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빚의 무거움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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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빚의 무거움

2020.12.09

또 한 해가 소용돌이 속에 흘러갑니다. 좀 더 뜻깊은 회고를 하고 싶지만 이 사회를 휩쓴 말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나훈아가 부른 노래 ‘테스 兄’이 나라를 흔들자 윤평중 한신대 정치철학과 교수는 “나훈아가 어용 지식인 유시민보다 더 소크라테스에 가까웠다.”고 찬양했습니다. 박성준 의원은 “(황제 휴가 비리 의혹에 휩싸인) 추미애 아들 서 모 씨의 카투사 군 복무는 안중근의 위국헌신이다”라고 칭송했고, 시민당 대표 출신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추미애는 이순신 장군이다”라는 등 정치권이 쏟아낸 우수마발(牛溲馬勃)이 산을 이루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공격은 국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총장을 겨눴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이라는 말은 S대 철학과 출신인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온화한 인상인데 오죽 급했으면 이런 말로 공격했을까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유머도, 풍자도 아니며, 남의 인격을 폭격하는 저급한 ‘지랄 탄(사방으로 튀던 최루탄)’ 같은 것이어서 우리가 풀어야 할 사안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데 있습니다.

당장 폭언을 퍼부으면 우위에 섰다는 쾌감으로 지지자를 늘릴 것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한 번 던진 말은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지금 그 말빚을 곱씹을 사람이 조국과 추미애, 전·현 법무부 장관이 아니겠습니까? 검찰 인사권 독립이든 뭐든 과거 야당 시절 때 주장한 대로 실행해 보시죠.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인가요?

최근 추 장관은 낙산사에 들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섰죠. 페이스북에 동정을 올리고 검찰개혁을 다짐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탄핵의 사유로) 책을 한 권 만들 수 있다”며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인간이라는 비판이 거셉니다. 노무현의 검찰개혁은 공수처를 만들더라도 수사권만 주고 기소는 검찰에 주려고 했다는 것이니 지금의 괴물과는 다른 것이죠.

추·윤 대결에서 추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난 4일 YTN의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추 장관만 사퇴해야”가 44.3퍼센트, “윤 총장만 사퇴해야”가 30.8퍼센트였죠. 검찰총장은 법치와 민주주의, 헌법의 수호자로 비치지만, 추의 검찰개혁은 정체불명이기 때문이죠. 유능한 검사들을 좌천 시켜 울산시장 관권 부정선거 의혹,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축소 조작 및 조기 폐쇄 의혹, 라임 옵티머스 펀드 비리 의혹 등에 얽힌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게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국회에서 거짓말을 27번이나 했다는 추 장관을 보면 코로나가 아닌 또 다른 악언 바이러스를 유포시키는 게 아닌지 섬뜩합니다.

​코로나건 뭐건 바이러스는 사멸해야 종료되죠. 초기에 중국인에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료계 주장을 외면하고, 거꾸로 한국인이 외국으로부터 차단당하자 강경화 외무부 장관은 “스스로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고 있다”며 국가 방역에 도전했습니다. 자랑스럽다는 K 방역은 창문 열고 모기 잡은 결과, 550명이 넘는 국민의 사망과 수도권 2.5단계 상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만은 230여 일이 넘도록 확진자가 아예 없고 사망자가 7명이지만 ‘T 방역’ 자랑은 못 들었습니다.

여권의 공격은 언론에도 쏟아집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동아일보 출신 조수진 의원에게 ‘찌라시 만들던 버릇’이라고 말 폭탄을 던졌죠. 민주라는 간판을 단 그 입이 경악스럽죠.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진보는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과거의 진보가 아니라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집단 또는 기성체제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독선적 자기 확신과 선악의 이분법에 빠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테러에 가까운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갈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젊잖게 “뭔가 새것 없나 찾고 기다리는 중인데, 윤석열이라는 존재가 현 정부에 반대 생각을 가지거나 반발하는 집단 입장에서는 기대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검찰 직무와 관련돼서 국민에게서 특별한 기대를 받는다는 게 사실은 슬프면서도 웃긴 일이다”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올 한 해 여당이 강공을 퍼붓는 것을 보니 임기 말입니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라도 만들겠다.(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고 했지만 주택 가격 폭등, 민생고, 검찰총장 몰아내기로 정권의 인기가 폭락입니다. 검찰을 막으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보험이 절실한가 봅니다. “나를 반대한 국민도 포용하겠다”던 초심을 소환하지 않는 한 레임덕의 지지도는 더욱 내리막으로 굴러갈 테죠. 거꾸로 추 장관은 ‘원전 폐쇄의 중심’이라고 할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인이던 이용구 씨를 법무차관에 앉혀 윤 총장 징계에 관여시키며 원전 경제성 조작 수사를 윤 총장의 정치적 야망이라고 공격합니다. 윤건영 의원은 “원전 수사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떼를 씁니다. 경제성을 조작해 원전을 폐기한 것과 이를 수사하는 것, 어느 쪽이 민주주의 도전인지 국민이 더 잘 알죠. 원전 폐기는 국민투표로 물어봤나요? 그러니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선 41퍼센트 득표를 언급한 게 아니겠습니까? 헌법에도 없는 공수처라는 새 권력기관을 만들어 헌법에 명시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것은 입맛에 맞게 권력기관을 분할통치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요?

​야당이 “추 장관은 사퇴하고 윤 총장은 정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라”고 요구하고 재판도 안 끝난 두 대통령의 과오를 사과하겠다고도 합니다. 윤의 중력으로 반문 세력이 결집하여 자당의 군소 후보들이 왜소해지자 던지는 소리라고 칩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야당이 2% 부족하다고 착각했습니다. 도대체 그 몇 배가 부족한지 정말 모르시나요?

​야당 지지도의 상승은 반사적이라 언제라도 등 돌릴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 회복이나 법치라는 본질을 젖혀놓고 농담 따먹기처럼 지엽말단을 갖고 음풍농월하는 한 야당에 집권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현금 공세 포퓰리즘의 확산에 맛 들이는 여당 지지 세력이 점점 더 커져서 난공불락이 될지 모릅니다.

가뜩이나 몸도 마음도 옴짝달싹 못 하는 ‘코로나 블루’의 세상인데 한 번도 겪지 못 한 정치판의 폭언 난맥상으로 국민은 실로 우울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년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이….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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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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