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눈 먹던 진복이[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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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눈 먹던 진복이

2021.01.19

겨울의 숲은 눈이 내렸을 때가 아름답습니다. 올해는 눈이 자주 내려서 베란다문 밖으로 보이는 앞산의 설경이 눈요기를 톡톡히 해줍니다. 어렸을 때는 벌거숭이 민둥산이 많아서 설경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산촌에도 나무로 땔감을 하는 집이 별로 없어서 숲이 우거져 길이 없으면 들어가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노루며, 산토끼, 너구리나 꿩 같은 짐승을 보기 힘듭니다.

나무 잎사귀까지 갈퀴로 긁어다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절에는 뒷동산에서도 산토끼며 노루를 쉽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엽총을 어깨에 멘 사냥꾼들이 노루며 오소리 꿩 같은 걸 잡아서 오토바이 뒤에 싣고 가는 모습을 쉽게 봤습니다.

중학교 때는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 전교생이 산토끼 사냥을 했습니다.
학교 뒤 대왕산은 산세가 험하고 높았습니다. 큰 나무는 없고 잔솔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벌거숭이 산이지만 산토끼가 많았습니다. 토끼는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어 위로는 잘 뛰어 올라가는데 내리막길은 약합니다. 그 점을 이용해서 산 아래에는 배구네트 몇 개를 이어 그물을 칩니다.

학생들은 토끼가 있음 직한 곳을 피해 양쪽으로 산 위로 올라갑니다. 산 중간쯤에 일렬로 서서 고함을 지르며 밑으로 뛰어 내려갑니다. 학생들의 고함에 놀란 산토끼들이 배구네트를 친 쪽으로 도망을 치다가 잡히는 신세가 됩니다.

토끼 사냥을 하면 보통 서너 마리, 많게는 대여섯 마리를 잡았습니다. 학생들은 지금부터 방학이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교를 하지만, 선생님들은 산토끼를 잡아 탕을 끓이고 양조장에 막걸리를 배달시켜 회식을 합니다.

만약 요즈음에 학생들을 동원해서 산토끼를 잡아 회식을 했다면 당장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학생들은 토끼몰이를 하고, 선생님들은 토끼탕을 끓여 회식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였습니다. 하긴, 소풍이나 스승의 날에는 대놓고 담배나 술이며 넥타이나 와이셔츠 같은 걸 선물하던 시절이었으니 토끼몰이 정도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였을 겁니다.

눈이 발목이 빠질 정도로 쌓인 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인 진복이가 토끼 사냥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동네 동장의 아들인 진복이는 4학년까지 다니다가 공부하기가 너무 싫다는 이유로 집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동장이 하는 일은 마을에 궂은일이 생기면 집마다 알리러 다니거나, 초상이 난 집 지붕에 올라가서 망자의 옷을 휘돌리며 고복을 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돼지나 염소 같은 것을 잡을 일이 있으면 잡아 주고 내장을 얻어다 먹는 둥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진복이도 가끔 아버지를 도와서 동네에 초상이 나면 부고장을 돌리거나, 짐승을 잡을 때 속칭 '뒷모도' 같은 것을 해주기도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쌓인 날 친구들과 장터에서 놀고 있는데 진복이가 토끼 사냥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늘처럼 눈이 쌓인 날은 토끼가 도망을 멀리 못 가서 잡기가 쉽다는 겁니다. 그때까지 친구들과는 토끼 사냥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라나섰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만 몇몇씩 어울려 다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들도 집을 나와서 저희들끼리 들판이며 산으로 헤매다가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진복이가 장터에서 놀고 있는 개 두 마리를 멸치로 유혹해서 동행했습니다.

대왕산에 올라가서 어렵지 않게 산토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진복이가 의기양양하게 토끼 귀를 잡아서 흔들어 보일 무렵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복이가 부모님이 읍내에 볼일을 보러 가셨으니 자기 집에서 토끼를 잡아먹자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진복이가 토끼 가죽 벗기는 것을 구경하겠다며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저는 토끼 가죽을 벗기는 것이 너무 잔인해 보일 것 같아서 혼자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누워서 혼자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마당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토끼탕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장난을 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진복이가 토끼탕 냄비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밥상 가운데 덜렁 놓여 있는 토끼탕은 빨갛게 양념이 되어있어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집주인이자, 토끼 사냥을 제안했던 진복이가 대가리를 자기 그릇에 냉큼 가져갔습니다. 나는 이것만 먹을 테니, 나머지는 너희들끼리 먹으라는 말에 얼른 젓가락을 들었습니다.

냄비 안에 들어 있는 토끼고기는 기대와 다르게 몇 조각 되지 않았습니다. 고기 일부를 진복이가 챙겼느냐고 물으니까 원래 토끼는 잡아 놓으면 먹을 것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젓가락으로 살덩어리를 고르다 무심코 진복이를 바라봤습니다.

    “눈깔이 젤 맛있어.”

진복이 그릇에 들어있는 토끼 머리는 어른 주먹 크기 정도였습니다. 진복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젓가락으로 눈알을 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섬뜩하고 잔인해 보여서 아침 먹은 것이 올라올 것 같았습니다.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방문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하얗게 쌓여 있는 눈밭에 쪼그리고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토하다 고개를 들었더니 눈에 빨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싸리나무로 열십자를 만들어 토끼 가죽을 벌려서 빨랫줄에 걸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 시절 토끼털로 귀마개를 만들었습니다. 뻘건 피가 묻어 있는 토끼 가죽은 조금도 따뜻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밥상 앞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동태탕이 올라왔습니다. 동태 머리에 눈깔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이 보이는 순간 토끼 머리가 생각났습니다. 또 토할 것 같아서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섰습니다.

    “토끼 사냥한다고 산에 올라가서 땀을 빼더니 감기 걸린 모양이구먼.”
    “감기는 잘 먹어야 쉽게 낳는 벱이여.”
어머니의 말씀에 아버지가 거드셨습니다. 저는 토끼고기를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퇴깽이 잡아 놨자, 먹을 것이 뭐가 있다고…좀 더 먹지 않구선.”

어머니의 말씀에 대꾸할 기력을 잃어버리고 옆방으로 갔습니다. 방에 누워도 자꾸 토끼 눈을 파내는 진복이가 떠올라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진복이 얼굴만 보면 저절로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진복이 얼굴에서 토끼 머리가 사라진 것은 정월 보름 무렵입니다. 동네에서는 정월 보름날 전후로 풍물놀이를 했습니다. 어른들 틈에 서 상모를 쓴 진복이가 상모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상모 지지대에 매달린 한지 꼬리는 진복이 키보다 서너 배는 길어 보였습니다. 요란스럽게 울리는 북이며 장구며 꽹과리 리듬에 맞춰서 상모를 돌리는 진복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신들린 소년처럼 팔짝팔짝 뛰기도 하면서 상모를 돌리는 모습에 어른들도 감탄하거나 손뼉을 쳤습니다. 저도 경이로운 눈빛으로 진복이를 바라보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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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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