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이긴 정부 있었나?[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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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이긴 정부 있었나?

2020.08.06

건국 이래 나라가 발전을 거듭했지만, 집 문제를 둘러싼 시비와 갈등은 여전히 폭발적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좋은 집의 공급이 부족해서죠.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었다고 하지만 그건 불량주택, 달동네, 멸실 직전의 시골 주택까지 합친 집계일 것입니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특임 교수는 사람들이 벤츠를 원하는 시대에 소형차로 만족할까 하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주택이 비싸다고 주민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도심이건 어디건 이중, 삼중으로 주차한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하고 이면도로마다 길을 잡아먹는 주차가 차량 통행을 막고 있죠. 교육, 교통, 환경 등 정주 여건이 좋아야 하는데 집값과는 무관하게 낙후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재건축을 서울시는 투기 방지라는 갖은 구실로 막아 폭등을 도왔던 거죠. 건축 40년이 지난 4,424세대의 은마아파트가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좋은 집으로 몰려드는 수요로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고강도 처방을 내놓고 청와대 공직자들에게 두 채를 갖지 말라고까지 했습니다. 전·월세 대책으로는 전·월세 신고제와 5% 인상 상한제, 2+2년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다주택자의 재산세, 종부세, 취득세, 양도세 인상도 실행에 옮겼습니다. 부동산법 모두 11개를 최근 전격 통과시켰죠.

당장은 마구 퍼 쓰는 예산을 대줄 세금을 걷는 재미가 쏠쏠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법률로 주한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한국 주택시장의 고유한 전통인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만 남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이미 서울의 전세 거래량은 올 들어 작년에 비해 반 토막 났습니다. 빈자리를 월세와 반전세가 차지했습니다.

어떤 여당 국회의원은 “월세가 뭐가 나쁘냐? 세계적인 대세인데…”라고 강변합니다. 전세는 퇴거 때 반환받는 돈이고 월세는 날아가는 돈인데 그게 같다고 보는 겁니까? 그러니까 ‘국개“, ”국해“라는 조롱을 받는 겁니다.
반전세도 있죠. 만약 8억 원의 전세에 보증금이 3억 원이라면 나머지 5억 원의 월세 환산 금액으로 적어도 월 0.3퍼센트 정도인 150만 원 정도를 월세로 내는 겁니다. 대부분의 가구가 이런 큰돈을 매월 쉽게 지불할 능력이 있을까요? 어쩔 수 없는 고통 속에 내는 거죠. 이런 게 서민 보호 정책입니까?

최근에 나온 8.4 주택 공급 대책을 보면 서울에 13만 채를 공급하고 이중 공공 참여형 주택을 5만 가구 건설한다는데요. 민간 분양에 공공 재건축 개념을 도입해 최고 50층까지 짓게 하고 증가하는 재건축 용적률의 50~70퍼센트를 기부하라는 거죠. 이에 응할 재건축 단지가 거의 없습니다. 한 경제신문의 조사 결과 서울의 초대형 8개, 2만여 가구의 재건축 단지들은 아파트의 층만 높아지고 삶의 질이 떨어질 공공 재건축에 반대합니다. 지자체 의견도 부정적이죠. 한마디로 중앙정부가 책상머리에 앉아 민간과 협의 없이 ‘페이퍼 워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 부문은 건드리지 말고 이번에 발표한, 정부가 소유한 택지 예정지부터 고밀도 임대주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진작 보였어야죠. '집 대통령이 되겠다"던 노태우 대통령은 5년 임기에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신도시에 28만 호를 포함해 총 200만 채를 건설하는 획기적인 공급으로 주거를 안정시켰습니다. 여태까지 뭐 하다가 그 10분의 1도 안 되며, 실현가능성도 불투명한 8.4 계획으로 남은 임기 10여 개월에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경악스러운 부동산 세금폭탄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 집회에서 ‘대통령 의자’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세금 인상은 부동산가격 억제가 목표라고 합니다. 정치의 재미란 세금을 뜯어 쓰는 것이라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증거로 김진애 열린당 의원이 “집값 상승 문제 없어, 세금만 내”라고 강변합니다. 그 세금 뜯는 횡포에 저항이 일어나는 것이죠. 원로 언론인조차 자신도 좋은 단체가 주관하는 조세저항 집회가 열리면 나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세금 폭탄으로 집값이 일시적으로는 잡힐지 모르지만, 풍선효과로 어디선가는 저항의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더구나 연 0.5%라는 초저 기준 금리로 돈이 돈의 값을 잃고 실물 자산을 찾아 마구 떠도는 나라입니다. 서민 금리도 그런가요. 절대 아닙니다. 어제 현대카드 문자를 받았죠. 24개월 카드대출 이자율을 기존의 12.7퍼센트에서 9.52퍼센트로 내린다는 건데 이건 기준금리의 1,900퍼센트입니다. 한국은행은 부실기업 지원하려고 금리 내리나요?

3년 전엔 모자라는 집을 위해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을 권장하더니 이제는 범죄자 취급하여 모든 세제 혜택을 끊으려고 합니다. 주택 매도의 차익을 형사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반자본주의적 주장이 여당 의원의 입에서 나오는 상황입니다. 하기야 북한에 희망의 씨를 뿌려 민주화의 싹을 틔워보려는, 체코 민주화의 대부 바츨라프 하벨 인권상 수상자인 박상학 대표 등 탈북자의 대북 전단 살포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스리자는 뒤집힌 세상입니다.

임대사업자들은 시장에서 부족한 주택 재화를 정부를 대신해 공급함으로써 주거 안정에 기여해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주택 여러 채를 갖고 있다고 하여 그곳에 다 살 수 없습니다. 누구엔가 빌려줘야죠. 그런데 심지어 임대주택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중견 건설업체에까지 종부세 등을 상상 이상으로 올리며 존립 기반을 흔들어 동종 기업들이 사업 철수를 고려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는 겁니다. 가뜩이나 2분기에 3.3퍼센트나 역성장한 경제에 세금을 내려야지, 폭탄을 던지면 경제는 더욱 가라앉을 테죠.

​주상복합이 아니라 주관복합도 만드세요. 각종 공공기관을 재건축해 고밀도화하여 그 위에 사람이 살도록 해보시죠. 넓은 대지에 무슨 골프장처럼 푸른 잔디로 덮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보면 왜 이렇게 넓어야 할까 이유를 모릅니다. 국회가 국회의원 휴식처인가요? 세금폭탄 던지려고 게거품 물지 말고 그 대지를 쪼개 임대주택을 짓자고 하세요. 서울 집값 잡으려고 세종시로 행정수도 옮기고 싶으면 그 어떤 종류의 분원(分院)도 서울에 남기지 말고 100퍼센트 정부의 흔적을 지우시기 바랍니다. 근무자들의 주거와 주택 소유도 세종시로 제한하세요.

경제 대책은 정교하고 유연하게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연착륙하게 해야지, 무슨 군사작전처럼 국회에서 소위도 구성하지 않고 청와대 하명으로 제대로 된 심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고, 세놓지도 말라는 식의 정치공학적 이념으로 통과시킬 사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단순무식한 잣대로 시장이 꺾일 것으로 보는 건 오산입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었다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들의 패망으로 드러났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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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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