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안 클럽’, 역사의 흔적 사라지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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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안 클럽’, 역사의 흔적 사라지다

2020.11.24

1980년대에 국립중앙의료원(NMC, National Medical Center)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NMC는 현대식 종합병원으로서 규모와 시설은 물론 유명 의료진의 면면만 봐도 국내 의료계에서 확고한 역할과 위치를 차지하며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NMC의 이러한 명성과 좋은 기억, 저변에는 한국동란 중 피란 시절, 부산시 영주동에 있는 중학교 교정에서 바라본 그 ‘대형 백색 병원선’의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1958년에는 서울에 초현대식 대형 ‘스칸디나비안 병원(Scandinavian Medical Center, SMC)’이 세워진 것을 보며 자랑스럽게 여겼던 감회 또한 남달랐습니다.

국내 여러 종합병원의 규모가 대형화한 오늘의 잣대로 보면 현 NMC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1958년 개원 당시 SMC는 전후(戰後) 허허벌판에 세워진 현대식 대형 종합병원으로서 나름 웅장한 면모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3국’이 우리나라가 무척 어려울 때 ‘달랑’ 현대식 대형 병원 건물만 세워준 게 아니라, 임상 각 분야의 ‘서양 의료진(전문의, 간호사, 관리 요원)’이 함께 참여하면서 당시 고통받는 우리네 환자에게 따듯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다는 점입니다. 시쳇말로 ‘Hardware’와 ‘Software’를 입체적으로 제공한 드문 사례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수많은 국내 의료인이 스칸디나비아 3국에서 유학하며 직접 선진 의학을 만날 기회를 제공한 교육기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SMC는 한국 현대의학사가 꿈틀거리는 역사적 현장이며 현 국립중앙의료원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NMC를 방문했을 때 ‘스칸디나비안 클럽(Scandinavian Club)’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즐겼습니다. 시내의 여느 서양식 레스토랑과는 사뭇 달리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차분한 조명과 함께 유럽풍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실내장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앙벽면을 장식한 스칸디나비아 3국, 즉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국기가 유럽적 분위기를 더욱 고취했습니다. 요컨대 NMC의 뿌리가 바로 SMC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바이킹식’ 요리가 요즘 우리나라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뷔페식당’의 원조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SMC에서 우리나라 뷔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전 의료인 모임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다기에 오래전의 ‘스칸디나비안 클럽’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옛 자취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근래 눈에 익숙한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주위를 살펴봤지만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의료원 행정 책임자가 과감하게 클럽을 없애고, 그 자리에 팬시한 카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필자는 아쉬움을 넘어 몹시 불쾌하고 참담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박한 눈높이를 보는 듯해 서글펐습니다.

우리나라를 찾아온 스칸디나비아 국빈은 물론 그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해외 인사들이 잘 보존되고 정성스레 가꾼 ‘스칸디나비안 클럽’을 보면 큰 호감과 함께 우리 사회에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능동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든 수동적으로 그 고마움을 받든 ‘아름다운 마음’이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서울을 찾은 스칸디나비아 3국의 저명인사가 흔한 호텔보다 그 ‘클럽’에서 영접을 받는다면 얼마나 멋스러울까. 이런 생각을 하니 더욱 큰 아쉬움이 몰려왔습니다.

아울러 역사는 가꾸며 보존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故 용재(庸齋) 백낙준(白樂濬, 1895~1985) 선생님의 고언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품위 있던 ‘스칸디나비안 클럽’의 흔적이 사라진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한편으론 복원 가능성은 없는지 ‘부질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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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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