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시작한 블루베리 농사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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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모르고 시작한 블루베리 농사

2020.08.24

             
재미 삼아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한 것이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은퇴하고 농사를 한다 하면 마치 귀농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은 일자리가 생겨 제주에 왔다가 제주의 매력에 빠져 그대로 눌러앉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죠. 팔기 위한 것은 아니고 집 안에서 소비하고 친지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텃밭 농사 또는 취미 농사라고 할 수 있겠죠. 블루베리는 따서 생과로 먹기도 하고 잼이나 즙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요.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를 하니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아 주변에서 팔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블루베리는 10대 건강식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쳐왔으며 주성분인 안토시아닌이 안구건조증에 좋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블루베리를 오래 먹어서 안구건조증이 없는 것은 물론 시력도 그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블루베리는 그리 흔한 과일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공급이 넘치는 상황이죠. 블루베리를 재배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해외에서 블루베리가 든 요구르트나 디저트, 케이크 등을 먹어보면서 그 맛과 색에 끌리게 된 후로 머릿속에 늘 블루베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쇼 무대에서 셀린 디온이 부른 '블루베리 힐'이란 50년대 재즈도 약간의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겠습니다. 10년 전 제주에 내려와 넓은 땅을 구하고 보니 좋은 나무와 꽃을 심어 근사한 정원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뭔가 실용성이 있는 작물을 재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주변 지역을 드라이브하다가 블루베리 농장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내도 저도 흥미가 솟아 무작정 들어가보았습니다. 블루베리에 관심을 표하자 농장 주인은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면서 우리가 재배를 하기로 하면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분은 해군장교 출신으로 10여 년쯤 후배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그의 협조 약속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정원 아래쪽 빈 터에 잡목과 잡초를 제거하고 작은 밭을 일구었습니다. 그다음에는 그 후배가 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와주었습니다. 80평 남짓한 밭이었는데 묘목 간 간격을 3미터로 잡아 대략 30주를 심는데 같은 품종이 아니라 줄마다 다르게 해서 여섯 품종을 심었습니다. 품종을 다르게 하는 것은 첫째 수확시기를 다 다르게 하여 한꺼번에 모두 수확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다른 품종 간 수분(受粉)이 되어야 나무가 더 튼튼하고 열매가 좋아지기 때문이라 합니다. 블루베리는 포도와 다르게 송이로 따는 게 아니고 하나하나 낱개로 따는 것이므로 한꺼번에 모두 다 따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여름 수확기 두세 달 간 순차적으로 한 줄씩 따야 따기도 쉽고 따서 처리하기도 쉽습니다.

