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인 탄생 100주년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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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시인 탄생 100주년

2020.11.06

‘승무’로 유명한 조지훈(1920~1968)은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불린 시인입니다. 그가 다른 두 명과 다른 점은 시인으로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멋을 탐구해 한국학의 기틀을 다진 학자이며 한학에 조예가 깊은 교수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점입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빛나는 명문 ‘지조론’(1960년)을 비롯한 각종 논설을 통해 시대의 병리를 질타하며 올곧게 바른길을 추구한 지사적 풍모입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6월 18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문학의 밤, 학술대회 등 ‘2020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열었습니다. 금년 대상자는 조지훈과 곽하신 김상옥 김준성 김태길 김형석 안병욱 이동주 이범선 조연현 한하운 등 열한 분입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처음 생존 문인으로 100년을 맞았습니다. 계간 ‘대산문화’ 여름호는 김상옥 이동주 조연현 조지훈의 유가족들이 생전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회고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이 중 조지훈의 경우 생전에 재직했던 고려대가 탄생일(12월 3일)을 앞두고 ‘지훈 주간’을 설정해 11월 9일부터 다양한 행사를 합니다. 먼저 9일에는 도서관에 조지훈의 기증 자료 등을 전시한 ‘조지훈 열람실’이 개설됩니다. 고려대박물관은 유족이 기증한 친필 원고 등 유품을 공개하는 특별전시회 '빛을 찾아가는 길, 나빌네라 지훈의 100년'을 엽니다. 육필 미발간 시집 '지훈시초'가 처음 공개되는 이 전시회는 내년 3월 20일까지 계속됩니다. 또 11일 ‘조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강연·추모좌담회'와 12일 '학생들과 함께하는 조지훈 시 낭송 축제', 13일 학술대회 등도 개최됩니다. 아울러 세계시인 동상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국립대에 조지훈 흉상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제막식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산책 길의 조지훈.
옷차림과 걸음걸이에서 멋이 우러난다.

다른 문인들에 비하면 탄생 100주년 행사가 훨씬 다양하고 풍성합니다. 고려대의 경우 문과대, 국문학과, 민족문화연구원, 박물관, 도서관, 의료원 등이 다 나섰습니다. 지훈은 1947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행사가 풍성한 것은 이 대학의 교풍 덕분이거나 제자들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훈의 인품과 업적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일화를 읽어보면 어느 한 구석 구차스러운 게 없고 당당하며 의연합니다. 6·25 종군작가 시절, 술 마시는 문인들을 본 군인이 총을 휘두르며 심통을 부려 다들 겁먹고 숨죽인 상황에서 홀로 일어나 호통을 쳐 제압하고, “지옥불이 무섭지 않으냐?”며 목사가 담뱃불로 손등을 지지는데도 끄떡하지 않아 상대를 질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그런 사례입니다. 한복을 즐겨 입던 지훈이 어느 겨울날 강의를 하면서 “솜바지를 입으니 조지가 훈훈하다”고 농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6척 장신에 굵은 안경테 속에서 먼 곳을 보며 걷는 사진은 그의 고운 시, 깊은 학문과 매운 지조 등 고고한 지성을 읽게 해줍니다. 이미 노성한 대가와 같아 보였지만, 숨질 때의 나이는 겨우 48세였습니다.

조지훈 탄생 100주년 특별전 포스터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병에게’라는 시를 발표했던 지훈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타계하자 같은 문과대의 영문과 교수였던 김종길 시인은 “나라도 경영할 수 있는 큰 인물을 잃었다”며 슬퍼했습니다.

지훈의 제자인 시인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조지훈 선생은 4·19를 겪으며 이미 이 땅의 가장 존경받는 스승의 높은 자리에 올라 있어 그의 글과 기백이 캠퍼스 곳곳에 스며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지훈의 3남인 조태열 전 주 유엔대사는 “48세에 돌아가셨지만 사진을 보면 20대 때 이미 40대처럼 중후한 모습이셨고 그 모습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자식이 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근엄함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일찍 늙으면 중년이 길어 좋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지훈의 집안에는 ‘삼불차(三不借)’ 가훈이 있다고 합니다. 재불차(財不借), ‘재물을 빌리지 않는다’, 문불차(文不借),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 인불차(人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입니다. 남의 재물을 빌리지 않고 남의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고 대를 이으려고 인위적으로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태열 씨는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와 삼불차의 교훈으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인물을 평가하고 고르는 기준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있습니다. 첫째 인물이 잘났나, 둘째 말을 잘할 줄 아는가, 셋째 글씨는 잘쓰는가, 넷째 일과 사물에 대한 판단이 옳은가, 이 네 가지가 기준입니다. 이 네 가지에서 조지훈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맵고 반듯한 선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술꾼을 부주(不酒)부터 폐주(廢酒)까지 열여덟 단계로 분류한 '주도유단(酒道有段)'이나 '멋 설' '돌의 미학' 같은 글에 드러나듯이 지훈은 호방한 애주가이면서 뛰어난 멋쟁이였습니다.

무녀리 모지리 찌질이 칠푼이 조무래기들이 벼룩 장판 뛰기하듯 설치고 깝치고 찧고 까부는 세상이라서 지훈같이 큰 인물이 더 그리워집니다. 지금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떤 논설로 이 비루하고 조야(粗野)한 시대를 헤쳐갈까? 7일이면 벌써 입동, 2020년 한 해의 막바지에 탄생 100주년이 된 큰 인물을 만나고 탐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겨울은 자기 속으로 침잠해 스스로 내면을 키워가는 계절이 아닌가 싶어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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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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