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변명의 표본실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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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 변명의 표본실

2021.02.10

초등학교(60년 전쯤이니까 그때는 국민학교) 고학년일 때 사회 시간에 ‘한국은 광물의 표본실’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때 그 교과서에는 “우리나라는 매장 광물이 200여 종이나 되고, 텅스텐 수연 안티몬과 같이 세계적으로 드문 광물도 있어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특색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부패한 모습을 거의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 부패상은 매우 다양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있을까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추악한 것들이라 ‘광물의 표본실’이라는 비유를 ‘부패의 표본실’로 바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의 인류적 부패 사례’를 찾으려는 외국 학자나 언론인을 만나면 여러 나라 돌아다니지 말고 이곳 한국에 한번 왕림하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말까지 해주고 싶어졌단 말입니다.

“요즘에도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돈을 받아먹는다고? 아직도 이권을 준 대가로 반대급부를 챙기면서 예산을 착복하고 횡령하는 국가 공복이 있다고? 최근에는 돈 먹었다고 잡혀간 사람 기사가 난 적도 없는데?” 이렇게 물으실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경제적, 금전적 이득이 오가야 ‘부패(腐敗)’인 것은 아니지요. 나는 마음이 썩은 것, 윤리의식이 마비된 것, 이게 더 심각한 부패라고 믿습니다. 마음이 썩은 사람들이 돈도 주고받을 테니, 돈 먹는 부패보다 마음의 부패를 먼저 걱정하고 염려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마음 썩은 부패, 마비된 윤리의 사례를 찾기 위해 자료를 뒤질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특히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습니다. 누구 말대로 정권 말기적 증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습니다.

“대법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스스로 여권의 바람막이를 자처했을 뿐 아니라,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까지 늘어놓았다.” “법무부 장관들은 검찰을 개혁한다면서 산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가로막았고, 자신과 가족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누구보다 앞장섰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온갖 위선을 떨었다.” “법무부 차관은 술 취해서 탄 택시 기사 목을 조른, 위험한 범죄를 저지르고는 감추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경찰청 고위간부들이 이 과정에 끼어든 게 분명하다.” “산업부 장관은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원전을 폐쇄했다. 자기 말 안 들으려는 부하 직원에게 ‘너 죽을래?’라는 말로 공갈, 협박을 했다.” “여당 국회의원치고 내로남불 및 ‘아시타비, 금시작시(我是他非, 今是昨是-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지금도 옳지만 예전에도 옳았다)’의 행태를 안 보이는 자가 드물다.” “나라꼴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수습하려 들기는커녕 뒤에 숨어 유체이탈 화법만 구사하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서울시장을 감싸기 위해 2차 가해를 공공연히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자신의 영달을 이루고, 가족까지 유족하게 먹여 살린 게 들통나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마음이 부패한 정치인과 윤리의식이 사라진 공직자 사례를 손가락으로 다 꼽으려면 내 손은 우주 멀리서 날아온 외계인처럼 손가락이 엄청 많아야 할 겁니다. 그 많은 걸 나보다 더 생생하게, 더 잘 기억하시는 독자님들이 계시지 싶어서 이 정도로 그치겠습니다만, 이번에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된 사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국회의원 수년 만에 1억도 안 되던 재산을 수억대로 불렸고, 자식을 연간 수천만 원이나 드는 외국 유학을 보내놓고는 생활비는 한 달에 60만 원밖에 안 들었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 돈으로 생활했다는 게 말이 되냐"는 추궁에 “명절에 선물 들어온 고기 같은 게 많아서 가능했다. 아내가  미장원에 안 가고 집에서 머리를 잘라 돈을 아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부패한 자들의 변명은 비슷하지만 이처럼 기발한 것도 많아서 외국의 부패연구자들은 한국을 "변명의 표본실"이라고 부를 것도 같습니다.)

그는 또 국회 회기 중에 병가를 내고 가족들과 외국 여행도 여러 번 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사람 수사를 공수처 1호 사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음이 부패한 자가 금전적으로도 부패한다”는 앞서의 내 이론은 확실히 증명되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하루 이틀이 된 게 아닌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썩은 게 한두 사람이냐며 이 글에 진저리를 치실 분도 있겠지만, 듣기 지겹다고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중국 춘추시대에  패망한 어떤 왕이 매일 밤 나뭇단 위에서 잠들고 아침에 깨서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쓰디쓴 쓸개를 핥으면서 원수 갚을 각오를 다졌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처럼 우리도 두 번 다시 나라가 부패로 망가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부패했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매일매일 신문과 TV가 전해주는 부패한 자들의 소식을 밑줄 쳐가면서 읽어야 한단 말입니다. 글쓰는 자들도 지치고 힘들어도 그런 것들을 계속 파헤치고 알려야만 합니다.

어릴 때 들은, 다들 알고 계실 우리나라에 대한 비유가 또 하나 생각납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어렵게 민주주의를 이뤘는데, 이 부패한 자들 때문에 장미는 죽어가고, 나라는 다시 쓰레기통이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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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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