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2만원이 주는 걱정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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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2만원이 주는 걱정

2020.09.22

나의 휴대폰 사용료는 매월 3만원에서 5만원 수준입니다. 이번에 정부 여당이 4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고생하는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13세 이상의 모든 휴대폰 사용자에게 2만원의 통신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상생활에서 비대면을 요구함에 따라 휴대폰의 사용빈도나 사용량이 많아진 데 착안한 결정이라고 합니다. 1인당 2만원이 너무 적은 돈이 아니냐는 지적에, 여당 쪽은 4인 가족 기준으로는 8만원이니 결코 적지 않다고 효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 지원액만큼 부담은 덜어지나 나머지는 내야 할 형편입니다. 한 달 치를 몽땅 내준 것도 아니니, 고맙기는 하지만 기억에 남도록 오래 고마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보다 휴대폰 사용료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느낌이 아닐까 여깁니다.

2만원 미만인 사람은 나라 덕분에 한 달 치를 공짜로 썼다는 기억과 함께 짜장면 한 그릇 값이 남았다면 그만큼 고마움의 기억이 더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번 조치는 2만원의 경제적 가치를 크게 생각하는 영세민들을 겨냥한 조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인 가구 기준 60만원이었던 1차 지원금으로 나는 가족들과 회식을 한 두 차례 했고, 안경을 새로 하나 샀습니다. 나머지는 나라가 지원의 목표로 삼았던 경기활성화에 부응하기 위해 동네의 소형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샀을 것입니다.

​안경을 쓸 때마다 나는 나라가 준 돈으로 맞춘 것임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1차 지원금은 나와 국가를 위해 효과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렵 동네 음식점들이 북적였던 기억을 떠올리면 전국적으로 소비 진작 효과도 있었을 것입니다.

​2만원이 절실한 돈인 사람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경제규모로 비춰 큰 구매가치를 지닌 금액은 아닙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라고 하겠습니다. 누가 거저 2만원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뭘로 보냐?”고 기분이 언짢아질 수 있는 돈입니다.

​이 돈은 나의 지갑으로 들어는 돈도 아닙니다. 세금을 징수할 때 징세비용이 들어가듯 지원금을 분배할 때도 비용이 들어가지만, 전체 규모로 1조원에 가까운 이 지원금은 분배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이 KT, SKT, LG유플러스 같은 거대 통신회사로 곧장 들어갑니다. 두 회사의 2019년 기준 연간 매출액은 50조원이 넘습니다.

​통신회사들이 고객으로부터 떼일지도 모르는 돈까지 국가가 대신 갚아주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영세자영업자 지원과 내수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던 1차 지원금과는 성격이 다르고, 휴대폰 사용자들이 실감하기에는 혜택이 사소합니다.

​휴대폰 요금은 각자가 사용량에 맞춰 가격대를 정합니다. 사용한도가 차면 통신회사는 가입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통신은 덜 필요한 부분을 줄여서 필요한 부분에 돌려쓸 수 있는 신축적인 서비스입니다.

​국가의 정책이 꼭 생색나는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받는 사람이 고마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과잉 친절’ 또는 ‘낭비’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분야에다 돈을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예산의 책정과 집행에서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것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1조원 가까운 통신비 지원예산도 일정금액 이하의 소액 사용자를 선별해서 지원한다면 그나마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가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집권당이 아무리 낭비적인 복지예산을 편성해도 야당이 반대하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번 통신비 지원과 관련해 야당인 국민의힘이 반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일회성의 통신비 지원 대신 전 국민 독감백신 접종비용으로 쓰자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보편적 복지 분야이지만, 질병의 예방과 의료비 절감 등 보다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금 나은 예산 사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의 탓이라지만 한 해에 4차 추경편성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 결과 나라는 올 한 해에 100조원이 훨씬 넘는 유례없이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선심이 넘쳐나는 추경안을 보며 ‘돈을 풀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 하나밖에 모르는 정부 여당이 아닌지 점차 걱정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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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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