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도시재생사업..."주민들 떠난다"


무늬만 도시재생… 주민들이 떠나간다


도시재생 뉴딜 3년의 그늘


    골목 구석구석 담벼락 아래마다 쓰레기가 쌓여 악취를 풍겼다. 언덕길 시멘트 계단에는 페인트가 얼룩져 있었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을 한다며 '하늘로 올라가는 벽화'를 그려놨던 곳"이라고 했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니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골목길 양쪽으로 축대 곳곳에 금이 죽죽 가 있는 벽돌집들이 나타났다. 그런 집들에서 홀몸 노인들이 이따금씩 나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집의 매매·임대를 주선해야 할 어느 중개업소 건물은 아예 버려져 간판 색이 누렇게 바래있었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18일 오후 풍경이다. 정부는 최근 2년 새 이곳 난곡동에 도시재생 예산 200억원을 투입했고, 작년엔 '도시재생 우수 사례'라며 상까지 줬다. 주민들은 "도대체 뭐가 우수하단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부동산 중개업소로 쓰던 건물이 흉하게 방치돼 있다.

이사 오는 이 없어 버려진 중개업소 -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부동산 중개업소로 쓰던 건물이 흉하게 방치돼 있다. 유리문에 붙은 업소명 스티커는 누렇게 바랬고 주변에 쓰레기가 나뒹군다. 주민들은 "집주인과 연락이 끊겨 구청에서도 손을 못 댄다"고 했다. /이기우 기자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아파트 공급 대안(代案)'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2017년 4월 "뉴타운 등 재개발사업이 중단된 저층 노후주거지를 살 만한 주거지로 바꾸겠다"며 처음 꺼내들었다. 당선 후엔 이 사업에 "매년 10조원씩 총 50조원 투입"을 선언했다. 3년이 흘렀다. 본지가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돌아본 서울시내 도시재생 현장은 대통령이 약속했던 '살 만한 주거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난곡동은 도시재생 4년차다. 2017년 2월 서울형 도시재생사업 2단계 지역으로 선정됐고, 2018년 8월에는 중앙정부 도시재생뉴딜 사업 지역으로도 선정됐다. 지금까지 예산만 196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는 언덕길 계단·난간 보강, CCTV·소화기 설치, 어린이공원 재정비 정도였다.


도시재생지역 인구 감소

박오성(65) 전 난곡도시재생 주민대표는 "예산을 투입해도 막상 체감되는 변화가 없으니 사람이 들어오기는커녕 계속 빠져나간다"고 했다. 통계로 드러난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난곡동 인구는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된 2017년 2월 2만9923명에서 올해 7월에는 2만7838명으로 약 2000명 줄었다.


서대문구 천연·충현동, 은평구 불광2동 등 다른 도시재생 지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8~2019년 약 170억원 도시재생 예산을 들인 천연동을 지난달 23일 찾아갔다. 창문 곳곳에 검정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비가 새지 않도록 마감해둔 것이다. 기와 지붕에 파란색 부직포를 덮고 그 위에 벽돌을 올린 집도 많았다. 거리에 아무도 없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반(半)지하방 창문으로 흘러나온 대화소리였다. 주민 A씨는 "한번은 길을 잘못 든 어느 모녀가 '동네가 왜 이리 더럽냐'고 말하는 걸 듣고 속이 상했던 적도 있다"며 "우리도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고싶다"고 말했다.


중개업자 김모(70)씨는 "이 동네에 보존할 만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아파트 대신 재생사업을 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천연동에서 50년간 살아온 이근자(85)씨는 "돈 어디 썼는지 알아봤더니, 골목길에 벤치를 만들었고 3층짜리 헌 집을 사서 노인 쉼터를 짓고 있더라"며 "우리끼리는 '돈지랄'이라고들 말한다"고 했다.



공무원들은 "본격적으로 사업 결과물이 나오면 달라질 것"이라고들 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공영 주차장과 주민 문화시설 공사가 끝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천연·충현동 도시재생지원센터 측도 "마을 관리소 등 주요 결과물이 나오면 주민들이 지지해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 도시재생 정책이 서울 아파트값 급등에 악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아파트값이 오르면 아파트가 공급되도록 돕는 게 정부 역할인데, 이 정부는 '동네에 뭘 좀 지어줄테니 그냥 낡은 단독주택서 살라'는 식으로 대응해 결국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을 불렀다"고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 핵심 인사가 '가재·붕어·개구리는 용(龍)처럼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만드는 데 힘쏟자'고 했는데, '예쁜 개천'의 이상과 현실 간 차이를 보려면 도시재생 지역을 둘러보면 된다"고 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낙후된 지역을 전면 철거해 아파트를 만드는 재개발·재건축 대신, 기존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국정 과제로 뽑은 핵심 주거 정책이다. 정부는 전국 500곳을 대상으로 5년간 매년 10조원씩 50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이해인 기자 이기우 기자 조유진 기자 강우량 인턴기자(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9/20200819000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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