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시대의 시간 보내기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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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시대의 시간 보내기

2020.08.18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사회적 과제가 된 듯합니다. 이런 시기에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지내왔습니다.

#1. 사람 만나기

각종 모임과 만나기 약속이 중단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교유 관계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정기적인 모임들이 중단된 일은 마음을 옥죄어 왔습니다. 처음 연기한 약속은 1월 하순에 한 것입니다. 한 달 뒤에 만나자고 일정을 잡았다가 2월에 접어들자 연기하였습니다. 두 사람과의 약속이었는데, 개개인과는 그래도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만났지만 세 사람이 한자리에서 만난 일은 10년도 넘었습니다. 그랬던 만큼 기대가 컸는데 무기 연기를 하고 나니 아쉬웠습니다. 석 달쯤 지나 상황이 좀 나아졌을 때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학과 동기 모임에서는 산발적인 카톡방 대화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장이 개인들을 한 명씩 부르며 근황을 알리라고 요청했습니다. 서른세 명이 등록되어 있으니 개인 일상 보고가 여러 날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모여서는 듣지 못했을 소식도 읽어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임에 잘 나오지 못하던 친구들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지혜로운 현상 대처법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원이 적은 만남은 조심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답답함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카톡방 대화 같은 아이디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정부는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시 강화한다는 발표를 했으니 최소한 두 주간은 넘겨야겠군요.

#2. 남는 시간 보내기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자주 가지는 않았는데도 관람에 제약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갑갑했습니다. 공연장 가기의 대안으로 삼은 건 아니지만 유튜브 보기에 시간을 많이 소비한 일도 감염병 상황의 한 영향일 터입니다. 이 사태가 오기 전인 작년 하반기에도 유튜브에 빠져 보았습니다. 그 경험의 일부를 『유튜브에서 만난 영재 소녀들』(2020년 1월 29일)이라는 글로 쓰기도 했지요.

그때는 클래식류의 음악을 접했는데 이번에는 주로 대중음악 분야를 대했습니다. 각국의 놀랍고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안젤리나 조단은 열세 살입니다. 이미 일곱 살에 ‘노르웨이스 갓 탤런트’에서 우승한 적이 있습니다. 금년 1월에 ‘아메리카스 갓 탤런트 챔피온스’에 출연했습니다.

이 어린 숙녀는 퀸, 에릭 클랩튼의 노래를 자기 것처럼 소화하여 부르는데 너무나 노련합니다. 큰 소리를 지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듣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듭니다. 노래를 들으면 때때로 오래 살아서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 말하는 듯합니다.

여섯 살 때 길을 걷다가 같은 나이의 맨발 소녀를 만난 이야기도 특별합니다. 처음 보는 그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자기 신을 벗어 주었는데, 이 경험 때문에 무대에는 항상 맨발로 선다고 합니다.

#3. 책 읽기

어쩌다 멀어졌던 독서에도 시간을 써보았습니다. 읽은 책의 감상은 이미 두 번 소개했습니다(『다시 꿈꾸기』-4월 28일, 『한 기독교인의 노작 ‘소설 예수’』-6월 28일). 지금은 피터 드러커가 1970년대에 쓴 『매니지먼트』를 읽고 있습니다. 드러커의 책은 2000년대 초반에 몇 권을 읽었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그때와는 다른 발견을 했습니다. 많은 경영 이론들이 그의 생각의 범주 안에 있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한 예를 들면 ‘고객이 사업의 근원’이라는 생각입니다.

2000년대 들어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경영 서적과 글의 내용을 이 대가가 이미 과거에 다 포괄하는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클레이톤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와해성 혁신이라는 번역도 있음)’ 개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출발점이 고객입니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의 김위찬 교수도 그의 책 『블루 오션 전략』에서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해서 성장 기회(블루 오션)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도널드 로리 등이 쓴 『신성장동력(New Growth Platforms)』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고객의 문제에 성장 기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새로운 이론’들에 기업가가 일일이 귀 기울일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그 ‘새로운 이론’에서 기업가가 잊고 있었던 ‘기본’을 되찾기만 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책을 읽다가 작은 발견을 한 셈입니다. 그러니 불운한 시대 탓만 할 수도 없군요.

#4. 답답함 달래기와 기억 소환

어느 날 아내가 마음이 답답하니 주말에 1박2일의 캠핑을 가자고 하였습니다. 즉시 동의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처음 캠핑을 가려니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런데 이틀쯤 지나서 일기예보를 보던 아내는 취소하자고 하더군요. 캠핑하면서 비 맞는 일도 운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다 말았습니다. 아내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니까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얼마 전 장마 피해가 없는 한 시골로 갔습니다. 폐교 마룻바닥에 텐트 대신 모기장을 치고 아내와 같이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빗소리 들으며 밤을 지낸 맛도 있었지만 하루만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났기에 좋았습니다.

앞의 계획을 취소한 뒤 마음속으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언지 생각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번처럼 긴 장마와 수해를 겪는 일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유가 쉽게 생각나지 않아 과거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아직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비 내리는 마당을 쳐다본 것이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주인집의 광범이와 그의 누이동생, 나와 내 누이 현숙이, 이렇게 넷이서 마루에 나란히 섰습니다. 빗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유리문 너머로 세찬 빗줄기가 모래를 튀기는 화단을 말없이 한참이나 쳐다보았습니다.

이후의 몇몇 장면이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때의 비 맞으며 공치기하기, 방수 안 되는 텐트 밖으로 나와 밤새 비 맞기, 비 오는 날 학교 앞 가게에서 빙수 먹기, 군대 시절 진지 작업을 하던 중 비 내리는 날 2인용 천막에서 물안개 오르는 경치 내려다보기 등등.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속 진 켈리의 춤 장면을 빼놓을 수 없군요. 그렇지만 이런 경험이나 기억 때문에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확증은 없습니다. 그냥 생각날 뿐이지요.

아직까지는 감염병 현상의 세상을 그런대로 잘 지내왔습니다. 그렇지만 바깥 활동 시간이 줄어드니 잊고 있던 행동, 또는 시간 때우기에 가까운 행동을 한 것뿐입니다. 지금의 현상이 더 지속된다면 이제는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심리적 문제 발생을 방지하거나 줄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이제까지 해 보지 않은 일, 창의가 곁들여진 일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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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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