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나간 한수원...동네 주민에 열람 개방된 ‘원전해체 기밀문서’


[단독] ‘원전해체 기밀문서’를 동네 주민센터에 놓고 열람시켰다


핵심기술 담긴 132억짜리 계획서, 의견 수렴한다며 2개월간 공개


    원자력발전용 원자로 해체 기술이 담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대외비 문건이 관공서 민원실에 두 달간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태로 방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등 원전 후발국에 기술이 유출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1일 조명희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따르면, 한수원은 2017년 6월 가동을 멈추고 해체 절차를 밟고 있는 국내 최초의 원전 ‘고리1호기’의 해체계획 초안을 주민에게 공람시켰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른 절차였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해체계획서’ 책자가 부산 기장군 등 인근 주민센터 민원실 책상에 지난 7~8월 2개월간 전담 관리자도 없이 방치된 것이다.


지난 8월 7일 부산 기장군 일광면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 사무실 책상에 원전 해체 핵심 기술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문서가 놓여있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실


이 해체계획서 제작에는 총 132억원이 들었다. 해외 자료 구매에 10억원, 계획수립 용역에 122억원을 썼다. 계획서엔 사업개요를 비롯해 시설현황, 해체전략과 방사성폐기물 관리방법 등이 담겼다. 일부 블라인드 처리가 됐지만, 전문가들은 “충분히 중요 정보를 역산(逆算) 또는 유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해체 비용 상세 내역은 가려졌으나 총 액수가 공개됐고, 도면은 비공개이지만 부지 현황은 그대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계획서는 그 자체로 대외비 문건이다. 한수원 내부 기술정보관리지침에 따르면 해체계획서는 ‘C급 보안문서’에 해당한다. C급 문서는 사내(社內)에서만 공유하도록 돼 있는 영업상 비밀이 포함된 각종 기술문서를 뜻한다. 이를 유출하면 해임까지 가능한 사안이다.


한수원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한수원 기술직 중간 관리자는 “우리 원전 해체기술이 다 담긴 132억원짜리 문서를 아무 가이드라인 없이 공중(公衆)에 배포한 것은 문제"라며 “30년 원전 운영 노하우가 담긴 중요 문서인데, 중국 등 후발국 원전회사가 정보를 알고 접근했다면 그대로 핵심 기술이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한수원 측은 “법령에 주민 공람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며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안영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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