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진국 부동산 세제' 강조?..."입맛에 맞는 부분만 손대"


'선진국 사례'로 부동산 세율 인상?… 입맛 따라 '체리피킹'


'취득세 높다'던 싱가포르

3년 보유하면 양도세 면제

영국은 세입자가 보유세 납부


'취득-보유-양도' 고려 않고

정책에 유리한 통계만 제시

"높은세율 골라 편협한 행태"


    정부가 '선진국 세제'를 강조하며 부동산 세율 인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요 국가의 정책 중 입맛에 맞는 부분만 부각시켜 홍보하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체리피킹이란 자신에게 불리한 사례나 자료를 숨기고 유리한 자료만 제시하며 견해나 입장을 지키려는 태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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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다주택자의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을 대폭 강화하면서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부 정책 홍보에 유리한 근거만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득-보유-양도 등 거래 단계별로 각기 다른 수준의 과세가 이뤄지며 맞물려 돌아가는 부동산 세제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가별로 세율이 높은 특정 부분만 제시하며 도입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취득세 높다'는 싱가포르… 3년만 보유하면 양도세는 '0'

대표적인 사례가 싱가포르의 고율 취득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싱가포르의 경우 2주택자부터 12% 이상의 취득세를 부과한다"며 "투기 수요를 줄이기 위해 싱가포르 등의 해외 사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후 정부는 7·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기존의 1~3%였던 취득세율을 2주택자는 8%, 3주택 이상과 법인은 12%로 대폭 올렸다.




이 같은 주장은 국토연구원이 지난 6월 발간한 '프랑스·싱가포르의 부동산 조세정책과 시사점' 보고서에 근간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구간별로 다른 세율을 부과하는 초과누진세율 구조로 1~4%의 기본 취득세율을 갖고 있다. 여기에 최대 30%까지 추가 취득세가 더해진다. 싱가포르 시민을 기준으로 2주택자는 12%, 3주택 이상은 15%의 추가 취득세율이 부과된다.


하지만 당정이 간과한 것은 싱가포르는 기본적으로 주택 양도세가 없는 국가라는 점이다. 투기적 수익을 막기 위해 단기간 보유한 주택에 한해 양도세라고 볼 수 있는 판매인지세(Seller's Stamp Duties)를 물린다. 2017년 3월 이후 취득한 주택의 경우 1년 이내 매각 시 12%의 인지세가 부과되지만 1~2년 보유 시 8%, 2~3년 보유시 4%로 세율은 낮아진다. 3년 이상 보유하면 인지세율은 0%다.




아무리 장기보유를 하더라도 9억원이 넘는 고가주택의 경우 1주택자라도 양도세가 부과되는 한국과는 정반대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지난달 기준 9억2787만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는 장기보유 1주택자도 절반 이상은 양도세가 부과되는 상황이다.


대통령도 '높은' 거래세는 언급 없이 '낮은' 보유세만 강조

부동산 세제의 전체 구조가 아닌 일부만 따와 세율 인상의 구실로 삼는 건 취득세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보유세 부담을 높였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도 낮은 편"이라고 말한 것 역시 통계를 취사선택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0.9%다. OECD 평균 1.1%보다 낮은 수치로 영국(3.1%), 미국(2.7%), 프랑스(2.6%) 등과 비교해도 낮아 OECD 전체에서 17위를 차지했다. 연초 '토지+자유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민간 부동산 실효세율은 0.16%로 자료 확인이 가능한 OECD 12개국 평균인 0.37%의 절반 수준으로 낮은 게 사실이다.


반면 거래세는 GDP 대비 비중이 2.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OECD 통계에는 부동산과 관련 없는 증권거래세 등이 포함돼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증권거래세를 제외하더라도 GDP 대비 부동산 거래세 비율은 여전히 1.5%로 OECD 최고 수준이다. 예정처 계산에 따르면 OECD 평균 부동산 거래세는 0.4%며, 보유세가 높은 영국, 프랑스 등은 모두 0.8%의 낮은 GDP 대비 거래세 비중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국은 거래세 비중이 0.1%에 불과했다.


 


보유세 부담 늘리는 한국… 영국은 보유세 높아도 집주인 아닌 세입자가 내

한국은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를 합친 비중도 2.4%로 OECD 평균인 1.5%보다 높았다. 전체 OECD 국가 중 7위를 기록했다. 1위는 영국(3.9%)이 차지했고 프랑스(3.4%), 캐나다(3.4%) 등이 뒤를 이었다. 독일(0.8%), 네덜란드(1.3%), 스웨덴(1.9%) 등은 한국보다 비중이 낮았다.




특히 영국의 경우 보유세 비중이 3.1%로 캐나다(3.1%)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의 보유세인 '카운슬세(Council Tax)'는 한국과 과세 방식이 천양지차다. 소유주에게 보유세를 물리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실거주자에게 납세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임대주택이라면 집주인이 아닌 임차인이 납세의무자가 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부동산 세제는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세 모두가 정교하게 맞물려서 세액이 결정되는 구조인데 정부가 이를 간과한 채 높은 세율을 가진 부분만 일부 따오는 편협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결국 정부가 원하는 매물 출회를 위해서는 일시적 양도세 인하 등 정책 수단이 필요한데 과세 부담을 늘리는 수단만 구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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