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금펜 2[박종진]




우주에서 온 금펜 2

2022.05.26

 

우주에서 온 금펜 2[박종진]


6,550만 년 전 시속 10만 킬로, 제트기보다 100배나 빠르게, 지름 약 10킬로미터의 이리듐으로 가득 채워진 운석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졌습니다. 핵폭탄 10억 개 터지는 위력으로 지구를 강타하여 공룡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하였습니다. 이른바 ‘소행성 충돌설’로 지구는 공룡을 잃고 우주에서 온 외계의 물질인 이리듐을 얻게 됩니다.

 

 



금으로 만든 펜촉에 살짝 아쉬운 모스 경도 6인 로듐을 붙여 금펜을 만드는 울러스턴 박사의 생각은 아주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과 ‘쓸모 있는 물건’ 그리고 ‘성공한 물건’은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동떨어진 것들입니다. 볼펜으로 예를 들면 펜 끝에 볼을 넣어 필기를 하려고 한 좋은 생각은 1888년 처음 등장하지만, 실제로


순수한 이리듐 1g / 순수한 이리듐의 모스 경도는 6.5 이지만, 오스뮴 등이 들어간 합금 상태인 천연으로 산출되는 경우인 이리도스민과 오스미리듐은 모스 경도 7.5 입니다.

쓸모 있게 만들어진 것은 1940년대이고, 전 세계적으로 이름나게 성공한 것은 저가는 빅(BIC), 중저가는 파커의 죠터, 고급은 크로쓰의 센츄리로 1950년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울러스턴 박사는 과학자이지 기술자는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데, 울러스턴 박사는 로빈슨이라는 시계기술자에 이 로듐 펜을 맡겼습니다. 의뢰된 물건에 혼과 정성을 불어 넣어 만들 수 있을까요? 만년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생각은 워터맨이 고안한 공기가 들어가는 통로와 잉크가 나오는 길을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분리한 것인데, 워터맨은 나중엔 외주(外注)를 주었지만 처음 만년필은 자기가 만들었습니다. 전신학교 교사였던 파커 역시 제인스빌의 작은 호텔방에서 자기의 생각대로 펜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그 방면에 정통한 사람이 기술을 갖고 만들어야 쓸모 있는 물건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호킨스(John Isaac Hawkins,1772~1855)는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영국에서 시계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1790년 경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저지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1803년 영국으로 돌아왔고 1820년대에 짐승의 뿔, 자라 껍질로 펜촉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를 붙인 것을 만들고, 이 무렵 만든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기계식펜슬(일명 샤프) 또한 이 사람의 특허 입니다. 많이 알려진 발명으로는 1800년 경 업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호킨스는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완벽한 펜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약 30년 동안 금에 루비를 물려 보기도 했고, 깃펜에 다이아몬드

 

우주에서 온 금펜 2[박종진]
1800년대 중후반 금펜들


를 붙여 보았지만, 쓸모 있는 펜으로 보기엔 엉성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1833년에 약 10년 전 울러스턴 박사가 로빈슨에게 로듐과 천연 이리듐과 오스뮴 조각을 보내어 금펜에 붙여 달라고 요청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이야기인 로듐이 붙은 펜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리듐은 너무 단단하여 반환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라도 무릎을 탁 치고 소리를 질렀을 겁니다. ‘너무 단단하여 반환되었다’ 완벽한 펜을 만들기 위한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요. 천연 이리듐은 그가 찾던 이상적인 물질이었습니다. 모스 경도 7.5로 보석 에머랄드와 비슷하여 거의 닳지 않았고, 절대로 잉크에 부식되지 않으며, 치밀하기 때문에 필기감 또한 좋았습니다. 궁리 끝에 그는 분당 1만 번을 회전하는 연마 기구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바르고 고속으로 회전하여 이리듐을 연마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1834년 금펜에 이리듐을 붙인 완벽한 펜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우주에서 온 금펜 2[박종진]
일본 동경 헌책방거리 진보초 금펜당 앞에서 거북이처럼 목을 길게 빼고 만년필을 구경하는 필자 2005년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 이런 말을 했다죠.
“ We are made of star-stuff.” "우리는 별의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내 몸처럼 만년필을 생각하는 것도 너무 이상한 것은 아니겠죠.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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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진
1970년 서울 출생. 만년필연구소 소장. ‘서울 펜쇼’ 운영위원장.
저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탐심’

ⓒ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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