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2년 개띠’의 일하는 스타일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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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82년 개띠’의 일하는 스타일

2020.10.16

요즘 창업하는 벤처회사 중에는 마구 튀는 이름을 가진 곳이 적잖습니다. 디지털기술과 세계화에 푹 빠진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 generation:1981~1999년생)가 이제 20대와 30대를 차지하면서 전혀 다른 직장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는 젊은 벤처 창업자는 회사 이름을 ‘하우스 오브 레인메이커스’(House Of Rainmakers)라고 작명했습니다. 레인메이커의 어원은 말 그대로 비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옛날 미국 남서부 사막 지역의 호피 인디언들은 가뭄이 심할 때 주술사(呪術師)를 불러 춤을 추며 기우제를 올렸는데, 그 주술사가 바로 레인메이커였습니다.

레인메이커는 현대 사회에서 그 뜻이 변해서, 회사에서 돈벌이 잘 되는 사업을 개발하거나, 변호사 회사에서 돈 되는 의뢰인을 끌어오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하여간 조직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이 레인메이커인 셈입니다.

2년 전 ‘하우스 오브 레인메이커스’를 창업한 김성균 씨는 밀레니엄 세대의 거의 꼭대기에 해당하는 ‘82년 개띠’입니다. 그는 회사 사업을 소개하며 “스마트시티 컨설팅인데 앞으로 ‘플라잉 택시’(Flying Taxi) 사업도 한국에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세기 사고방식에 머물고 있는 나에겐 그의 설명을 듣는게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입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6년 전쯤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IEVE)에서였습니다. 나는 엑스포의 조직위원의 한 사람이었고, 김 씨는 주한 덴마크 대사관 상무관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는 엑스포에서 덴마크 대사관이 주관한 행사를 챙기고 대사를 보좌하는 데 기민성과 소통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자기 할 일에 선을 긋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일을 챙겨주는 부지런 떠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젠 덴마크 대사관 일에서 손을 떼고 회사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쯤 IEVE 일로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와 커피 타임을 가졌습니다.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급히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캬~” 하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작약했습니다. 그의 설명인즉 ‘세종스마트시티 국가사업’ 입찰에서 그가 컨설팅하는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고 흥분했습니다. 그의 회사가 스마트시티 건설과 관련해서 컨설팅 수익을 얻을 기회가 왔다는 겁니다. 내가 “레인메이커가 됐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엄지손가락을 세웠습니다.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고 병원이 원격 치료를 하고 사물인터넷(IOT)기반에서 도시가 움직이는 게 스마트시티의 골격이라니 그가 언급한 날아다니는 비행 택시 사업도 언젠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우스 오브 레인메커스는 종업원이 10명이라고 합니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며 출퇴근도 마음대로라고 합니다. 프로젝트 단위 일은 맡은 업무와 타임테이블이 정해져 있어 스스로 일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출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답니다. 회사는 10명을 넘기면 비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일이 커지면 분사해서 일을 쪼개서 하는 게 창의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창업할 때 가졌던 대표 자리도 다른 이사에게 넘겼습니다. 스마트시티 컨설팅에서 중요한 것이 외국의 전문가들을 국내 기업이나 도시에 연결시켜주는 것이어서 그런 일에 전념하겠다는 겁니다.

그는 유학파입니다. 중학교 때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교환교수로 영국에 갔을 때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했던 게 자극이 되어 영국 대학에 유학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외국 친구들과 사업하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졸업 후 사업을 찾아 방황하다가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 취직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사업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사업은 자기가 실력이 있다고 혼자 독점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여럿이 저마다의 장점을 갖고 협업하면서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그의 사업관입니다. 미국 사람들과 달리 유럽 사람들은 동업을 잘 하며 그게 지혜인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특히 덴마크는 주요 국가 대사관에 이노베이터(innovator)를 채용하는데, 김 씨도 대사관에서 그 일을 맡아서 기업 간 교류의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회사든 기업이든 다른 사회 조직이든 일을 혁신하는 이노베이터와 일이 되게 하는 촉진자(facilitator)가 필요하다며 자신은 어디서든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김 씨에 의하면 미국 유학파가 엄청 쏟아져 들어오지만 유럽 유학파도 만만치 않게 많아지고 있답니다. 밀레니엄 세대의 해외 유학파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직장 문화에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밀레니엄 세대는 그들의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가 보기에는 아주 다른 인생관, 직업관, 소비 성향을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밀레니엄 세대 청년들은 평생직장은 없으며 100세까지 긴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철밥통인 공무원과 공기업 시험에 매달리는 청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자리를 무한정 만들 수가 없잖아요. 비정규직 일자리와 100세 인생이 그들 앞에 놓인 환경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소비 패턴도 바뀌고 여가 활용 패턴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이비붐 세대처럼 저축하려 하지 않고 좋다 싶으면 씁니다. 요즘 비행기가 착륙지를 정하지 않고 특정 지역 상공을 한 바퀴 돌고 되돌아오는 여행 상품이 잘 팔린다지 않습니까? 베이비붐 세대는 이해할 수 없지만 밀레니엄 세대는 그런 대안을 흥미 있게 받아들입니다.”

그가 말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삶의 방식에서 사회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농업과 제조업에 몸을 담그고 살았던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가 이미 아득히 떠났음을 느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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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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