치를 알게 됐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던 중, 내게 직접적인 영감을 줬던 영화 ‘목숨’을 관람하게 됐다. 2014년 12월에 개봉됐던 이 작품은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스케치한 다큐멘터리영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이는, 호스피스 병동의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에 임박한 가족들을 수술대 위에 올린다. 환자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은 채, 수술과 온갖 생명 연장 장치들을 몸에 부착시킨 채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게 ‘만든다’. 정작, 살아있는 동안은 소홀했으면서 죽음에 임박해서야 ‘하루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한데, 이 방법이 정말 죽음에 임박한 이들을 위한 길일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두는 것은 참으로 그들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영화 속 환자들과 그들 가족들은 ‘의식과 의미 있는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었다. 영화 속 환자들은 마지막까지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이렇듯 영화는, 삶의 마지막에 직면한 이들을 통해 ‘의미 있게 삶을 마무리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내가 이 작품을 통해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다면,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이다.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 환자들 옆을 지키던 이들은 가족이다.
당시의 나는 오롯이 내 앞날, 나만의 성공을 위해서만 달렸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거의 매일이 약속으로 꽉 채워졌던 시기도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먼 지역을 하루 만에 오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과의 만남 횟수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하지만, 삶에서, 아니, 삶의 끝까지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이후 나는 가족모임을 기획해,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모여 여행을 떠나자고 다짐했다. 이 기획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몇 해 전 추석 연휴. 나의 외할머니가 영면에 들었다. 엄마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며 후회했다. “자식들 키우느라 제대로 된 여행도 못 가고. 나는 딸 덕분에 놀러 많이 다니는데, 나는 여행도 못 데려가고.” 나는 말했다. “엄마, 그러니까 살아있는 동안 잘 해야 돼요. 후회 해봤자 소용없어요.”라고. 그렇게 모진 딸은, 엄마의 아픔에 대못을 박기도 했으나, 죽음을 학습한 몇 해가 된 나는 비교적 덤덤하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엄마에게도 “받아들이자, 살아있는 사람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며 건강한 앞날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그렇게 나는, 실질적인 죽음을 마주하면서 한층 더 깊은 죽음의 학습을 체험했다.
2018년 봄. 죽음과 가치 있는 삶을 한 번 더 학습할 수 있었던 ‘있는 것은 아름답다’ 사진전 관람 역시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사진가 앤드루 조지에 의해 2년여의 기간에 걸쳐 완성된 이 프로젝트의 배경이 된 장소는 호스피스 병동이다. 앞서 소개된 영화 ‘목숨’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스무 명의 죽음을 앞둔 이들의 사진과 그들의 생각을 담은 인터뷰 글을 만나볼 수 있었던 이 전시회는, 나 뿐만 아니라, 관람자 모두를 숙연해지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전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현재에 충실하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것‘과 ’아낌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어차피 겪을 일을 겪고 있는 거예요. 제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세요. 인생에서 그 외에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해요. 다른 사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순 없어요.‘
위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는 죽음의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어차피 겪어야 할 죽음 앞에 놓인 수많은 시간들, 즉 삶의 순간만이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매 순간 역시 한 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20대 후반부터, 죽음에 대한 학습거리들을 찾아 헤매왔다. 이 글에서 소개했던 영화와 전시회, 그리고 실질적인 죽음 혹은 병에 대한 간접 경험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상기시켜주는 요소들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큰 깨우침을 전하는 인물들은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다. 사실, 아무리 학습을 거듭해도, 죽음에 임박하지 않은 우리는 그것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을 직감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구자들을 통해 학습할 수밖에 없다.
‘왜 우울하게 죽음을 학습해?’라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직시함으로써 삶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학습’에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죽음에 대한 학습은 삶에 대한 가치를 드높여줄 뿐만 아니라, 생을 ‘잘 마감하는 법’에 대해서도 재고(再考)하게 만든다. 삶에 끝에 선 사람들은 철학자가 된다. 눈을 감기 전,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후회 없는 삶’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라면 좋아하는 일(꿈)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읽은 인상 깊었던 책이 있다. 90세에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은 미스 노마의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한 캠핑카 여행기를 담은 실화 도서다. 생애 마지막을 병원이 아닌, 가족과 함께 모험 천만한 캠핑카 위에서의 삶을 택한 할머니. 그녀의 선택은 자기 주도적이었고, 이로 하여금 노마의 가족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게 된다.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삶의 가치는 자기주도적인 선택과 실행력과 가족애였다. 죽음을 다뤘기에 우울할 것 같다는 편견은 고이 접어두길 바란다. 이 책은 유쾌할 뿐 아니라,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실제로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유쾌한 영화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로브라이너 감독, 2007)’과 ‘라스트 홀리데이(웨인 왕 감독, 2006)’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죽음에 임박한(임박했다고 생각한) 이들의 마지막을 보여주며 감상자들로 하여금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게 만든다.
무엇이든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으로, 나는 ‘메멘토 모리 여행’을 떠나곤 한다. 이것이 신체가 건강할 땐 인지하지 못하는 삶의 유한성을 학습하는 나만의 여행법이다. 책과 영화, 전시회 등을 통해, 인간의 숙명을 학습하는 것. 그럼으로써 나는 배웠다. 지금의 게으름이 훗날의 후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지금 행하자. 그리고 함께할 수 있을 때, 내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자.
최따미(최다함) 우버객원칼럼니스트(영화 인플루언서) 매일경제
호스피스 김여환 의사
죽음을 맞이하기 전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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