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방해한 정권이 기업에 감사 개혁을 요구 ㅣ [사설] 월성1호 폐쇄 결정뒤 근거 조작한 정권, 한밤에 증거 444개 삭제


[선우정 칼럼] 감사를 방해한 정권이 기업에 감사 개혁을 요구한다

선우정 부국장


대통령의 환상을 위해

경제성을 조작하고 증거를 파기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법 준수 인식이 이렇게 마비된 조직은

문재인 정부뿐이다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 발표엔 절충의 흔적이 있다. 경제성 평가의 부당성을 확인했지만 조기 폐쇄 자체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정책을 강행하고 감사를 방해한 관료의 징계를 요구했지만 정책을 생산한 청와대를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385일에 이르는 기간에 “처음 보는 심각한 저항”을 경험했다. 거대 여당의 공격을 받았다. 한계를 완전히 넘지 못했지만 여러 측면에서 의미를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은 검찰이 “전화번호는 줬지만 전화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불기소하는 나라다. 대법원은 “거짓말은 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다. 권력자 사건 때마다 팩트와 결과가 엇갈린다. 최재형이 아니라 김명수나 추미애가 감사원장이었다면 “조작했지만 부당하지 않았다”는 발표가 나왔을지 모른다. 감사원은 결정 과정의 부당성을 분명히 밝혔고 청와대 책임을 알려주는 ‘행간(行間)’을 남겼다. 사법부·입법부·검찰이 대통령의 번견(番犬)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헌법기관 역할을 했다. 감사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월성 1호기는 2022년까지 가동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7000억원을 들여 개보수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8년 조기폐쇄됐다./연합뉴스


감사원은 기업의 감사처럼 정권이 썩지 않도록 소금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늘 그렇듯 이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권은 자신보다 남에게 수백 배 엄격했다. ‘공정경제’ 간판 아래 최대주주가 쥔 감사 인사권을 다른 주주에게 옮기는 법안을 만들었다. 최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명목이다.



전횡은 누군가 권력을 독점하고 마음대로 행동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의 최대주주는 본질적으로 기업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잘못되면 가장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최대주주 대부분은 기업을 해치는 행위를 피한다. 두 가지 예외가 있다. 먼저 승계다. 그것도 자본주의 성숙과 혹독한 사법 단죄로 이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다시 일어난다 해도 한 세대(世代) 한 번이다. 다음은 경영자가 개인적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업을 엉뚱한 길로 몰고 가는 경우다. 이 역시 준법 경영과 감시 체제가 정착되면서 기업에선 옛일이 되고 있다.


문 정권의 소위 ‘공정경제 개혁’은 성년이 된 사람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다. 사실 그 기저귀는 문 정권이 차야 한다. 사익을 위해 공익을 축내는 두 가지 사례, 정권의 승계와 대통령의 환상을 위해 국익을 축내는 것은 그 어떤 막장 재벌도 이 정권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세대는 빚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돈이 씨가 말랐을 때 칼이 되어 돌아오는 빚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재정이 건전해 나라가 살았다. 이것은 40대 이상의 공통 기억이다. 그래서 어떤 정권도 내놓고 나랏빚을 불리지 못했다. 문 정권은 거리낌이 없다. 빚 400조원을 더 쓰고, 그 씀씀이가 좋은 것이라고 재정 건전성의 기준까지 끌어올렸다. 정권 연장을 위해 외부 충격에 맞설 수 있는 나라 경제의 기둥 하나를 간단히 무너뜨렸다. 대통령의 이익과 국가 이익이 상시로 충돌하고 있다.


월성 1호기 조기 중단은 환상을 위해 국익을 희생시킨 황당한 사례다. 동의하지 않지만 정치인이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 후 국정 철학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제도와 절차, 원칙의 범위 안에 있다. 대통령이 범위를 벗어나면 먼저 관료가 방어해야 한다. 국가가 공무원 신분과 정년을 보장하고 연금을 주는 이유다. 그런 관료가 청와대가 정해준 답을 도출하기 위해 문제를 조작했다.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일요일 심야 사무실에서 파일 444개를 삭제했다. 지금 한국 대기업 중 컴플라이언스(법률과 절차 준수)가 이처럼 엉망진창인 조직은 없다.


이번 감사 과정에서 한때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말이 화제였다. 감사 대상이었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최재형 원장이 감사원 내부에서 말했다”며 그를 비판하기 위해 공개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 말을 무기로 “대통령 우롱” “대선 불복”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공격했다. 최 원장은 발언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잘못된 말이 아니다. 누가 시킨다고 다 하는 것을 전횡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공무원이 한통속으로 그럴 땐 ‘국정 농단’이라고 한다. 전횡과 농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업을 향해 공정경제와 감사 개혁을 외치고 있다.


