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 들여 고친 월성 1호기, 해체비용만 7500억…"사회적 낭비"
7,000억원 들여 고쳤더니 바로 해체…총 1조4500억원 지출하는 셈
전문가들 "월성 1호기 2060년까지 운전 가능…영구정지는 부당"
10년 내 수명 종료 앞둔 원전 7기…영구정지하면 에너지 수급 차질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지난 24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영구 정지를 결정하면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전 해체 작업에 돌입할 전망이다. 문제는 원전 해체 작업에만 15년이 이상 걸리고, 7500억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7000억원을 투입해 고친 원전을 7500억원을 들여 해체해야 하는 셈이다. 원자력 업계는 "방금 신형 엔진을 장착한 차를 돈 들여 폐차하겠다는 격"이라며 원안위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속도가 붙으면서 월성 1호기에 이어 수명 종료가 다가오는 다른 원전들도 줄줄이 문 닫을 가능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탈원전 흐름이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사회·경제적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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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비용만 7500억…핵심 해체 기술 미확보
영구 정지 결정이 난 원전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원전 운영 주체인 한수원은 해체 계획서를 작성한 뒤 주민 공청회를 거쳐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만 5년 넘게 걸릴 전망이다. 최종 해체 계획서 작성에만 3~4년, 원안위가 해체 계획서를 심사해 승인할 때까지 2년이 걸린다.
이후 해체 시공업체를 선정하고 해체를 진행한 뒤 부지 복원 작업까지 마무리하려면 추가로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수원과 원자력 업계는 원전 1기 해체 작업에 최소 7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약 7000억원을 들여 낡은 부품을 새 것으로 교체하고 보수 작업을 마친 월성 1호기를 다시 해체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원전 1기당 7500억원씩 적립해둔 해체 충당금을 원전 해체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체 충당금이란 한수원이 원전 해체 예상 금액에 맞춰 매년 발전 수익의 일부를 적립한 액수다.
게다가 한국은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술 58개 중 13개(22.4%)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미확보 기술 대다수가 핵심 중의 핵심 기술로, 위험 요인 없이 안전하게 원전을 해체하고 제염 작업(방사선 제거)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원자력 업계는 무엇보다 원전 건설·운영 중단으로 고급 인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기술자가 부족해진 점을 걱정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체 기술은 서서히 확보하면 되지만, 당장 남아있는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정비할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원전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10년 내 수명 다하는 원전 7기…전기료 인상 우려
원전은 수명이 종료되더라도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수명을 연장해 가동한다. 미국 등 전 세계 대부분 원전이 그렇게 운영된다. 그러나 현 정부의 강력한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는 2023년 4월 설계수명이 다하는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10년 내 수명 종료를 앞둔 원전 7기가 문 닫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원전 수명을 늘리는 추세인데, 한국은 7000억원을 들여 보수한 원전마저 영구 정지하는 상황이라 다른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계속 운전’이 가능한 원전을 영구 정지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큰 손해라고 비판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전의 수명이란 ‘운영허가기간’에 가깝기 때문에 대다수 원전은 안전 점검 후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면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월성 1호기 같은 가압중수로형 원전이 수 차례 운전 기한 연장을 통해 80년째 운영되고 있으며, 월성 1호기도 최신 부품으로 보수한 원전이기 때문에 적어도 2060년까지는 안전 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주제어실. /조선일보DB
월성 1호기에 이어 수명 종료를 앞둔 원전들이 멈춰설 경우 에너지 수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원전 이용률이 줄면 상대적으로 발전 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려야 하고, 이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에교협)는 "월성 1호기 가동만으로 연간 LNG 발전 비용 2500억원 절감하고 연간 400만톤(t)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총 16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월성 1호기 영구 정지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은 기자 조선비즈
"월성1호기 폐기, 원안위가 한수원 배임 승인한 셈"
["월성1호기 폐기, 일주일 전엔 안건에 없었다"]
한국형 원전 만든 이병령 원안위원 "원안위장 등 법적책임 지게 될 것"
에너지교수협의회도 비판 성명
이틀뒤 다시 보낸 안건에 포함돼
누가 압력 넣은 것 아니냐 묻자 엄재식 위원장이 화내더라
정부·여당이 추천한 위원들은 모두 탈원전 찬성하는 비전문가
아기를 싫어하는데 보모 맡긴 격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
"국가기관(원자력안전위원회)이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이사진의 배임을 사실상 승인한 것과 같습니다. 이 일을 밀어붙인 엄재식 원안위원장 등은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겁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1호기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인 25일, 본지와 만난 이병령〈사진〉 원자력안전위원은 "분노와 무력감 속에 회의장을 떠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위원은 한국형 원전 개발 책임자를 지낸 원자력공학자로,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원안위원이 됐다. 24일 투표에서 이 위원과 이경우(서울대 교수) 위원 등 한국당 추천 위원 2명은 반대표를 던졌으나, 나머지 정부·여당 추천위원 5명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월성 1호기는 해체 운명을 맞게 됐다.
