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아들의 아내? [함인희]



며느리는 아들의 아내?
2022.02.04

10년쯤 전, 당시 유명 결혼정보업체가 30대 초반 남성을 대상으로 배우자 선택 기준을 조사해보니 1위 연봉, 2위 착한 여자, 3위 처가의 경제력으로 밝혀졌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착한 여자는 마음씨 고운 여자가 아니라 성형미인이어도 좋으니 외모가 훌륭한 여자라는 뜻이었다네요.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던 사위들 마음을 돌아서게 한 건, 아마도 맞벌이 부부 10쌍 중 7쌍이 처가 가까이 신혼집을 마련하는 관행이 등장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때 여성들이 결혼식 끝내고 나면 ‘시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도 싫다’고 했던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요즘은 확실한 반전(反轉)이 진행 중인 듯합니다. 올해 팔순 되는 저희 이모님 친구만 해도 며느리와 연을 끊고 산 지 오래 되었답니다. 명절이면 손주들 앞세워 아들만 내려와 삐죽 얼굴 내밀고 간다네요. “손주들 보여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말씀은 그리하시지만, 며느리로부터 매정하게 손절당한(?) 시어머님의 씁쓸한 마음까지 숨기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하나뿐인 딸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택배를 보내오고, 엄마 좋아하는 소설책까지 살뜰히 챙겨주는 맛에 서운함을 달래고 계신다 했습니다.

하기야 이곳 당산마을에서도 며느리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前) 월산리 이장님 댁 맏딸은 주말마다 부부동반으로 친정 나들이요, 모퉁이 감나무집 할머니 댁 사위 또한 틈만 나면 처가를 찾아와 장모님을 알뜰히 챙깁니다. “우리 사위, 손재주가 좋아 하수도도 손봐주고 구들장도 고쳐주었노라” 입만 열면 자랑이 끝도 없습니다. 그나마 당산마을에서 며느리와 함께 사는 분은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을 며느리로 둔 전씨(全氏) 할머니 꼭 한 분뿐이랍니다.

 

 



이제 막 사위도 보고 며느리도 들이기 시작한 우리 세대는 동창끼리 만나면 “시집살이 실컷 하고 이제야 시어머니 노릇 좀 해볼까 했는데 그만 며느리가 사라졌네.” “아들은 동포, 며느리는 아들의 아내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 “자식들 기대하지 마, 자기들끼리 잘 살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하소연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명절 때마다 며느리는 더 있다 가라 붙잡으면서 딸네는 왜 안 오느냐 기다리던 시어머니, 정말 야속했었는데 우리도 똑같아. 아들네 딸네 모두 맞벌이건만 아들은 아침도 못 먹고 다닌다고 속상해하면서 사위가 아침 차려 달란다며 괘씸해하는 걸 보면 말이야.” 낄낄거리기도 합니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건 없을 테지요. 친족관계도 세월 따라 변하게 마련일 겁니다. 예전엔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고 했지만 요즘 맏며느리들은 ‘제 남편이 장남’이라 소개한다는 것도 이미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신세대 입장에선 며느리 정체성이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유물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인가 한국도 모계제로 가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높아지더라구요. 하여 (직업의식(?)이 발동했나 봅니다.) 모계제를 주제로 한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를 이리저리 찾아보았습지요. 모계제는 엄마로부터 딸로 혈통이 계승되고, 모계제가 부계제보다 먼저 출현했다는 것은 상식 아니겠습니까? 한데 현존하는 모든 친족제도는 4대 보편 원리를 따라 조직된다는 심플하면서도 심오한 진실을 새삼 알게 되었답니다. 1. 여성이 출산한다. 2. 남성이 임신(impregnate) 시킨다. 이 두 원리는 다소 싱겁네요. 반면 3. 남성이 친족집단을 통제한다. 4. 근친상간은 금한다. 이 두 원리는 의외로 흥미롭습니다.

모계제 하에서도 권력은 남성들 수중에 있었기에, 자매의 남자형제들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는 게지요. 그 결과 모계제 하에서는 아이를 둘러싸고 생물학적 부(父)와 외삼촌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부계제 하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양계제 하에서는 장모와 사위가 앙숙이듯 말입니다.

 



한데 친족관계의 가장 큰 매력은 유연한 상황 적응력(malleability)이었다고 합니다. 같은 모계제라도 남편을 단순한 손님이라 간주하는 경우부터 자녀의 아버지로 100% 인정하는 경우까지 10족(族) 10색(色)으로 다채로웠고, 모계제와 부계제를 두부 모 자르듯 깔끔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훨씬 빈번하게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네 친족관계의 눈부신 변화를 바라보면서, 한편으론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서운함도 느끼고, 머지않아 차례도 제사도 사라질 것 같아 아쉬움이 컸지만, 이 모두가 어리석은 생각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계냐 모계냐를 따지기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오래도록 맺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할 테니...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함인희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로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사랑을 읽는다> <여자들에게 고함>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등이 있습니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