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으내 그리움이 더해 가네

가으내 그리움이 더해 가네 

[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울긋불긋 가을이 익는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는 온데간데없다.


어릴 적, 가을은 먹을 게 많아 좋은 계절이었다.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두어들인다는 뜻의 ‘가을하다’란 말이 이를 말해준다. 떡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술빵을 먹을 수 있었다. ‘입이 궁금하던’ 차에 먹었으니, 그야말로 꿀떡이었다.



입이 궁금하다는 건, 배가 고프진 않지만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말한다. ‘입이 심심하다’와 닮았다. 말맛 차이는 약간 있지만 충청도에선 이를 ‘구준하다’라고 표현한다. 이 낱말, 한성우 인하대 교수는 충남 아산의 방언 조사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이렇게 들려준다.


“구준한 게 뭐유?” “거 있잖유. 딱히 배가 많이 고픈 건 아닌데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 시장한 것은 아니고 약간 출출한 거, 밥 말고 뭔가 주전부리를 하고 싶은 거.”



하지만 (입이) 궁금하다, 심심하다, 구준하다는 우리말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볼가심’의 뜻풀이에서 궁금하다를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이 낱말들은 출출하다, 시장하다, 허기지다와는 또 다른 말맛을 분명 지니고 있다.


연록과 진초록 잎사귀로 덮였던 산이 어느새 오색으로 물들어 간다. 이쯤이면 철다툼도 속도전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 이러다 ‘외로움 이슬처럼 내려앉고/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그리움은 가으내 깊어만 가네’(김지명 ‘그리움은 가으내 깊어가고’)를 제대로 음미하며 읊조릴 시간이나 있을까 싶다.



이 시에 나오는 말맛 좋은 ‘가으내’는 ‘한가을 내내’를 뜻한다. 많은 이가 ‘봄내’ ‘여름내’가 있으니 당연히 ‘가을내’라고 생각하겠지만 가으내가 옳다. 왜일까. 우리말에는 자음 ‘ㄴ’ 앞에서 ‘ㄹ’이 탈락한다. 발음을 부드럽게 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다. 같은 이치로 ‘한겨울 동안 계속해서’를 나타내는 말도 겨울내가 아니라 ‘겨우내’다. ‘겨우살이’가 표준어인 것도 같은 이치다. 이 밖에 ‘멀지않아→머지않아, 길다랗다→기다랗다, 달디달다→다디달다 등도 받침이 없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차지다’와 ‘찰지다’도 이 같은 이치로 ‘차지다’를 표준어로 삼았다. 하지만 언중은 차지다의 원말로 바뀐 ‘찰지다’를 꾸준히 입에 올렸다. 그 결과 찰지다는 경상·전남 지역의 사투리에서 벗어나 복수표준어로 자리매김했다.


가을이다. 지치고 힘든 일상을 벗어나 단풍놀이하기에 그만이다. 한데 이번만큼은 자신을 위한 ‘혼행’ ‘혼놀’에 거리 두기를 하며 즐기시길. 그래야만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를 물리칠 수 있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1101/103733119/1?ref=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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