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삶’의 단상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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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삶’의 단상

2020.12.18

태어난 후 여섯 번째로 맞이한 '쥐띠' 해 경자년(庚子年)을 지나보내며, ‘인생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2박 3일 여행’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2박 3일’ 삶의 여정에서 어제 같은 오늘은 없고, 오늘 같은 내일도 없습니다. 세월의 순리에 따라 어제는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날이며, 내일이 되면 오늘이 어제가 되고, 오늘의 내일이 다시 새로운 오늘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2013년 8월 말 36년을 지내온 교직 생활을 65세 정년으로 마감하며 80세까지의 ‘15년 삶’에 대해 생각해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벌써 7년 넘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15년 삶’이란 1968년에 입학해서 재학 중 군 생활 3년을 포함해 2013년 정년 시까지 대학의 문을 나서지 않고 지내온 45년의 삶을 15년씩 세 단계로 나누어 정리해보고, 네 번째 단계로 정년 후에 맞이하는 ‘15년 삶’에 대해 생각해본 것입니다.

첫 번째 ‘15년 삶’(1968 ~ 1982)은 대학에 입학해서 교수의 꿈을 이루려 전공을 정하게 된 배경을 정리해본 ‘식물세포유전학과의 만남’이었고, 두 번째 ‘15년 삶’(1983 ~ 1997)은 식물염색체 연구에 몰두한 시절인 ‘식물염색체 연구 탐닉’이 주제였으며, 세 번째 ‘15년 삶’(1998 ~ 2012)은 학내 활동과 함께 전공과 연계한 대외 활동에 적극 참여해온 ‘전공과 어우른 대내외 활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년 후 80세까지의 네 번째 ‘15년 삶’(2013 ~ 2027)은 ‘뜨거운 인생’을 주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철없이 지내며 누구나 맞이하는 초‧중‧고등학교 졸업을 거쳐 철이 들어 사회로 진출하며 맞이하는 대학 졸업이 ‘제1의 졸업’이라면 직장에서의 정년이 ‘제2의 졸업’이고, 세월이 흐르며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가오는 ‘죽음’이 ‘제3의 졸업’이 아닐까요. 제2 졸업을 마치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을 따라 건강과 활동력, 경제력, 할 일 그리고 친구 등이 줄어드는 제3의 졸업으로 다가가고 있는 ‘지금’이라는 삶의 길목에서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보다 잃지 말아야 할 작은 것들을 지켜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새로 맞이할 ‘15년 삶’에 더욱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픈 상념에 젖어들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대학 졸업 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제’가 되어버린 학창시절은 미래의 꿈과 희망을 설계하고 변화를 추구해 나가야 하는 소중한 ‘오늘’이었고, 정년이라는 제2의 졸업으로 마감한 재직 시절도 소중한 ‘오늘’이라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년 후 맞이해 지내고 있는 지금의 ‘15년 삶’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매우 소중한 ‘오늘’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힘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오는 ‘오늘’이란 시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침부터 시작되는 일들의 ‘선택’과 ‘변화’는 자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삶이 덤이 아닌 ‘제3의 인생(Third Age)’이라고 했던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윌리엄 새들러 박사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며 맞이하는 은퇴 후 30년의 삶을 ‘뜨거운 인생(Hot Age)’이라고 다시 명명한 바 있습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연말을 맞이하며, 네 번째 ‘15년 세월’의 삶이 ‘선택’과 ‘변화’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며 활기 넘치던 젊은 시절 못지않게 ‘뜨거운 인생’으로 지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내가 축복을 받고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개략적으로 계산해보니 2만 6천일이 넘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60만 시간이 넘습니다. 100세 장수시대라는 말에 의미를 담아 네 번째 ‘15년 세월’을 활기차게 지낸 다음 맞이할 95세까지의 삶을 다섯 번째 ‘15년 세월’로 설정하고 삶의 여정을 살펴보니 새로 맞이할 날 수가 8천일 정도이고, 시간으로는 20만 시간 정도가 됩니다. 이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60만 시간에 비해보면 매우 짧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행복은 지키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몫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은 삶의 여정에서 매일 24시간씩으로 열려 다가오는 세월을 어떻게 관리하며 ‘뜨거운 인생’으로 살아나가야 할까요.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선물로 주어지는 ‘오늘’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내일’을 열어가야 하는 날이며,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탁상에 놓인 달력에 보이는 며칠 남지 않은 경자년 날들로 가슴과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오늘’과 ‘지금’이라는 단상에 잠겨, 새로 열릴 신축(辛丑)년 삶의 길목에서 맞이할 ‘선택’과 ‘변화’에 담을 ‘꿈’과 ‘희망’을 떠올려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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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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