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블루스와 알테 리베의 추억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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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블루스와 알테 리베의 추억

2020.10.06

지난 8월 15일은 복(伏‧復‧福)이 삼중으로 겹치는 날이었습니다. 말복, 광복절…. 남은 하나는? ‘영복(榮福)’. 아내 이름입니다. 그날은 늘 함께 하는 아내의 이름을 더해 트리플로 복을 받은 셈이지요. 닭띠에 태어난 아내의 성씨는 ‘강(姜)’이랍니다. 아내의 이름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귀띔해주는 비밀 아닌 비밀이에요. 어쨌거나 그날 오전 광복절 경축 방송을 시청하고 점심때 아내가 끓여준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가마솥 누룽지를 곁들여.

닭고기는 돼지고기(삼겹살)를 누르고 국민 영양식이 되었지요. 인터넷 검색을 하니 믿거나 말거나 우리나라의 닭 소비량이 연간 10억 마리에 달한다고 하네요. ‘치킨공화국’이란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제 구수한 삼계탕은 나에게도 ‘최애’ 음식이 되었지만 한동안 닭을 못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 때문이에요. 1970년 1월 어느 날 논산훈련소에서였습니다.

그날은 추적추적 치사한 겨울비가 내렸지요. 1,000인치 M-1 사격훈련을 마친 훈련병들은 알철모를 쓰고 판초우의를 입은 채 군가 대신 누군가 선창한 <고향무정>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귀대하였어요. 정한(精悍)한 조교도 사람인지라 그때만은 그냥 '귀 닫아' 주더군요. 내무반에 도착해 관물을 정리‧정돈하는데, 저녁 메뉴가 특식인 닭국이라고 내무반장이 말해주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얀 국물의 닭국이라…. 생각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돌았어요. 일주일 내내 정어리 같은 잡어를 으깬 생선국을 먹던 참이었거든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우렁차게 복창한 후 밥 한 숟갈 미어지게 퍼 넣고 희끄무레한 국 속에 숟가락을 쑤셔 넣는데 전해오는 감촉이 묵직했습니다. "월척이다! 우째 이런 일이?" 한 건 했다는 기쁨이 온몸의 혈관 속을 용솟음치며 치달렸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걸린 것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어요. 한데 이상스레 온몸이 스멀거리고 기분이 꺼림칙했어요. 숟가락에 목이 긴 것이 지그시 눈을 감고 딸려 나오지 뭡니까. 나 역시 눈을 질끈 감고 그놈의 닭대가리를 입안에 욹여넣고 씹다가 뱉어버렸답니다. 지금은 어떻냐고요? 누가 한번 사 줘보실래요? 치맥(치킨+맥주)이면 더욱 좋고.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였을 때 개, 소나 돼지, 오리, 닭 같은 가축에게 경외심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집안 어른들 말로 조상이 죽으면 그것들이 글쎄 떠나지 않고 가축으로 환생해 집을 지킨다나 어쩐다나 해서요. 원래 영험한 귀물(鬼物)인 고양이야(지금이야 반려 동물의 대표 격으로 귀여움을 받지만서도) 떨떠름하면서도 그런가 보다 했죠. 다른 동물들의 경우엔 잘 믿기진 않았지만 그런들 또 어쩌겠어요? 몽둥이를 등판에 숨기고 쫓아다니며 조상님을 냅다 후려칠 수는 없잖아요.

1960~1970년대 충무로 거리도 생각납니다. 지금의 충무로는 반려견 판매점이 많아 ‘개판 5분 전’이 되었지만, 그때는 전파상과 악기점, 통닭집이 유명했습니다. 거리를 걷다보면 두 집 건너 보이는 쇼윈도에 닭들이 줄줄이 꼬치에 꽂혀 누드쇼를 펼치고 있었어요. 참, 충무로의 랜드 마크인 ‘알테 리베’를 빼놓을 수 없겠군요. '알테 리베(Alte Liebe‧옛사랑)'라…, 그곳이 대체 어떤 곳이길래?

알테 리베는 고풍스럽고 우아하면서도 살짝 퇴폐적인 분위기도 전해오는 카페였습니다. 쇠고리가 달린 투박한 검은색 문을 밀고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중절모를 쓴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전신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어요. 영화 <모로코>에 게리 쿠퍼와 함께 출연하고, 저 유명한 노래 *<릴리 마를렌(Lili Marlene>을 부르기도 한, 독일 출신의 레전드 배우이자 원조 팜므 파탈 말이에요. 담배를 낀 손으로 이마를 지그시 누른 채, 그에 더해 다리를 꼬고 앉은 그 고혹적인 자태라니!

그 시절 육체와 정신의 대립 속 한사코 정신을 위에 두려 했던 형이상학적 성향의 젊은이들은 나중 생각함에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도 되는 양 알테 리베를 찾았어요. 그곳에서 갓 송출되기 시작한 FM 음악 방송을 들으며 칵테일을 홀짝이곤 했답니다.

마를레네 디트리히(구글 이미지)

코코아 맛 카카오피스, 솔잎 향 나는 베네딕틴, 위스키 종류인 드람부이…. 그때 우리는 그곳에서 딱히 비난할 수만은 없는 문화적 허영(Flex)에 젖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마음고생이야 상존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때, 거기, 그곳'의 젊은이에게든 ‘지금, 여기 이곳’의 젊은이에게든.

이를테면 하이데거류 현존재(Dasein)의 존재 양식과 근본 구조에 대한 고민 같은 거 말이에요. 즉 '투척된 존재(Geworfenes Dasein)'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 내 존재(In der-Welt-Sein)’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현존재는 투척된 순간 자아에 앞서 이미 세계 안에 존재하는가? 어쩌고저쩌고…. 알테 리베의 어둑한 통로를 비집고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꽃들은 어디로 갔나(Sagt mir wo die Blumen sind(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릴리 마를렌(Lili Marlene>: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양 진영 장병 모두에게 불린 군가이자 가슴 저린 사랑 노래. 노래를 부르는 동안엔 싸움을 멈추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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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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