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되돌려 보기 [김창식]
오징어 게임 되돌려 보기
2022.01.14
기생충, 미나리, BTS, 블랙핑크에 이은 오징어 게임 열풍이 놀랍군요. 영화를 시작으로 대중음악을 거쳐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K컬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특히 BTS와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한류의 확산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대중문화 면에서 거둔 성과이긴 하지만, '배달의 민족' 말고 어느 민족, 어느 나라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세계를 석권했는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Squid Game), 감독 황동혁>의 영향과 파급력, 흥행성적을 살펴볼까요? 지난해 9월 17일 최초 공개 이래 한 달도 지나지 않아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하네요. 그에 비해 제작비는 푼돈인 235억 원. 조회 수는 또 어떻고요. 유튜브 조회 수가 1주일도 안 돼 170억 뷰를 돌파했다고 하네요. 글로벌 공전의 히트 콘텐츠로 평가받는 HBO의 <왕좌의 게임>이 10년 넘게 걸려 달성한 조회 수가 169억 뷰이니 위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오겜(오징어 게임) 리플레이(Replay)‘! 9부작 드라마를 되감아 봅니다.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죽어나가는 잔인함과 지나친 여성 비하가 거슬리긴 하지만 그런대로 참으며 볼만하군요.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극한의 게임에 도전합니다. 삶에 지치고 큰 빚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456명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한 명의 우승자만이 456억의 상금을 가지게 되며, 나머지는 모두 죽음을 맞는 내용이에요.
주제 면에서 접근해 보죠.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드라마 리뷰는 엇비슷합니다. ‘영화 <기생충>의 맥을 잇는 빈부 격차와 계층 간 이동의 어려움을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에 녹여내었다’라든가 ‘데스 게임 장르에 한국적인 요소를 녹여 넣었고 극한 경쟁 속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편성을 획득했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가 보다‘ 고개를 끄덕였음 직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상투적인 언급이 진정한 주제일까요? 그러한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쎄요... 아무래도 석연치 않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떠나지 않은 의문은 이 같은 얼토당토않은 서바이벌 게임을 누가, 왜 기획하고 추진했나 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핵심적인 주제는 시리즈 9 마지막 편을 보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의 ‘주재자(대장동 그분 아니고요)’는 다름 아닌 게임의 일원으로 참여한 ‘깐부 노인‘(오영수,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이었습니다. 이야기 막판에 최후의 승자, 아니 살아남은 자가 된 기훈(이정재)과 병상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날선 대화가 이어집니다.
돈이 너무 많다 보니, 너무 풍족해 사는 데 별 재미를 못 느끼는 ‘깐부 노인’은 죽어가는 마당에서도 게임을 벌입니다. 병실 창 너머로 보이는 노숙자에게 자정이 지나도록 어느 이웃이나 행인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면 기훈이 이기고(오징어 게임의 운영권을 넘겨주고), 그 반대 정황이면 노인이 이긴다는 내용입니다. 노인은 마지막까지 인간 본성의 선의에 대한 불신을 안고 눈을 감습니다. 경제적 풍요로움의 의미와 인간의 성정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는 막판의 반전이 드라마의 주제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성공 원인이 무엇일까도 생각해봅니다. <오징어 게임>은 <기생충>으로 시작해 요즘 대세인 BTS의 인기몰이로 이어지는 한류 열풍에 편승했고, 그에 힘입어 결과적으로 K컬처를 추동한 결과가 아닌가 추측합니다. 첨단과 레트로의 콜라보(의상, 소품, BGM),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 연결 구조(놀이의 종류)에 적당한 반전(게임 기획자의 정체)도 큰 몫을 했겠지요. 하지만 <오징어 게임> 최대의 의문은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해외에서는 난리법석인데 왜 정작 우리 일반 국민은 신이 나지 않고 심드렁한가?
이유를 살펴봅니다. 문화는 잘 나가는데 보통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 사회, 경제(신문의 통상적인 지면 배치순서)가 엉망이어서가 아닐는지요? 코로나19 상황으로 그렇잖아도 힘든 국민은 도통 흥이 나지 않습니다. 정치판만 해도 그렇죠. 이전투구 역대급 비호감 선거가 될 것이 확실한 올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군요. 여당 후보와 제1야당 후보 중 누구를 택하면 좋을까? 후보자의 자격, 자질, 가족 리스크, 내부 갈등을 지켜보며 도대체 ‘누가 덜 싫은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뜻 모를 자괴감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한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지금까지 이런 대선은 없었다. 이것은 뻘밭인가, 진흙탕인가?”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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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2006 자유칼럼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