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염치와 비겁과 주접과[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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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염치와 비겁과 주접과

2021.02.08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에 관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 녹취록은 김 대법원장의 ‘정체’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조차 "탄핵 대상자가 녹취록을 공개한 것과 김 대법원장의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걸로 탄핵소추의 본질이 흐려지면 안 된다며 꺼낸 말이긴 하지만, 그도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며 대법원장이 여당 눈치를 보는 나라가 삼권분립 민주주의 국가인가요? 그는 임 부장판사가 폭로한 ‘탄핵 발언’을 전면 부인했다가 자신의 육성이 공개되자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는 자질은 물론 기억력도 부족한 ‘거짓말의 명수‘였습니다.

대법원장의 이런 행태가 문재인 정부의 결정판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는 사법부의 우두머리이지만, 앞으로 정부-여당 내의 어떤 이가 어떤 짓으로 더 추악하고 볼썽사납게 밑천을 드러낼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밑천은 문재인 정부가 양성하고 증진해온 몰염치와 비겁입니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보유국’이라기보다 ‘몰염치와 비겁자 보유국’이라고 불러야 할 판입니다.

문 대통령부터가 문제입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때도 대통령은 숨어 있었습니다. 설마 검찰총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사에 나섰을까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설마 대통령과 전혀 협의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두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사면의 부적절성을 언급한 신년회견으로 이 대표만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꼴입니다. 지금도 재난지원금 문제로 여당과 홍남기 부총리가 대립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뒷짐을 진 채 먼 산을 보는 중입니다. 코로나 백신 구입문제에서도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 때문에 혼란이 빚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성향이어서 그런지 각료 인선 내용도 아주 정말 대단히 특이합니다. 추미애의 후임으로 임명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교통법규 위반, 상습체납 등으로 일곱 번 차량이 압류된 사람입니다. 법무부 수장으로 부적절한 인물이지만, 적격 여부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차를 압류당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을 고를 수 있는지 신기하고 궁금했습니다. 먼저 임명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주·정차 위반 과태료, 자동차세 미납 등으로 열 번이나 차량이 압류됐습니다. 그는 청문회 당시 업무가 바빠 제대로 못 챙겼다고 해 미움을 사더니 최근엔 서울 택시 기본요금(3,800원)을 1,200원 정도라고 답해 웃음을 샀습니다. 건전한 상식을 갖추었다면 남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텐데 이런 사람들은 잘도 장관질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부 장관을 왜 바꾸는지, 왜 그가 후임 후보자인지 알 수 없는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추미애 전 장관의 아들 휴가 논란 당시 공익제보자인 당직사병을 범죄자로 몰아붙인 사람입니다. 그도 청문회를 앞두고 학위논문과 가정교육, 후원금 등에 관한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45명 중 38%인 17명이 국회의원 겸직자(취임 당시)입니다. 현직 의원은 ‘내 사람’이라 안심이 되는 데다 인사 청문회 통과가 좀 더 수월해 자꾸 발탁하는 거겠지요. 그러다 보니 여당 의원들이 장관직을 기웃거리며 자꾸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장관의 권위와 전문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행정부처로서의 독립성도 실종됐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사람을 고르면 좋겠지만 대부분 자사고, 외고를 없애자면서 제 자식은 입학시키고 유학 보내는 식의 ‘내로남불’ 인사들이니 뭘 기대하겠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은 장관들을 임명하면서 아무 문제도, 논란도 없었다는 듯 꽃을 주며 감동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부인에게는 평화와 희망을 의미하는 데이지와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꽃말을 가진 은방울꽃을 건넸습니다. 박지원 국정원장 손자에게는 헌신과 성실의 의미를 지닌 헬리오트로프와 신뢰를 의미하는 송악과 아게라덤으로 만든 꽃다발을 수여했습니다. 김창룡 경찰청장 부인에게는 믿음직한 경찰, 국민 수호의 상징성을 담아 말채나무와 산부추꽃으로 구성된 꽃다발을 주었습니다. 박범계 장관 부인에게는 꽃말이 ‘정의’인 초롱꽃과 장미 꽃다발을, 한정애 환경부 장관에게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뜻하는 자목련 꽃다발을 주었습니다.

꽃말을 기막히게 찾아내 자상하고 세심하게 배려했으니 받는 사람과 그 주변 인사들은 눈물 나게 좋고 감동적이겠지만, 염치없고 한가로운 주접으로만 보입니다. 꽃말을 찾아내고 선물을 궁리하는 그 고심과 기획력, 행정력을 좀 더 보람있고 의미가 큰 국정에 쓰면 좋겠습니다. 주접은 추하고 염치없는 태도를 말하는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주접멘트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해산물 중 어떤 거 좋아해?” “아, 난 굴 좋아해. 니 얼굴.” 이런 식입니다.

며칠 전 문 대통령을 맞이한 전남도청 공무원들이 들고 나온 손팻말에 그런 주접멘트가 여러 건 등장했습니다. 문 대통령을 ‘우주미남’이라고 하고, ‘문재인 너는 사슴, 내 마음을 녹용’이라고 썼더군요. 낯간지러워 “김정은을 맞는 북한 주민들 같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문재인 보유국’에서는 날이 갈수록 몰염치와 비겁과 주접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주접멘트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너 혹시 쌍둥이 자매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러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겠구나.” 이걸 응용해 나도 한번 물어보지요. 김명수 대법원장이나 변창흠 장관이나 박범계 장관 같은 사람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혹시 쌍둥이 형제 있나요?” “아니, 없는데요.” “아,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몰염치하시겠군요.” 쌍둥이라고 해서 하는 짓이 다 똑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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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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