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眼目)과 ‘맹목’(盲目)에 대하여 [권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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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眼目)과 ‘맹목’(盲目)에 대하여

2020.09.26

인류 최고(最古·最高)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는 눈먼 유랑시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마당에 그가 진짜 맹인이었는지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이아>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좌중의 마음을 울리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가인(歌人) 데모도코스는 맹인입니다. 그에 대한 묘사에서 호메로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무사 여신은 누구보다도 가인을 사랑하시어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를 다 그에게 주셨으니
  그에게서 시력을 빼앗고 달콤한 노래의 재능을 주신 것이다.

왜 시인은 남다른 안목으로 세상사를 노래하는 시인을 맹인으로 설정한 것일까요? 우리가 흔히 뮤즈라고 부르는, 시와 음악에 영감을 주는 무사 여신은 왜 가인에게서 시력을 빼앗은 것일까요?

예로부터 눈은 인간의 분별력을 상징하는 신체기관입니다. 하지만 흔히 우리 인간의 눈은 온전한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기관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무사 여신은 가인들의 세상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위해 시력을 앗아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간들의 보는 행위가 오히려 분별력과 판단력을 흐린다는 은유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고전 문학과 신화에서 눈과 분별력의 그런 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왔습니다. <오이디푸스>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괴롭히는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바로 보지 못해 비극적 파멸을 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후손을 얻으리라는 끔찍한 신탁을 피하려 애쓰지만 결국 신탁은 이루어지고 맙니다.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응징으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소경이 됩니다. 이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어리석음에 대한 상징적 처벌인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도 비슷한 은유를 볼 수 있습니다. 리어 왕을 돕다가 그의 둘째 딸 부부에 의해 눈알이 뽑혀 소경이 된 충신 글로스터 백작은 말합니다. “난 눈이 멀쩡할 때도 걸려 넘어졌다”고. 이는 둘째 아들의 계략에 속아 첫째 아들이 패륜을 저질렀다고 믿고, 결국 둘째 아들의 배신으로 그런 파멸에 이른 걸 표현한 겁니다. 그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을 때 두 아들의 진심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거짓 사랑 표현만 듣고 탐욕스런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재산과 권력을 다 나누어주고 진짜 효성스런 막내딸과는 의절한 리어 왕과 글로스터 백작은 왜 자식들의 효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거만 보려는 인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 된 말보다는 듣고 싶은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지금은 최첨단 기술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유튜브 등 매체를 이용하여 어떤 분야에서든 기본적 안목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대해 온전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지니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매일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극단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지닌 정보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점점 더 편향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과 취향에 맞는 정보만 찾아 듣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의 알고리즘도 이런 편향성에 한몫하는 듯합니다. 유저가 시청한 유튜브 기록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취향과 경향에 맞게 정보들이 제공되면서 유저들은 편향된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도 맹목적이 되고 때로는 극단적이 됩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고전 문학에서 온건한 판단력의 중요성을 수없이 노래했듯이 넘쳐나는 정보들로 안목을 지닐 것인지 맹목적이 될 것인지, 곰곰이 고민해볼 일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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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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