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서 벗어난 한국 페미니즘
“한국의 여성운동,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됐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에게 물었다
2016년 5월17일 서울 신논현역 근처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여러차례 칼에 찔려 사망했다. 강남역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색 포스트잇과 꽃다발이 놓이기 시작했다. 경찰이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발표하자 온라인 여성 사이트가 들끓었다. 여성혐오 범죄자에게 ‘정신병’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었다.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분석한 전문가들에겐 비난 세례가 쏟아졌다.
한국은 여성이 혐오살해당하는 나라인가
“여성을 범죄피해자로 고착시키는 ‘명명’이 더 위험”
페미니즘의 정확한 이해도 낮아
(편집자주)
‘왜 여성주의적 성향의 20대 여성들이 ‘피해호소인’ 따위를 말한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보수, 기성 세대의 의문은 이 지점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강남역 사건’ 이후 ‘범죄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마치 ‘나비효과’처럼 이게 정치적 흐름이 됐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일까. 여성범죄심리학자로 그간 여성중심적 피해자 대책 수립에 목소리를 내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게 이 사연의 배경을 물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범죄 아니었다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6년. 그 사이 한국의 치안은 훨씬 좋아졌지만, 젊은 여성들은 더 강하게 자신이 ‘혐오범죄’ 대상이라고 느낀다. 먼저 규정부터 하자.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였나.
“당시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는데 범인은 여성이 들어왔을 때 살해했다. 그렇다고 이걸 ‘여혐 범죄’라고 하는 건, 정신질환에 의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아 생기는 오류다. 신념을 갖고 여성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여성혐오 범죄와는 범죄학에서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여성혐오 현상이 우리 사회에 없었다면 그런 망상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사건 직후, ‘범인이 조현병 환자’ ‘여혐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한 전문가 여럿이 ‘비토’ 당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사법부 판단은 다르다. “형사법은 책임주의다. 법에서는 행위에 대한 책임성이 입증되어야 처벌한다. 정신질환, 지능, 신체상태에 따라 심신미약, 심신상실이면 일반 범죄행위보다 책임을 약하게 묻거나 아예 묻지 않는다.”(A 부산지법 부장판사) 이것이 근대 형사법의 기초라는 것이다.
-범죄학자 대부분이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라했는데, 사회학자 여성학자 중 ‘여혐 범죄’라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당시 여대에 재직하는 여성 교수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여성혐오 범죄 아닌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기사에 인용하겠다’고 했더니 ‘학생들이 실망하니 쓰지 말라’더라. 학자가 이래도 되나.
”싸움을 놔두거나,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하게 얘기하면 부추기거나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 범죄’라는 말이 거의 신념화된 분위기다.
“성범죄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사이버 공간에서 그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에 대한 범죄를 ‘성범죄’라 지목하고, ‘피해자 중심으로 연대하라’ 이런 식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다’ 라는 주장은 남자들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젊은 여성들의 피해의식에서 시작된 게 안타깝다. 여성이 당하는 핍박의 증거로 성범죄를 지목하는 전략이 먹힌 것이다.”
-‘그 범죄는 여혐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여성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여성이 피해를 입으면 ‘여혐 범죄’라고 호명하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나.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대상화’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여성이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낙인 찍는 행위다. 오히려 반여성적 태도다.”
-100% 안전하지 않으면 안전한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원래 페미니즘 출발은 여성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신장시키는 운동이었다. 범죄와는 연관성이 적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은 ‘피해자학’이 되어 버렸다.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됐다. 실질적 통계를 무시하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던 와중에 코로나라는 공포까지 더해진 것이다.”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남녀가 반반이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90%가 여성이다. 강간 같은 물리적 범죄와 디지털 영상물범죄까지 더한 것이다. 그런데 ‘여성만 피해자’ 이건 아니다. 군대에서도 성범죄가 상당수 일어난다. 자살하는 군인도 꽤 있다. 성범죄 피해는 남녀를 가지리 앉는다. 성폭력 범죄는 ‘차별 타파’가 아니라 ‘개별적 피해 회복’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정치권 책임은 어떻게 보나.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정부’를 표방했다. 장관을 기용하면서 여성할당제를 실현했다. 그런 사람들이 정책 실패가 많았다. 그러자 남성들 사이에서 ‘반발(백래시)’이 일어났다. ‘여성할당제가 문제다’ ‘페미가 문제다’ 식으로 나온 거다. 그게 여혐으로 발전했다. 사실 이건 정치권에서 일어난 일이지, 청년층은 그 속에서 수혜자가 아니었다. 여혐·남혐을 정치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난 거다. 적은 자본을 두고, 젊은층이 대리전을 벌인 셈이다.”
-기성세대는 우리나라처럼 치안이 좋은 곳이 어딨나 하는 말도 한다.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범죄 검거율이 90%다. 살인범죄율은 낮고, 눈 돌리면 경찰이 보이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특정 성별, 연령대 사이에서는 공포 너무나 과장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이런 공포에 사로잡힌 세대가 있다는 걸 이해한 후, 교육및 대처법을 제안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게 없이 정치권이 여혐, 남혐에 편승해서 세대끼리 싸우게 한 거다”
-‘구조적 차별이 없다’는 윤석열 후보 시절 발언에 여성들이 분노한다.
“남녀간 명문화된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페미니즘이 등장했을 때, 사회주의 이론이 근간에 있었다. 남성은 지배계층, 가부장, 가해자이고 여성은 피지배계층, 전업주부, 피해자라는 인식이다. 구조적 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
-국제적 자료가 많이 인용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하는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1)’는 경제 활동과 연관된 지표가 많이 포함돼 있다. 한국에 남녀간 임금 격차가 크다고 나온다. 156개국 중 102위다. 출산 등을 계기로 한 여성의 경력단절 이유가 가장 크다.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나오는 ‘성 불평등 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2020)’는 또 다르다. 교육받을 권리, 참정권 등 사회제도적으로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가를 보는 지표다. 189개국 중에 11위다. 우리나라 대학진학율은 남성이 76%, 여성이 80%다. 그러니까 다양한 지표가 있는데, 한국 여성에게 가장 불리한 지표만을 들고와 갈등에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박은주 에디터 겸 에버그린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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