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항공관광 선물[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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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항공관광 선물

2020.12.11

신형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동으로 시작된 금년은 우리 전통 생활양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와 관혼상제(冠婚喪祭)는 물론 학교 교육까지도 많은 타격을 받는, 과거에 유례를 찾기 힘든 한 해가 되었습니다. 이 답답한 생활에 ‘일진(一陣)의 청풍’이라 할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 침체된 사생활 분위기를 약간 바꾼 ‘연말 선물’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키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규제가 격상되기 전 이야기입니다.

이 뜻하지 않았던 선물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큰딸의 아들이었습니다. 국철(國鐵)의 기관사로 일하면서 항상 관광 관계 소식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이 외손자가 어느 날 남한 상공을 저공(低空)으로 일주하는 토요일 항공관광여행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년 한두 번 가족 소풍이나 여행을 하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이것은 약 30년 이상 계속된 우리 집안의 자랑거리입니다. 금년은 코로나19 때문에 이 집안 전통도 이어가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딸들이 이 기회에 여행과 관광의을 겸한 짧은 가족 나들이를 꾸며보자고 생각해 냈습니다. 항공관광을 끝낸 직후 인천국제공항 근처의 고급 호텔에서 1박하고 다음 날 공항 근처와, 최근 크게 개발되어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인천 송도지역을 관광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항공관광을 함께한 큰딸 모자와 셋째 사위

이 제안이 근처에 사는 가족들의 찬동을 얻어 저를 포함한 네 사람이 하늘의 관광여행에 참가하고 약 2시간 반 뒤 비행기가 공항으로 돌아오는 즉시 딸 두 사람이 합류하여 공항 근처 호텔로 이동하는 일정이 짜였습니다. 1박 여행에 동참은 못 하지만, 집에서 공항까지의 편도는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제 편의를 위해 아들이 자기 차로 수고하기로 했습니다.

항공관광에는 저 외에 휠체어 운전을 도와줄 셋째 딸의 남편과, 네 사람의 항공요금을 자진 부담한 외손자와 그의 어머니, 이렇게 네 사람이 결정되었습니다. 항공관광이 끝난 뒤 둘째와 셋째 딸이 나머지 관광에 참가하기로 약속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그렇게 붐비던 공항 국내선 터미널은 마침 그 시간에 우리 항공관광 한 편만이 이용하기 때문에 너무나 한산해서 보통 때의 공항터미널 분위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을 따라온 꼬마들만이 신기한 듯 넓게 비어 있는 로비 안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휠체어 신세가 된 이후 가족 관광여행에 서너 번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만 비행기 여행은 처음이라 퍽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탑승수속이 시작되자 승무원들이 승객을 약 30명씩 나누어 붐비지 않게 일을 처리해 분위기는 옛날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항공관광에 특별히 이용된 비행기는 이 항공사가 자랑하는 초대형 A380기였습니다. 원래 6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모양인데 비행기 창(窓)을 통해 지상 관광을 할 수 있는 좌석만 판매한 듯 탑승객은 약 300명가량으로 보였습니다.

A380은 초대형기라 공항 랜딩 브리지에 직접 연결할 수 없어, 승객들은 버스를 이용해 비행기까지 이동해야 했습니다. 저 말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손님이 또 한 분 계셨습니다. 휠체어 탄 손님은 화물 적재 때 쓰는 특제 승강기(리프트)로 비행기 좌석 출입구까지 옮겨주었습니다. 기내에서는 좌석 사이가 좁아 기내용 휠체어로 승무원이 좌석까지 안내해 주었습니다. 네 사람 중 저만이 1등석 표를 배당 받았는데, 평생 세 번째로 타보는 1등석은 따로 구획된 데다 대형 창이 있어 지상 관광을 하기에 아주 편했습니다.

비행기는 동쪽으로 강릉 상공까지 가, 거기서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뒤 남해안 다도해의 절경을 거쳐 제주도로 직행했습니다. 평균 고도 1만 미터를 유지하다가 제주도 상공에서는 약 5,000미터 높이까지 내려와 섬 상공을 세 바퀴 돌며 한라산의 백록담과 서귀포의 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평소 제주 가는 여객기는 한반도 서해안을 거쳐 바로 제주공항에 착륙하기 때문에 특별기가 보여준 제주도의 아름다움은 이번 여행의 백미(白眉)였습니다. 기장의 설명에 의하면 대형 여객기의 이러한 저공비행은 항공관제관의 특별 허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도중에 나온 연어 스테이크 기내식도 손님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공항 근처의 호텔은 주말이라 가족 동반 손님이 많아 입실 수속에도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골프장이 가까이 있는 이 공항 마을의 야간 조명 장치가 아름다워 모처럼 관광에 나온 우리 분위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이젠 세상을 앉아서 만난다

다음 날, 30여 년 만에 찾은 인천 송도는 ‘상전백해’(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를 실감케 하는 개발된 신도시였습니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송도의 랜드마크인 ‘센트럴파크’만을 집중적으로 구경했습니다. 해수를 유입한 1.8km의 수로를 중심으로 잘 가꿔진 산책로가 넓은 공원 내 사방으로 연결돼 있어 주말을 맞아 산책 나온 시민이 많았습니다. 수로 위에는 각양각색의 유람선이 달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늦가을의 단풍이 주위의 고층 건물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공원이었습니다.

30여 년 전 널따란 솔밭 속에 어울리지 않는 근대식 호텔 한 채와 민가 몇 개가 띄엄띄엄 서 있던 송도를 생각하며, 고층 건물이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자리 잡은 송도의 간선도로를 빠져 나와, 숨 막히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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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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