국회는 지난 9월 30일 본회의에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결정한 지난해 6월 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배임 혐의가 있다며 감사 요구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한수원 감사를 진행 중이다. 이 위원은 "국회가 의결해서 감사원 감사 중인 안건을 이렇게 성급하게 처리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했다. 한편,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이날 "월성 1호기 영구 정지 의결은 법과 제도를 무시한 폭거"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지난 10월 원안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가기관 간 충돌 문제가 지적됐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조차 "정부 기관 간 엇갈린 결정이 날 수 있다"며 "상식적이지 않다"고 했었다. 이 위원은 "여러 정황을 볼 때 원안위에 누군가 압력을 넣어서 서둘러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결정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그는 "한수원이 영구 정지 신청을 원안위에 제출한 게 2월 말인데, 국회가 감사원 감사를 의결한 9월 말까지 7개월 동안 원안위는 한 번도 이 사안을 논의하지 않았다"며 "그러다가 국회가 감사원 감사를 요구한 직후인 10월 11일부터 원안위 회의에서 논의가 됐다"고 했다.
이 위원은 월성 1호기의 영구 정지가 결정되던 24일 회의 전 상황도 석연치 않다고 했다. 이 안건은 지난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의결이 보류된 사안이기 때문에 이날 이렇게 무리하게 상정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원안위가 회의 1주일 전 이메일로 보내온 안건에는 월성 1호기 영구 정지 관련 건은 있지도 않았는데, 그 이틀 후에 월성 1호기 영구 정지 건이 포함된 안건 목록이 다시 왔다"며 "무리하게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1호기 원전을 영구 정지시키기로 결정한 다음 날인 25일,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월성 1호기 정지 안건이 무리하게 상정돼 처리된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이 이 문제를 따지자 엄재식 원안위원장이 화를 냈다고도 했다. 이 위원은 "24일 회의장에서 엄재식 원안위원장에게 '누군가 월성 1호기 안건을 빨리 처리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엄 위원장이 '그렇게 말씀하지 말라'며 화를 내더라"며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법률상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원안위가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인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현재 원안위원의 구성 문제도 지적했다. 정부 여당이 추천한 원안위원에는 원전 전문가라고 하기 어려운 예방의학 전공, 지질환경 전공, 행정학 전공 교수들이 포함돼 있다. 이런 원안위원 구성은 원자력 안전을 지켜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 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내가 원전을 설계할 때 '싸고 쉽게 갈지, 아니면 돈이 더 들더라도 안전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원안위와 같은 규제 감독 기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쪽으로 결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비전문가들이 대부분인 원안위가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원전 산업 감독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현재 위원 4명 중 2명이 원자력공학 전공자다.
이 위원은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지금의 원안위원 중 상당수가 반(反)원전 주의자라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여당 추천으로 들어온 원안위원들은 모두 탈(脫)원전 정책에 코드를 맞추고 있다"며 "비유하자면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보모 일을 하라고 맡긴' 격"이라고 했다. "원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한 운영을 감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도 했다.
평생을 한국형 원전 개발에 매달린 그는 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미국·일본 원전 회사들이 망하거나 침체에 빠지면서 한국이 세계 최고 원전 경쟁력을 갖게 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데,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차고 있다"며 "정권을 잡았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안을 제 맘대로 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안위 측은 이에 대해 "원안위의 결정은 감사원 감사 결과와 무관하다"면서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심사한 것이고, 상부의 지시나 압력에 따른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최현묵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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