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지치기를 꿈꾸며 [함인희]

 


삶의 가지치기를 꿈꾸며
2021.12.29

  “저는 전답(田畓) 임차인입니다.” 세종시 전동면 청송리 140-3번지에 자리한 밭 700여 평을 빌려 반송(盤松) 150여 주를 키우고 있습니다. 밭 임자는 저의 작은 외삼촌이구요, 한국농어촌공사가 중간에서 임대계약을 대행해주고 있습니다. 1년 임차료 30만 원에 계약기간은 5년. 계약기간 만료 시점에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으면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가 반송을 키우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블루베리 농장 주인인 이모님이 당신 은퇴 후 인생 이모작을 계획하던 중 우리나라 굴지의 ㄱㅈ원예 직원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소나무 묘목 재배를 강력히 권유했답니다. “소나무는 키우는 재미도 있고, 값도 나쁘지 않은 데다, 특별히 재고가 없는 상품이다. 나무는 한 해가 지나면 또 그만큼 가치가 올라가니... 요즘은 재(財)태크 대신 목(木)태크가 대세”라면서 꼬드겼다네요.

손이 큰 주인장, 소나무 묘목을 무려 2,000주가량 심었던 듯합니다. 종류도 다양하게 둥글게 자라는 반송도 심고, 나뭇잎 빛깔이 철 따라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는 재일(在日)황금송도 심고, 키가 부쩍부쩍 자라는 낙락장송류(類)도 심었습니다. 묘목을 심은 첫 해와 둘째 해엔, 서울에서 설 쇠고 내려오면 여기저기 묘목 캐간 자리가 눈에 띄곤 해서 여간 애를 태웠던 것이 아니랍니다.

한데 묘목 도둑맞는 일보다 더욱 안타깝고 황당한 일이 생겼습니다. 소나무를 키우면 책임지고 팔아주겠노라던 ㄱㅈ원예 직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겁니다. 나무 시장이라는 것이 묘해서 업자들 간에 정교한 분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2~3년생 묘목만 다루는 업자, 묘목을 사서 2~3년 더 키운 후 파는 업자, 성목(成木)만 다루는 업자 등등으로요. 나무 값은 나무를 캐서 다시 심는 값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반송은 5~6년생만 되어도 작은 포클레인을 동원해서 캐야 하는데요, 포클레인 하루 부르는 값이 무조건 기본 50만 원이랍니다.

 

 



나무는 커 가는데 마땅히 팔 곳을 찾지 못한 저희는 반송들이 자라면서 서로 서로 붙어버리는 바람에, 일부를 가까운 밭으로 옮겨 심는 작업을 했습지요. 덕분에 제가 임차인이 되었답니다.

“소나무는 2년만 다듬어주지 않으면 불쏘시개로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의 손길을 탑니다. 처음엔 땅에 심어만 놓으면 알아서 자라는 줄 알고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나무는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며 저희의 게으름과 무지함을 나무라기도 하셨지요. 혹, 머릿속이 복잡해지거나 마음이 번잡해지면 정원에 나가 소나무 전지하는 회장님들 모습,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신 기억이 있나요? 정말 소나무 가지치기를 하노라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보임에도,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무아지경(?)에 이르러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덕분인가, 신선한 향기에 취해 맹추위도 잊은 채 가지치기에 몰입하게 된답니다. 

 

삶의 가지치기를 꿈꾸며 [함인희]



초보자 눈에도 남겨두어야 할지 쳐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는 가지들이 있습니다. 아래로 벋은 가지, 안쪽으로 난 가지, 서로 충돌하는 가지는 별 갈등 없이 과감하게 잘라냅니다. 한데 결정하기가 난감한 순간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오른쪽으로 벋은 가지를 쳐낼지, 왼쪽으로 벋은 가지를 없앨지, 가지를 두 개 남겨야 되나, 세 개를 유지해야 되나, 지금은 멋지게 벋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후년에도 멋진 가지로 남을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전문가의 안목을 갖추었다면, 몇 년 앞을 내다보고 가지들이 어떻게 벋어나갈지 머릿속에 그린 후 적절하면서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겠지요. 균형감도 고려하고 미적 감각도 고려하면서요.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소나무 가지치기와 우리네 삶이 많이도 닮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잔가지를 적시에 잘 쳐내야 굵고 튼실한 가지를 볼 수 있건만, 왠지 소심함과 어리석음이 앞서 굵은 가지로 벋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건 아닌지 후회되는 순간들이 떠올라서요. 지난 2년 코로나 위기 상황을 지나오면서도 삶 속에 거품도 많고 잔가지도 무성했음을 실감했습지요. 다가오는 새해엔 아직도 남아 있는 잔가지들 과감히 쳐내고 굵은 가지에 보다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함인희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로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사랑을 읽는다> <여자들에게 고함>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등이 있습니다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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