최재형 원장은 “대선 공약이라고 국민적 합의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받은 41% 지지를 과연 국민의 대다수라 할 수 있느냐”고도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국민 대다수가 승인하고 합의한다고 해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과 제도, 원칙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아무리 소수라도 다른 견해를 경청해야 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것이 민주와 공화의 원칙이다. 최재형의 감사원은 대한민국에 아직 그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0/10/21/M5VVYJRMXBDLJBGUYRSGZE6IIE/



[사설] 월성1호 폐쇄 결정뒤 근거 조작한 정권, 한밤에 증거 444개 삭제


     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원 감사를 받는 와중에 현 정권 탈원전 정책과 관련한 청와대 보고자료 등 444개 파일을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다. 탈원전 관련 각종 조작이 들통날 것이 우려되자 산업부 공무원들이 회의를 갖고 자료 삭제를 결정했다고 한다. 



조직적인 증거 인멸, 명백한 감사 방해 행위다. 자료 삭제는 담당 공무원이 일요일이던 작년 12월 1일 밤 11시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파일 복구가 되지 않도록 원래 파일명 등을 수정해 다시 저장한 뒤 삭제하는 방법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파일 삭제로는 모자라 파일이 든 폴더까지 통째 삭제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대담하고 철저하게 증거 인멸을 했다. 독재 정권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축사하면서 원전정책을 밝히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재 수명을 연장하여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DB


감사원은 자료 삭제가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주도하에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누가 믿겠나. 공무원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청와대 지시 없이 이런 범죄행위가 자행됐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월성 1호기 억지 폐쇄는 청와대 요구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감사원 감사 자료에 그대로 나온다. 증거 인멸 역시 산업부 실무진 판단이 아니라 ‘근거 자료를 다 없애라’는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감사원은 한수원이 애초 월성 1호 조기 폐쇄가 아닌 계속 가동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산업부 실무진도 조기 폐쇄보다 한수원 이사회 의결 후 일정 기간 연장 가동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2017년 12월과 201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비서실과 백운규 당시 장관에게 보고했다. 청와대 비서실도 처음엔 산업부 방침에 호응했다고 한다. 중대한 사실이다. 누군가 압력을 가해 이를 즉각 폐쇄로 뒤집은 것이다. 누구겠나.


이 기존 방침이 180도 달라진 것은 한 달 뒤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2일 ‘월성 1호의 영구 가동 중단’을 언급하며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질문했고, 그러자 청와대 담당 비서관이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산업부 장관까지 보고해서 확정된 보고서를 받아보라”고 청와대 행정관에 지시했다고 한다. 이튿날인 4월 3일 이 지시가 산업부에 전달되자 백운규 당시 장관이 산업부 실무진에게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 중단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결정된 것은 2018년 4월 2일 문 대통령이 지시한 바로 이날이었던 것이다.


이때는 월성 1호의 폐쇄 시기 등을 결정하기 전에 한수원이 먼저 수행하기로 했던 외부 전문 기관의 경제성 평가가 착수되기도 전이었다. 경제성 평가가 시작도 안 됐는데 결정은 이미 내려진 상황이었다. 대통령 지시에 이어 백운규 당시 장관의 ‘즉시 가동 중단’ 지시 이후 이뤄진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와 6월 15일 이사회 의결은 순전히 요식행위였다. 거기에 필요한 근거 자료는 왜곡 조작으로 만들어졌다. 그랬는데 예상치 않게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되자 청와대는 이 자료들을 없애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사원은 “자료 삭제와 관련해 수사기관에 수사 참고자료를 송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로는 자료 삭제 경위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파일 444개 가운데 120개는 감사원이 복구에 실패했다. 이 120개 파일에 청와대 개입 여부를 규명할 단서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성이 있는데도 없다고 둔갑시킨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물론 신한울 3·4호기를 비롯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 이해할 수 없는 탈원전 정책의 전모가 여기에 들어있을 수도 있다. 파일을 삭제한 담당 공무원도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를 우선적으로 삭제했다”고 감사원에서 진술했다.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자료를 삭제하고 자료가 든 폴더까지 삭제한 것도 단순히 산업부 차원의 비리 은닉, 증거 인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 관련성을 지우기 위해서였기 때문일 수 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월성 1호 조기 폐쇄뿐 아니라 탈원전 정책 전반에 걸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0/10/21/5C2FAELO7BBP3BNEGM7CYJ4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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