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나훈아


[만물상] 나훈아

한현우 논설위원


   노태우 정권 시절 여당 고위 당직자가 나훈아를 총선에 출마시키려고 접촉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치를 좀 하셔야겠습니다”라고 하니 나훈아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울긴 왜 울어’를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잘 부릅니까?” 저쪽에서 “그거야 나 선생이 제일 잘 부르죠” 하자 나훈아가 대꾸했다. “그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그렇게 나훈아 영입은 무산됐다.


▶나훈아는 무대에서 몸을 배배 꼬거나 이를 드러내고 웃거나 관객에게 윙크하며 노래한다. 그 덕분에 ‘느끼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처럼 자기 주장이 강하고 그것을 관철할 실력을 보유한 뮤지션도 드물다. 그는 한평생 자신의 음악을 ‘뽕짝’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고 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한 우리 민족 피에 뽕짝이 흐른다고 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 생일에 나훈아에게 와서 노래해 달라고 했을 때 그가 거절하며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나는 대중예술가요.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합니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사세요.” 그는 1996년 일본 공연에서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즉석 가사로 “독도는 우리 땅”을 외쳤다. 이후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때리 직일려면 직이삐라캐라”고 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추석 TV에서 방영한 나훈아 콘서트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다. 무대 매너와 가창력도 여전했지만 쇼 중간중간 한 말이 큰 화제가 됐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느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이 지켰다. 여러분이 세계 1등 국민이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같은 말이었다. 인터넷에는 “속이 시원하다” “하고 싶은 말 대신 다 해줬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나훈아가 정확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발언을 절대로 편집하지 못하게 했다는 걸 보면 분명 작심하고 한 말일 게다. 화병 걸린 국민은 나훈아라는 수퍼스타와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 같아 고맙고 통쾌하다. 나훈아는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부른 신곡에서도 한국인들을 위로한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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