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범람은 누구 책임인가


폭우 예보에도 비우지 않은 댐… 섬진강 범람은 누구 책임인가

 

다목적댐의 두 얼굴

 

    댐은 홍수기에 물을 가두고 가물 때는 내보낸다. 댐에 담긴 물은 다 같은 물이 아니다.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쓰이고 물이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해 수력발전도 한다. 둘 이상의 용도를 가진 댐은 다목적댐으로 불린다.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이 수문을 열고 방류 중이다. 댐 오른쪽 보조 여수로에서도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 방류로 인한 수해참사, 정부는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

특별재난지역이 된 전남 곡성·구례와 전북 남원·임실·순창 등 섬진강 변에 걸린 현수막이다. 제방이 무너져 물난리를 겪은 주민들은 하늘이 아니라 섬진강댐을 원망하고 있다. 폭우가 예고된 상태에서 댐을 충분히 비워두지 않고 있다가 한꺼번에 방류하는 바람에 그 물폭탄에 강둑이 터졌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댐 운영과 하천 관리, 예보 등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며 "물 관리 체계를 근본까지 손보지 않으면 이런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날 섬진강댐에서 벌어진 일

섬진강댐은 1965년 전북 임실군 섬진강 상류에 완공된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이다.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대는 게 가장 큰 임무다. 총 저수용량은 4억6600만t. 63빌딩 약 625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댐 운영 현황 사이트에 접속하면 장마 기간에 벌어진 일을 복기할 수 있다. 7월 1일 40.9%이던 섬진강댐 저수율은 꾸준히 올라 7월 30일엔 87.1%로 치솟았다. 이날 수위는 195.91m로 이미 홍수기 제한수위(196.5m)에 육박했다. 홍수기 제한수위란 홍수 우려가 큰 6월 21일부터 9월 20일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하는 최고 수위다. 댐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계획홍수위는 197.7m로 설정돼 있다.

섬진강댐은 1961년 설계 당시 만든 홍수기 제한수위와 계획홍수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60년 동안 수정된 적이 없다. 댐에 담긴 물 대부분을 이수(利水)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총 저수용량 대비 홍수 조절용량(3200만t)은 6.8%에 불과했다. 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수자원공사 등 관계기관이 합의하면 홍수기 제한수위를 낮춰 홍수 조절용량을 더 확보할 수 있다.

 


8월 7~8일로 돌아가 보자. 이틀 동안 섬진강 일대에 5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렸다. 섬진강댐 저수율은 6일 75.1%에서 7일 84.1%, 8일 95.3%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8일 수위는 홍수기 제한수위를 넘어 197.42m에 이르렀다. 총 방류량을 보면 섬진강댐이 얼마나 황급히 물을 흘려보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폭우가 내리기 전인 8월 3~6일에는 하루 총 방류량이 초당 100~200t 수준이었지만 7일 328t, 8일 1396t으로 급증했다. 댐이 평소보다 10배 넘는 물을 쏟아내자 결국 8일 낮 12시 50분쯤 남원 금지면의 섬진강 제방이 100여m나 붕괴됐다.

전국 21개 다목적댐을 운영하는 수자원공사는 2018년에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번에 댐 방류로 침수 피해 논란이 일어난 섬진강댐, 용담댐, 합천댐은 그해부터 홍수기 댐 수위가 5~10m가량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이종배 의원실은 "환경부가 홍수보다 갈수기 녹조 등을 고려하며 수량보다 수질에 치중했기 때문"이라며 "수자원공사, 홍수통제소, 기상청 등을 관리하며 홍수 조절 기능을 해야 할 환경부가 치수(治水)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댐은 신식, 하천 제방은 구식

2010년 8월 16~17일 섬진강 상류에 하루 357㎜ 국지성 호우가 내렸다. 하류 지역인 남원에서도 이날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려 수문을 닫아야 했지만, 섬진강댐은 초당 최대 750t을 방류하는 바람에 곡성에서 섬진강이 범람했다. 그 일을 계기로 2400억원을 들여 2015년에 물을 추가로 빼내는 보조 여수로 2개를 설치했지만 이번 수해를 막지 못했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강릉 지역에 하루 877㎜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는 등 기후변화로 강수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환경전문기자 출신으로 '한반도의 댐'을 펴낸 박치현씨는 "댐은 100년이나 200년에 한 번 오는 큰비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됐지만 강 하류의 제방은 정비가 부실해 갑작스러운 방류와 수압을 견디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수자원공사의 비공개 자료인 '소양강댐 비상여수로 하류 하천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소양강 유역에 하루 810㎜의 비가 올 경우 하류 쪽 제방이 터져 춘천 시내가 2시간 안에 완전 침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하천은 수량 변동이 심하다. 특히 섬진강은 최대유량과 최소유량의 격차가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보다 크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환경부는 댐이나 홍수, 하천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고 수질에만 관심이 있다. 물과 그릇(하천과 댐)을 통합적으로 살펴야 하는데 물과 댐은 환경부, 하천은 국토부가 관리한다"며 "섬진강은 강바닥이 높고 제방은 낮은 편인데 방류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이런 사달이 났다"고 했다. 댐이 아무리 신식으로 작동해도 운영과 제방은 구식이라 감당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번 사고는 물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다. 기상청이 해마다 5월 발표하는 여름철 전망은 3년 연속 빗나갔다. 올해 장마는 6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54일간 이어졌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변화로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지역별 강우 패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각 하천이 물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과학적으로 점검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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