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공기업 기강해이 심각...몇시에 출근했는지 아무도 몰라. - 감사보고서


"몇시에 출근하는지 아무도 몰라"…공기업 기강해이 '심각'


코로나19 시국 속, 공기업 감사보고서 보니

코로나 의심 자녀 밀접 접촉 후 출근 하기도

사택 전세보증금 1억원으로 '부동산 투자'

해외파견 직원, 문서 위조해 숙박비 부당 수령


    "내가 몇 시에 오는지 아무도 몰라. 체크하는 사람 없어. 정한 시간에 안 와도 돼."


지난 3월 6일, 유연근무제를 실시 중이던 한국중부발전의 익명 신고시스템 '레드휘슬'을 통해 감사실로 한 신고가 접수됐다.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 이상 지각을 일삼던 A씨의 출퇴근 불량을 지적했더니 그가 위와 같이 반응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평소 외출 시 외출부를 거의 작성하지 않았으며, 어느 날은 병원 진료를 받는다고 부장 이름을 대리 서명하고 나간 뒤 복귀하지 않기도 했다. 감사실은 접수된 신고를 바탕으로 해당 부서에 대한 복무기강, 근태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자료사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조사에 응한 직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A씨는 지각 출근은 물론 금요일 퇴근을 오전 11시 30분에 하거나 점심시간에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부장이 휴가나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출근이 늦었고, 부장이 없으면 외출부를 작성하지 않은 채 나가거나 아예 복귀하지 않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또한 A씨는 법인카드를 사적 모임인 동호회 간식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A씨는 "야근 후 식비와 동호회 간식비 구매를 혼용해서 사용했다"며 "사용한 금액 전액을 환불하겠다"고 진술했다. 감사실은 A씨에 대해 취업규칙 위반, 유연근무 운영지침 위반, 법인카드 관리지침 위반 등의 사유로 징계 조치를 건의했다. 소속직원의 근태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자로서의 유연근무 및 외출부 관리에 소홀했던 부장 B씨도 경고 조치를 받았다.




최근 감사에 적발된 공기업 직원들의 기강해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의심자와 밀접 접촉했음에도 회사에 그대로 출근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4월 4일 토요일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C씨의 자녀가 해외에서 입국했다. C씨는 자녀와 KTX 부산역에서 자택까지 승용차로 동행했다. 두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했고, 자녀는 집 안에 분리거주했다. 4월 6일 자녀가 "몸이 안 좋다"고 해 코로나19 검사를 했고 다음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수원은 모든 입국자에 대해 2주간 자가격리를 의무화했고, 가족 중에 격리자가 있는 경우 감염여부 판정 때까지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C씨는 자녀의 감염여부 판정 전인 4월 7일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자녀의 확진판정 통보를 듣고 당일 퇴근했다. 그는 "진행 중인 중요 업무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어 출근하게 됐다"며 "짧은 시간 출근해 동료들과 거리두기 등의 수칙을 준수했다"고 진술했다. C씨는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실은 "자녀가 해외에서 입국해 의심자로 분류되고 자신도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녀의 감염여부 판정 시까지 재택근무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회사로 출근해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주의 처분을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진 27일 서울 서대문구보건소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시민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한수원에서는 사택 전세보증금 1억원을 회사에 반환하지 않고 2년 넘게 버틴 사례도 적발됐다. 마치 자기 돈처럼 부동산 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된다. 회사 인근 임시숙소에 살던 한수원 직원 D씨는 가족과 함께 2016년 6월에 보증금 1억원으로 하는 아파트 전세계약을 회사와 공동 임차인으로 체결했다. 이 아파트에서 8개월 가량 살던 D씨는 다른 지역의 본부로 전출됐지만, 전세 계약기간 종료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계약기간이 종료된 2018년에 사택업무 담당자가 수 차례 반환요청을 했지만 답신을 보내지 않거나 반환 기일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지난해 6월 사측에서 '퇴거이행강제금'을 매월 급여에서 48만원씩 공제하겠다고 통보하자 D씨는 그해 말까지 반환하겠다고 했지만 또 다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감사실은 "전세보증금 1억원의 사용용도에 대해선 부동산 투자를 했다고 진술했다가 개인 대출금을 상환했다고 진술하는 등 4차례나 진술을 바꿨다"며 "개인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회사 예산을 채무변제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D씨는 본인 소유의 주택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2021년 말에 반환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를 지키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D씨가 소유하고 있는 빌라 1채에 총 4억7000만원에 달하는 12건의 가압류와 1건의 근저당이 설정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사실은 "반환의지를 신뢰하기 어렵고 회수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보고 D씨에 대해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한국석유공사에서는 해외 현지 법인에 파견된 직원이 숙박비를 부당하게 챙긴 행위가 적발됐다. E씨는 숙박기간과 요금이 허위로 작성된 영수증을 제출하고 공문서까지 위조해 실제 지불한 숙박비보다 많은 금액을 수령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지난 24일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당 직원을 파면 조치했다"면서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송구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직원의 비위행위 적발 시 단호하고 철저하게 대응하자는 게 경영진 입장"이라며 "공사 감사실도 국민들의 높아진 윤리의식을 고려해 비위행위 적발을 위한 특별감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세종=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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