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법 '비밀유지계약 의무화'의 오해와 진실

상생법 '비밀유지계약 의무화'의 오해와 진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지난 7월9일 입법예고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에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 거래 중인 대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할 경우 '비밀유지계약(NDA·Non-disclosure agreement) 체결'을 의무화하도록 한 것에 대해 기업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외 선진 기업이 기술 거래를 할 때는 NDA를 관행적으로 체결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기업이 해외 기업과 거래할 때는 NDA를 반드시 체결하는 반면 국내 중소기업과 거래할 때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띤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NDA 요구를 거절한 사례가 적지 않고 또 이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본거래 자체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기술탈취는 의외로 거래 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사업 제안·입찰·공모 등 거래 교섭이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특허청에 신고된 부정경쟁행위 218건 가운데 아이디어 탈취는 56건(26%)이었다. 그중 30%가 대기업에 의해 발생했으며 다른 부정경쟁행위와 비교해 대기업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디어 탈취가 발생하는 것은 최초로 아이디어를 창출하기까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교섭 과정에서 상대 측 기술 숙련자가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해당 아이디어를 쉽게 이해하고, 자신들이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며 나아가 상대 측의 아이디어를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기술탈취는 사업 제안을 한 중소기업의 거래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기술을 빼앗아 장래 사업 기회에까지 타격을 입게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비밀유지계약의 체결 의무(개정안 제21조의2)'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는 것은 법조문의 표현이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동 조 제1항에서 "수탁기업이 위탁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 수탁기업과 위탁기업은 …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기술 자료가 제공되는 '모든' 경우에 NDA 체결 의무가 생기는 것으로 해석돼 현행 상생법상 '서면 발급' 의무와 중복 규제가 될 우려를 일으킨다.


현행 상생법은 수탁기업에 대한 기술 자료 요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적법한 형식의 서면이 교부된 경우(서면 발급)에만 적법한 기술 자료 요구가 성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5조 제1항 제12호). 기술 자료 탈취는 수·위탁 관계 형성 전후로 발생하지만 현행법은 수·위탁 관계 형성 이후만을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를 수·위탁 거래를 위한 사업 제안, 입찰과 같은 '본계약 체계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기술 자료 제공 시에 한정해 부과하도록 개정안을 명확히 한다면 기존 서면 발급과의 중복을 피하고, 소기의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탈취 근절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초부터 추진하고 있는 '공정경제'의 주요 국정과제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위상이 격상했지만 여전히 뿌리 깊은 불공정으로 시장질서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맞아 이제는 우리도 중소기업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존중하고 대기업은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건전한 경제로 전환돼야만 한다.

아시아경제



전경련 "대·중소기업 모두 위협하는 상생법 예고안, 신중검토해야"

 

    경제계가 기술자료 입증책임 부담 전환, 제재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상생협력법 입법예고안에 대해 정부에 우려를 표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정부가 지난달 9일 입법예고한 상생협력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중소벤처기업부에 전달했다고 1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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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예고안은 ▲기술자료 입증책임 전환 ▲기술자료 비밀유지협약 체결 의무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손해배상소송 자료제출명령권 신설 ▲손해액 산정·추정 근거 마련 등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제재와 처벌중심 제도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전경련은 기술자료 입증 책임의 전환과 분쟁조정 요청으로 중기부 직접제재가 가능해지면 수·위탁기업간 갈등이 확산되고 기업 간 협력이 저해돼 기업의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에 상생법에 도입된 '구체적 행위태양 제시의무'는 과거 특허법에 도입될 때 정부 자료에 명기된 대로 입증책임 전환을 위한 제도다. 민사법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위반 행위의 입증책임은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에게 있는 것이 원칙인데, 정보의 비대칭 등으로 상대방 고의·과실 입증이 사실상 극히 어려운 분야에 한해 예외적으로 피고에게 죄 없음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전경련은 상생법에서 보호하는 기술자료는 특허권처럼 명확하지도 않은데다 비밀로 관리돼 권리를 주장하는 수탁기업이 가장 잘 알고 있는데도 입증책임을 위탁기업으로 넘기는 것은 기존의 법리와 상충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입법예고안이 통과되면 수탁기업의 입증부담이 완화되고 소송하기 편한 구조가 돼 위·수탁기업이 상대방을 잠재적 분쟁대상으로 인식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든 통신내용 등 거래증빙자료를 기록 관리하는 등 불필요한 비용 발생 외에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공동 기술개발 등 대·중소 협력관계가 위축되고 거래처를 오히려 해외업체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대·중소기업간 협력을 증진할 목적으로 제정된 상생협력법의 원래 취지와 상충될 뿐 아니라, 지나친 정부 개입으로 국내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입법사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한번 맺은 거래처를 자유롭게 변경하기 어려워져 계약자유가 훼손될 우려가 있고 기존 중소기업만 보호할 뿐 새로운 기업의 출현과 혁신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다른 법에도 이미 기술유용 규제가 다수 도입돼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입법예고안은 수·위탁거래 당사자가 분쟁조정을 신청할 경우 당사자가 합의 전이라도 중기부가 직접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 당사자가 시정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징역 1년 또는 벌금 5000만원 등 직접 제재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경련은 분쟁조정이 당사자의 자발적 의지와 쌍방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임에도 조정권자의 시정명령에 대해 형벌권 등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어 분쟁조정의 의미가 퇴색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아울러 당사자가 분쟁조정 결과에 따른 의무를 불이행했을 때 처벌이 아닌 공정위에 대한 신고접수로 조사절차가 시작되고, 시정명령 불이행시 벌금형만 부과하는 하도급법과 비교할 때도 균형이 맞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관련 법령 개선을 촉구했다.




전경련은 의견서에서 상생법이 조사시효와 처분시효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수십년 전 과거 사건까지 당사자의 분쟁조정 요청이 있을 경우 시정명령과 중기부 처벌이 가능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고 봤다. 이에 하도급법을 참고해 법적 미비를 해소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유환익 기업정책실장은 입법예고안에 대해 "기술유용 문제는 다양한 연관 법령의 운용으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인 반면, 입증책임 전환 등 새로운 제재 강화는 기업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탁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이 일방적으로 높아지면 거래처 해외변경이 불가피하고 대·중소 기업간 협력이 잠재적 리스크로 전환되는 한편, 기존 거래관계를 보호하느라 신규 중소·벤처기업의 혁신이 성장하지 못한다"며 "코로나발 경제충격을 극복하려면 상생법 입법 취지에 맞게 기업간 상생과 협력을 지원하는 법·제도가 우선 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희정 Microsof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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