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행동의 차이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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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의 차이

2020.11.19

기업에서 전략을 세울 때 거치는 단계가 있습니다. 강약점 분석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 회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합니다. 경쟁 상대방의 강약점도 분석합니다. 손자가 말했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와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분석 내용을 토대로 실행안을 고안합니다. 우리 회사의 강점을 강화, 활용하여 경쟁 상대의 약점을 공격한다는 게 전략의 기본입니다. 실제로는 경쟁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시장이나 고객의 요구에 잘 응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 회사 직원들에게 전할 때 항상 말했습니다. “강점을 강화, 활용하려 해야지, 약점을 보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약점을 보완하느라고 자원(자금, 사람, 시간)을 많이 투입해도 성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이런 생각을 개인행동에도 적용했습니다. 생각만큼 잘해 오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에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데 이걸 낭비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의식한 때는 마음속으로 ‘사람이 어떻게 이성에만 따라서 사나, 감성과 본능에도 따르는 게 인생이지’ 하는 식의 강력한 자기 합리화 논리를 폈습니다.

지난달 『작은 시도』(10월 20일)라는 글에서 평생 잘못하던 글씨 쓰기를 개선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쓰면서, 그리고 이후에도, 자신의 논리에 반(反)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작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잘하는 일(강점)을 더 잘해야지, 못하는 일(약점)을 개선하려면 시간만 낭비하고 성과는 얻지 못할 것인데’라는 걱정인 거죠. 무엇보다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거스른다고 생각하니 속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회사의 직원들 앞에서는 강점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며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강점이 과거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주변의 다른 능력도 (강점만큼은 아니어도) 동반 성장합니다. 사업에 필요한 관련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설득력을 높이느라고 산의 모양을 이용하였습니다. 꼭대기를 강한 능력, 주변부는 높이에 따라 차이가 있는 다른 능력이라 합니다. 높은 산은 주변부도 다른 산에 비해 높다는 데서 강점을 더 높이면 다른 능력도 높아진다고 설명하는 것이죠. 거기에 더해 높은 산은 산자락의 면적도 낮은 산보다 넓다는 데서 강점을 더 높이면 과거에 없던 능력도 개발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자신에게 있는 얼마간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행동해 왔는데 글씨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을 정도로 못쓴다면 아예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언젠가 말했던 다음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겁니다. 한 가지는 약점을 지닌 채로 사업을 하는 거죠. 그래서 업계에서 2류, 3류의 회사로 존재하지요. 다른 선택지는 그 약점 부분에서 단기간에 혁신을 이루기 위해 시도하는 겁니다. 내부 자원을 집중 투입해서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사람을 구하거나 기술을 사 오는 방법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 외부에서 능력을 조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글씨 쓰기가 내 삶에 치명적인 약점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씨를 갖지 못하는 일이 치명적이지는 않다 해도 꽤 큰 약점이기는 합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PC가 출현해서 약점을 많이 가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글씨 쓰기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십 년 묵혀두었던 문제를 얼마간이라도 덜어버리고 싶은 내면의 요청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숙제는 ‘연습을 하면 글씨 쓰기 능력은 개발 가능한가?’입니다. 삶에 치명적인 부분은 아니라 해도 쓰기라는 재능으로 말하면 치명적이라고 여겨 왔는데 말이죠. 이제는 ‘재능은 개발이 가능하다’와 ‘치명적인 약점 개선은 어렵다’는 모순되어 보이는 내면의 주장이 공존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카너먼(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심리학자)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이라면 위안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모순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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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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