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이민자와 스위스 이민자 [김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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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자와 스위스 이민자

2020.12.12

요즘 한국에서도 이민자 관련 사회적 이슈와 뉴스를 예전보다 자주 접합니다. 한국에 비해 이민 역사가 훨씬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 호주 등에서도 이민자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가 살아본 호주와 스위스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대조적이라는 점입니다. 두 나라 모두 이민자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그 이유는 완전히 상반됩니다. 호주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너무 일을 잘 하고 열심히 해서 불만인 반면, 스위스인들은 이민자들이 일은 안 하고 복지혜택만 누리면서 놀고먹어서 불만입니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부족. 스위스는 인구가 800만 명으로 서울 인구보다 적지만, 1인당 GDP가 81,867달러나 되는 부국입니다.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지요(IMF 2020). 고도화된 기술력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노동인구가 몰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인력부족 산업이 속출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유로 스위스는 이웃나라들로부터 많은 인력을 흡수하여 고용합니다. 이웃 국가들의 실업률을 낮추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나라가 스위스입니다.

스위스 이민자들의 부류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유럽국가 출신의 고학력 이민자와, 발칸반도 혹은 중동에서 온 저임금 단순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 이민자입니다. 스위스 자체가 워낙 폐쇄적인 사회라 이민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거부감이 있지만, 특히 후자 쪽에는 상당한 적대감마저 갖고 있습니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발칸반도는 유고슬라비아연방 설립부터 해체 이후까지 끊임없는 내전과 갈등으로 이웃 나라들을 긴장시켰고, 그 결과 수많은 난민을 발생시켰지요. 중립국인 스위스도 많은 난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인 스위스의 복지혜택만 받을 뿐 적극적인 경제 참여를 하지 않고, 크고 작은 안전 문제를 일으켜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습니다. 스위스인들은 이들을 경멸조로 ‘유고’라 부르며 뒤에서 욕을 합니다.

또 다른 이민자 그룹은 속칭 ‘아랍’ 또는 ‘무슬림’이라 불리는 중동인들입니다. 이들과는 ‘유고’와는 다르게 문화적 차이와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이 있습니다. 스위스인을 특징짓는 말은 원칙주의, 자율과 절제, 준법정신인데,. 중동이민자들은 이런 면에서 스위스인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호주는 남한 면적의 77배나 되는 땅에 불과 2,500만 명의 인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어 건설노동자, 엔지니어, 미용사, 벽돌공, 용접공, 요리사 등 모자라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입니다. 최근 선별 이민정책으로 이민의 문을 좁혔지만, 호주는 노동의 가치를 높게 여깁니다.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미국 여행길에 바에서 멋들어지게 한잔 하던 호주인이 자신의 직업이 배관공이라고 밝히자, 바텐더가 “어떻게 배관공 벌이로 이 먼 미국까지 비행기 타고 놀러올 수 있냐”며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호주에서 한국인은 타일 공사를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주택이나 가게의 벽과 바닥에 타일 붙이는 일을 하는데, 한국인이 하면 빠르고 깔끔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지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투철한 직업윤리로 열심히 일해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중국인 역시 그들 나름의 경제공동체를 이루어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많은 중국음식점과 재료 공급망은 호주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호주는 중국인이 없으면 굶어죽고, 한국인이 없으면 더러워 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서비스업에서의 성실한 이민자들의 활약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삶을 영위하던 로컬 호주인들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지게 됐습니다. 실제로 많은 직업군에서 길드 형식의 자국민 보호 현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연봉 직종인 도로건설 현장에서 아시아인이나 유색인종이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여성의 비율도 높습니다. 솔직히 말해 일에 비해 인력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짝을 지워서 일을 시키고,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 반복 노동에 굳이 사람을 채용합니다. 육체적으로 덜 힘들고 고액 연봉인 직업군을 유색인종 이민자들로부터 보호하고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호주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불만을 들은 스위스인들은 “그런 이민자들만 우리나라에 왔으면 소원이 없겠다”면서 부러워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 200여 국가에 한국인이 살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치열한 국제경쟁 시대에 그런 나라와 경쟁해 이기지 않으면 국력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한국인은 높은 교육수준에다 '빨리 빨리'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립시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래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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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민교

DHR International 전무
전 ALSTOM Power 글로벌 영업&마케팅 담당, 글로벌 오퍼레이션 전략 담당, R&D 포트폴리오 리더,
전 SAMSUNG SDS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 멜버른 비즈니스 스쿨 MBA, 멜버른 대학교 (전자공학, 컴퓨터 사이언스)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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