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잃은 공학 과학...“애들은 의대 보내야”

 

사례 1) 주부 A씨는 아직도 남편의 ‘명퇴’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전교 1등으로 고교를 졸업한 남편은 과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명문대 공대에 진학했다. 같은 학교 의대 수석 입학생의 성적과 비슷했다고 한다. 집안 사정으로 유학을 포기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남편은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 승진도 빨랐다. 하지만 사내 파벌에 휘말리면서 50대 문턱에서 조기 퇴직해야 했다. 한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남편은 중소기업에 재취업했지만 ‘과학자의 자부심’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보다 고교 성적이 뒤처졌던 동기들은 의대 졸업 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60대 후반의 의사 B씨는 공대 전자공학과를 지망했지만 성적이 안 돼 의대에 진학했다. 대학병원 교수로 정년 퇴임(65세)한 그는 다시 종합병원에 재취업해 지금도 환자를 보고 있다. 당시 공대에 진학했던 우수한 고교 동기들은 은퇴해 집에서 놀고 있다. B씨는 75~80세 정도에 완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그의 선배 의사들은 80세 넘어서도 일하는 사람이 꽤 있다.

 

3)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참석한 ‘제4회 청년 과학기술인 포럼'(2일)에서 청년 과학자들은 “어렵게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아도 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폭이 좁고 연구 트렌드가 자주 바뀌어 대학원 졸업 후 진로가 막막하다. 과학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과학과 공학의 차이 brunch.co.kr/@elang/96

 

위의 사례만 봐도 의대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의대 뿐만 아니라 치과대, 한의대, 약대로도 성적 좋은 고교생들이 몰린 지 꽤 됐다. 명문대 공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도 40~50대에 ‘잘리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뛰어난 이과 인재들이 ‘평생 면허’가 부여되는 의료 분야로만 집중되고 있다. 의대 졸업 후 병원에 취업해서 상사 눈치 보기가 싫으면 당장 사표 쓰고 개업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고교 전교 1등이 의대보다는 이공계에 진학한 경우가 많았다. 1960년대는 화학공학과, 70~80년대는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등이 고교 수석 졸업생들이 선호하던 이른바 인기과였다. 의대에도 우등생들이 진학했지만 이공계 열풍에 밀렸다. 거리마다 ‘과학 입국’(과학으로 국력 육성) 표어가 내걸리고 중고생들이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를 꼽던 시절의 얘기다. 이공계는 대학 졸업 전에 대기업들이 스카우트 전쟁을 벌이고 취업해도 대부분 정년이 보장됐다. 정부출연연구소의 과학자 정년은 대학과 같은 65세였고 연봉을 더 많이 주는 곳도 적지 않았다.

 

이공계 열풍은 조선, 반도체, 스마트폰, TV-세탁기 등 가전 분야에서 세계 1위 시대를 여는 디딤돌이 됐다. 전교 1등들이 공대, 이과대로 몰려가 ‘과학 입국’을 이끌었다. 지금도 미국, 유럽 중심지에서 우리나라 전자제품 광고판을 보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전자회사의 외주 생산기지였던 한국이 세계 1등으로 올라선 것은 중고생 때부터 꿈을 키운 청년 과학자들의 힘이 바탕이 됐다.

 

 

철옹성 같았던 이공계의 직업 안정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명퇴’란 말이 처음 나왔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분수령이었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빌미로 사내 과학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명퇴 카드’에 재미를 붙여 수시로 연구 인력을 줄였다. 40대 중반에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과학 입국’ 자부심은 사그라들었다. 너도나도 평생 직업이 보장되는 의사, 약사 면허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가 평생 직업이 보장되는 의료 분야 ‘면허증 전성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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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위기’라는 용어가 나온 지 25년이 지났다. 아예 포기한 것일까? 이공계 위기를 강조하던 그 많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우수 인재들의 집합소였던 공대, 이과대는 의대로 가는 중간 정거장이 되고 있다. 공대에 적을 둔 채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미국 등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공계 인재들은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취업하고 있다. 한국 대학-기업의 복잡한 인맥 관계, 사내 정치가 싫고 언제 버려질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학 입국’을 주도했던 국내 과학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이제 중년이 된 과학자들은 미래가 늘 불안하다. 대기업 과학자들은 사실상 60세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다. 40대 중반만 돼도 명퇴를 의식해야 하는 직종에 어떤 인재들이 지원하겠는가?

 

 

역량 있는 과학자들이 의사들처럼 나이 들어도 연구실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사기업이 못하면 국회-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서 이들의 노하우를 더 활용해야 한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자꾸 사라지는데 어떻게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대기업에서 실직한 전교 1등 남편은 공부 잘하는 자녀에게 의대 진학을 권하고 있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한때 과학자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졌던 그는 고교 동창회에 나가면 풀이 죽어 돌아온다. 과학자 아버지가 자녀에게도 의사가 아닌, 과학자를 권하는 날이 다시 와야 한다.

 

곪을 대로 곪은 ‘이공계 위기’가 한국 과학계-기업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과학고 학생들은 숨어서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차라리 ‘과학’이란 단어를 떼버려야 한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코메디닷컴(https://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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