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부동산 역풍, 하지만..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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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부동산 역풍, 하지만..

2020.08.19

             
13년 전에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해서 2년 동안 공부를 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떠나기 전에 미국에서 살 집을 알아봐야 해서,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를 소개 받아서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전세가 있나요?”하고 묻자, 중개업자가 혀를 끌끌 차면서 “여기는 월세만 있어요.”라고 대답하는데, 마치 속으로 ‘뭘 잘 모르는 호갱이가 하나 걸려들었구나’라고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미국에서는 신용이 없으면 집을 구할 수가 없다. 내가 보증을 해줄 테니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등등 얼핏 듣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두 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비용을 따로 지불하라는 말에 한국에서 미리 집을 알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미국에 가서 당분간 호텔에 지내면서 집을 알아보자고 마음먹고 미국의 월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과 굳이 중개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렌트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세입자 보호책이 강력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본주의의 선봉에 있는 나라인데도 월세 인상의 상한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입자가 계약기간을 연장할 때, 집주인은 월세를 5%(당시 기준) 초과해서 올릴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살던 세입자가 나가고 다른 세입자가 들어올 경우엔 시세에 맞춰서 월세를 올릴 수 있지만, 살던 사람에게는 주거의 연속성을 매우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제도는 주택 보유세가 구입 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진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살던 지역의 주택 가격은 30년 전만 해도 20만 달러면 적당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열 배인 200만 달러가 넘습니다. 보유세의 경우, 30년 전에 집을 사서 쭉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 구입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면 됩니다. 보통 1% 정도의 보유세를 내니까 매년 2,000달러 정도를 내면 됩니다. 하지만, 같은 수준의 집이라도 최근에 200만 달러에 집을 산 사람은 매년 2만 달러 정도의 세금을 내야 합니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세금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전에 20만 달러를 주고 집을 사서 세월이 지나 은퇴한 후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당신 집값이 올랐으니 올해는 2만 달러의 세금을 내시오.” 라고 얘기한다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정든 집을 팔고 다른 데로 가라는 뜻이라고 봐야겠지요? 같은 집에 살더라도 20만 달러를 주고 산 사람과 200만 달러를 주고 산 사람의 경제력이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최근에 정부 여당이 부동산과 관련한 법안을 통과시킨 후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는 임대차 3법은 옳은 방향의 법이라는 판단이 듭니다. 다만, 주택만이 아닌 상가 임대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잘한 일인데 박수를 받기는커녕 지지율 하락이라는 암초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입법 과정이 독단적이었고, 강남 3구에 2주택을 보유한 청와대 수석들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좋은 취지가 가려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눠서 보는 듯한 정부 여당의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게 표를 줄 사람과 어차피 내게 표를 주지 않을 사람들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유세에 대한 일방적인 인상입니다. 보유세의 경우는 단순히 ‘비싼 집에 사니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가 아니라, 집을 살 때의 경제력에 근거해서 책정되어야 합니다. OECD와 비교해서 우리의 보유세 실효 세율이 너무 낮다는 얘기로 증세의 당위성을 얘기한다면 주거의 연속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게 될 겁니다.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이익을 실현해서 납세를 하라는 얘긴데, 소득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겐 집을 팔라는 얘기가 됩니다. 당연히 저항이 클 수밖에 없겠지요. 필자 역시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큽니다. 20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취득할 때의 가격은 지금 전세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10년쯤 후에는 은퇴를 하고 국민연금으로 생활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보유세가 오르면 세금을 내는 달에는 그 달 치 연금을 다 넣어도 모자랄 겁니다. 그땐 집을 팔고 어디론가 이사를 해야겠지요. 실제 거주하는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안전 장치가 필요한데 거기에 대한 얘기는 없고,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얘기만 하니 가뜩이나 쪼그라드는 중산층은 불안해집니다.

필자는 좋은 정책이 잘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정책이 나오자마자 그 효과를 운운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언론도 좀 더 느긋하고 진중하게 접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책이 나온 지 하루이틀 만에 시장의 반응을 보도하는 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서울 일부 구(區)만의 자료로 서울 전체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이 넘었다는 뉴스도 잘못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여기에 반응을 합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좋고 싫고’를 가르는 데 익숙합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내놨는데도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면, ‘여도담군(餘桃啗君)’일화를 일독해 보고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겁니다. 옛날엔 좋았던 이유가 지금은 싫어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 민심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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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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