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도전기 (2) [박상도]

 

도배 도전기 (2) [박상도]

도배 도전기 (2)
2022.06.16

“일단 벽지를 다 뜯어내고 초배부터 해야겠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자,

“그거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냥 지금 도배지 위에 붙이면 안 되나? 합지는 그 위에 도배를 할 수 있다고 했잖아?”라고 물어봅니다.


“실크 벽지는 ‘후쿠루’로 해야 한다고 하잖아? 초배를 해야 후쿠루가 가능하잖아…” 라며 달리 방법이 없다는 투로 얘기를 하자, 아내가 정곡을 찌릅니다. “그렇긴 한데 우리가 그걸 할 능력이 될까?”

초배 작업을 알아보려고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봤습니다. 벽지를 다 떼내고 콘크리트만 남은 상태에서 제대로 초배를 하려면 우선 벽면을 평탄하게 다듬어야 하고, 그 이후에 콘크리트와 석고보드가 만나는 지점과 새시와 벽면이 만나는 각종 이음새가 떠 있는 경우 충전재를 바르는 퍼터 작업을 하거나 ‘네바리’ 작업을 해야하는데, 우선 초배용 풀은 콘크리트에 초배지를 직접 붙여야 하기 때문에 일반 풀이 아니라 목공용 본드와 도배용 풀을 섞어서 만들어야 하고 네바리 작업을 위해선 삼중지와 운용지를 잘 이용해야하는 등등 고려해야 할 변수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먼저 여기서 일본말로 된 용어부터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먼저 ‘후쿠루’는 벽지 전체를 벽면에 밀착하지 않고 네 귀퉁이만 붙여서 시공하는 걸 뜻합니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선 정배(正褙, 초배를 한 뒤 정식으로 하는 도배)를 하기 전에 초배 작업 단계에서 초배지를 벽면에서 띄우는 시공을 단단하게 해줘야 합니다. 초배는 높이 1.2m 정도 되는 초배지를 벽면에 가로로 붙여 줍니다. 이때 초배용 풀을 벽면 전체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걸레받이 바로 위와 콘센트, 스위치 주변에 살짝 바르고, 그리고 초배지 윗부분이 닿는 부분에 가로로 길게 한 줄 칠해서 바릅니다. 이렇게 벽면의 아랫부분 초배를 먼저 하고, 위쪽을 붙이는데, 윗면의 초배 작업은 천장 몰딩 바로 아래와 세로 귀퉁이 부분만 풀칠을 해서 붙여준 후, 하루 정도 잘 말리고 나면 그때 본격적으로 도매를 하는 정배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즉, 초배작업에서 이미 가운데 벽면을 띄워서 시공을 하는 것이고 귀퉁이에 바른 풀의 힘만으로 도배지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초배가 주름이 없이 팽팽하게 잘 되어야 정배를 했을 때 하자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초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집을 지을 때, 콘크리트 작업을 자로 잰 듯이 깔끔하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벽면이 울퉁불퉁한 곳도 있고, 목공이나 전기 작업을 하면서 갈라진 곳도 있고 본드나 실리콘으로 범벅이 된 곳도 있을 수 있어서 이런 곳은 평탄화 작업을 하고 초배지가 잘 붙을 수 있게 ‘네바리’ 작업을 해야 합니다. 네바리는 ‘잘 달라붙게 한다’는 뜻의 일본말이라고 합니다. 굴곡이 심한 곳은 초배지 세 겹을 겹친 삼중지를 바르고, 그렇지 않은 곳은 상황에 맞게 폭을 정해서 운용지를 바르면 됩니다. 이 운용지는 정배를 할 때도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운용지는 초배지를 길게 잘라서 풀을 바른 종이인데 초배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에 유용하게 운용하는 용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간습니다. 어쨌든 ‘네바리’라는 일본말에서 기인한 도배용어의 뜻은 정배를 하기 전 기초작업 정도로 이해를 하고 ‘운용지 작업’ 정도로 순화를 해주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후쿠루’는 ‘띄움 시공’ 정도로 순화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의견입니다.

후쿠루와 네바리를 언제부터 썼는지, 정확한 일본말이 무엇인지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필자는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 쓰는 일본말 중에 정확하게 그 기원이 밝혀진 것보다는 관용적으로 한국화해서 굳어진 것도 많은데, 과거 방송 현장에서도 자주 쓰던 일본말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나카’라는 표현을 과거 PD들이 자주 썼는데, ‘3류나 촌스럽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어에서 ‘나카(中)’는 가운데라는 뜻이라서 우리가 쓰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나카(田舍)’라는 일본말이 ‘시골’이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나카’의 ‘이’를 생략하고 한국에서 방송을 하는 사람들끼리 ‘나카’ 라는 표현을 ‘이나카’ 대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사실 발음도 나카보다는 나까라는 된소리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찌됐든 방송사도 이제는 세대가 바뀌고 우리가 문화 강국이 되면서 방송 제작 현장에서 일본식 용어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아마 공사현장의 일본식 표현들도 조만간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초배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감히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던 때에, 풀바른 벽지 판매업체에 조언을 구하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결론은 도배를 할 곳이 합지로 도배가 되어 있으면 그냥 그 위에 실크벽지를 바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었습니다. 다만 작년에 단열 벽지를 시공한 문간방은 단열벽지를 떼내고 시공해야 하는데 단열벽지를 떼내는 과정에 그 아래에 있는 기존 합지 면이 손상됐을 경우엔 실크벽지를 붙이는 이음매 부분에 운용지를 붙여서 바닥을 평평하게 해주고 시공을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망의 실크벽지 도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도배를 하기 전에 우선 콘센트와 스위치의 커버를 분리했습니다. 도배를 하고 커버를 다시 붙여야 깔끔하게 도배가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커버를 떼내니 아내가 옆에서 “우리 스위치랑 콘센트도 너무 낡았는데 바꿀까?” 하는 것입니다. 팔랑귀인 필자는 그 일이 자기 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그러네, 벽지가 깔끔해지면 스위치들이 낡은 게 더 티가 나겠네.” 라는 말을 생각 없이 하고 말았습니다. 그 덕에 난생처음 두꺼비집을 내리고 전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아아, 그렇게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20년 된 아파트지만 튼튼하게 잘 지어서 별로 하자가 없었는데, 스위치 박스 안에서 스위치 버튼 뭉치를 고정하는 나사를 잡아주는 플라스틱이 세월에 부식되어 힘없이 으스러진 것입니다. 벽과 분리되어 스위치가 대롱대롱 걸려 있게 된 것인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 전쯤 새로 단 인터컴의 배선을 분리하는 도중 요령 없이 힘으로만 잡아 빼다가 단자가 두 개나 떨어져나간 거였습니다. 아내에겐 “아, 별거 아니야. 단자들은 납땜하면 되고, 스위치는 어떻게든 붙여볼게.” 라고 얘기했지만, ‘도배를 맡길 걸 괜히 시작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터컴 업체에 AS문의를 했더니 집에서 아빠들이 필자처럼 배선을 빼다가 단자가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십중팔구는 메인보드에 손상이 가서 보드를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쓸데없이 일을 키웠다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쯤에서 항복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금전적으로도 더 손해를 안 보는 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비겁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집에 있는 전동 드라이버로 콘크리트에 구멍을 뚫으려고 되지도 않는 시도를 한 후에는 이러한 유혹이 더 커졌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BECA 석사
현재 SBS아나운서

ⓒ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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