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같은 하늘 아래 산다니 [허찬국]

 

 


푸틴과 같은 하늘 아래 산다니
2022.04.21

긴 흐름으로 보면 나라들 간의 활발한 물물교환은 인류 사회의 발전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인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가 적시한 지역적 부존자원의 편차에 따른 문명의 발달 정도와 생활수준의 차이를 무역을 통한 물물교환과 인적, 지적 자원의 흐름을 통해 극복해왔습니다.

구절양장(九折羊腸) 여정이었지요. 지난 수백 년만 보아도 소수의 이익 추구를 위해 많은 사람의 희생과 착취가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중독적인 단맛에 빠진 유럽인들의 설탕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업은 좋은 돈벌이였지요. 카리브해 지역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중국에서 수확된 차(茶)에 중독된 영국인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영국 상인들은 중국인들에게 아편을 팔았고 그것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었지요.

가끔은 지역이나 국가가 자신들의 수출품의 중요도를 과대평가해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19세기 초 최대 수출품 면(綿)을 생산하는 방직산업은 대표적 열강 대영제국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영국의 방직산업에 미국 남부에서 수입되는 목화솜은 필수불가결한 원료였습니다. 남북전쟁(1861~1865) 직전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하던 남부 반란 세력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전쟁이 발발하면 영국이 자신들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런 과신과 오판이 남부 분리주의자들이 무력 도발을 일으켜 전쟁을 시작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영국은 중립을 지켰습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주요 산업의 경제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런 입장을 견지한 것은 영국인들이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의 폐지에 동감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 영국은 미국의 남북전쟁 훨씬 이전에 여러 입법 조치로 식민지 인도를 제외한 대영제국과 모든 식민지에서 노예 제도를 폐지했고 노예들을 해방했습니다. 18세기에 이미 종교계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노예 반대 운동이 영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진행되었지요. 그러니 노예제도 보존에 명운을 걸고 반란을 일으킨 미국 남부 세력에 도덕적 경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경제적 득실이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을 존중하는 세계관을 이기지 못했지요.

지난 2월 하순에 시작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어진 전쟁의 충격으로 에너지와 곡물의 국제시장 가격이 급등했고,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로 국제무역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서방의 예상 밖으로 강한 결속과 러시아 응징에 여러 전문가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지요.

그런데 독일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독일을 위시한 서유럽 국가들의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늘어나면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점차 높아졌습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득실을 가늠할 때 유럽의 높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만약 유럽 국가들이 크게 반발하면, 유럽연합(EU)과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며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요. 반면 유럽이 미온적이면 아무리 미국이 러시아를 응징하려 해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침공은 서방의 즉각적이었고 강력한 반응으로 이어졌습니다. 강한 경제 제재가 여러 분야에 가해지며 러시아의 사정이 크게 어려워지고 있지요. 그런데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는 아직까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부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독일 산업계에서는 즉각적 금수조치의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러시아와 우호적이었던 정책기조가 완전히 끝났음을 천명했고 러시아 에너지 수입도 머지않아 크게 줄 전망입니다.

 

 


미치광이 같은 역사적 어불성설을 내뱉으며 2백 년 전 제국주의 시대에나 있었음직한 전쟁을 시작한 것을 보면 푸틴은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미국 남북전쟁 전 남부 분리주의자들을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 

(좌)우크라이나 피란민 엄마가 이름 나이 연락처 등을 아기의 등에 적어 놓은 모습 (우) 미국 남북전쟁 게티스버그 전투 전사자들


얼마 전 우크라이나 피란민 엄마가 어린 딸의 등에 자신이 죽을 경우에 대비해 아이의 이름, 연락처를 적어 놓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이미지는 오래전 보았던 미국 남북전쟁 다큐멘터리에서 70만 명이 넘는 전사자들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전투를 앞둔 군인들이 조용히 둘러앉아 자신의 군복에 주소와 이름이 적힌 천 조각을 바느질로 꿰매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전사하면 고향에 소식이라도 전해지길 바랐던 것이지요.

과대망상증 독재자와 인종주의자들이 역겹게 싫고,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게 부끄럽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