이런 걸 모르고 그냥 덤벼들었더라면 두고두고 고생할 뻔한 것이니 그 후배 농장주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10여 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들러서 효율적인 가지치기나 적정량의 꽃을 유지하는 방법 등을 지도해 좁니다. 가지마다 피는 꽃을 다 그대로 두면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릴 열매가 수만 많고 크기가 작아 수확도 힘들고 볼품도 없습니다. 블루베리 나무는 잘 유지하면 30년도 더 간다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까지 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블루베리는 수많은 잔뿌리가 얕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특성이 있어 그냥 흙에다 심는 게 아니라 피트모스(peatmoss)라는 매우 부드러운 부토를 사용합니다. 피트모스는 물을 오래 머금는 성질도 있어 블루베리에 적합하다고 하죠. 한 그루당 두 포대 정도를 1미터 폭으로 제법 깊게 판 구덩이에 부어넣고 거기에 묘목을 심습니다. 나무에 물을 주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너무 많이 주면 과습(過濕)이 되어 나무가 죽고 너무 적게 주면 잎이 말라서 죽거나 생산력이 감퇴됩니다. 실제로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낮은 지대에 있던 나무 서너 그루가 죽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극복할 수 있었지만 새들로부터 열매를 보호하는 일이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2년생 묘목들을 심어놓고 나서는 곧바로 방조망을 쳐야 했습니다. 이름은 방조망이지만 방충망으로의 역할도 하고 당시 가끔 출몰하던 노루의 접근을 막아주기도 하였습니다. 비교적 촘촘한 그물망을 높이 3미터로 쳤는데 제법 공사가 컸습니다. 숲에서 지저귀는 새를 생각하면 새라는 것이 귀엽게 보이지만 뜰에 있는 열매를 다 따먹으니 밉기도 하죠. 다른 건 몰라도 귀한 블루베리 열매를 새에게 내줄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방조망을 쳤다고 새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닙니니다. 새 중에도 아주 영리하고 날쌘 놈이 있는데 직박구리란 놈입니다. 이들은 두세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면서 보이는 열매들은 다 따먹는데 어느 날 보니 직박구리 두어 마리가 방조망 안에 들어가서 멋대로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열매들을 따먹으면서 말입니다. 어딘가 뚫린 곳으로 들어왔을 텐데 나갈 때는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어 번번이 작대기를 들고 위협하면서 어렵사리 밖으로 쫓아내야 했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방충망의 이음새 부분이 벌어져 새들의 침입에 취약해지는데 블루베리가 익기 시작하면 방조망 안으로 침입하는 직박구리와의 싸움이 큰 일거리가 됩니다. 망 안에 새가 보이면 쫓아내기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새가 들어온 망의 틈을 찾아서 꿰매줘야 합니다. 강풍이 불고 난 다음 날에는 전체적인 방충망 점검을 하고 여기저기 손상된 곳을 찾아 큰 바늘로 꿰매는데 사다리를 들고 안팎을 다니면서 두어 시간씩 수선 작업을 합니다. 다 막았다고 생각하는데 다음 날 직박구리가 망 안에서 또 날아다니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구석구석 면밀히 살피면서 새가 들어온 틈을 찾아내야 하니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습니다. 한참 뒤에 직박구리는 뚫린 구멍이 없어도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세 마리의 새떼가 망 위에서 뜀뛰기를 하다가 이음새 부분이 느슨해지면 그 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팽팽하게 조이긴 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새의 폐해도 그렇지만 정작 큰일은 자연재해였습니다. 촘촘한 방충망은 새뿐만 아니라 벌레도 막을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대신에 바람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굵은 쇠파이프로 기둥을 해놓았는데도 강풍에 기울어지고 무너지고 하였습니다. 수년 전 태풍에 방조망이 대폭 손상되어 기둥을 다시 세우고 망을 보완하면서 대수선을 했는데 전처럼 천정을 개폐식으로 하지 않고 고정식으로 하였습니다. 수동 개폐식은 열고 닫는 것이 힘들고 망을 약화시키기에 단순한 고정식으로 바꾸었는데 이번에는 눈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개폐식일 때는 겨울에 천정을 열어두면 눈이 아무리 와도 문제가 없었지만 고정식으로 해놓으니 천정이 눈의 무게에 눌려 방조망이 전체적으로 내려앉은 것입니다. 이렇게 방조망조차 제대로 유지하기가 힘드니 농사가 제대로 될 수가 없지요. 천연재해 때문에 두 해나 수확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걸 다시 수리를 해야 하나 하면서 실의에 빠져 있다가 블루베리 농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집수리를 하는 중 기술자 한 분이 방조망을 튼튼하게 잘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여 믿고 한번 맡겨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기둥과 천정의 골조를 더 탄탄하게 하면서 둘러씌우는 망도 다른 것으로 했습니다. 강풍이나 눈에 견딜 수 있을 만큼 성기되 새는 못 들어올 만큼 촘촘한 것으로 했습니다. 새의 침투에 취약한 이음새도 없이 하나의 그물을 통째로 덮어씌우는 망이었습니다. 이제 자연재해나 새에 대한 방비는 되는데 문제는 벌레에 대한 방비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두 가지 큰 문제가 해소되었으니 나머지는 해 나가면서 대처해야지요. 벌레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올해부터 막걸리트랩을 사용하여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습니다. 큰 플라스틱 생수병 각 면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고 병에 막걸리와 에틸렌, 설탕을 섞어 블루베리 밭에 여러 개 매달아 놓으면 벌레들이 냄새를 맡고 그 속으로 들어가서 빠져 죽습니다. 막걸리를 벌레에게 내준다는 것에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고마운 마음도 들지요.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아마추어 블루베리 농사를 지금껏 해오고 있습니다. 스스로 가꾼 농산물을 소비한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 보람을 맛보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이 작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텃밭을 가꾸는 주변의 많은 분들도 제대로 농사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갈 것입니다. 하물며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이 시장 판매대에 오르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이 들어갔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비단 농민뿐 아니라 어민도 그렇고 공산품을 만드는 기술자나 노동자도 그렇습니다. 조그만 블루베리 텃밭농사를 하면서 농어민를 비롯해 우리 소비자를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모든 생산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집니다. 우선 음식을 아껴서 먹고 남겨서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생산자에게 진정한 감사를 표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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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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