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잡것들의 세상’에서 [임철순]


www.freecolumn.co.kr

이 ‘잡것들의 세상’에서

2020.08.03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의 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나는 참 의아했습니다. 저 사람들 분명 잘못했는데, 나라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해 고개를 못 들 텐데 어찌 저리 당당하고 뻔뻔할까. 그들은 그렇다 치고 曺國이 祖國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둔하고 시위하고 검찰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체 뭔가. 내가 뭘 모르고 있거나 잘못 판단한 거 아닌가. 그래서 언론 보도를 고쳐 읽어보고 다시 따져보기도 했지만 내 판단이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조국과 비슷한 사람들이 다른 사건으로, 여러 경로로 잇따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들어서 귀가 괴로운 이름을 나열하면 황운하 최강욱 이성윤 윤미향 추미애 유시민 김어준 손혜원 등등입니다. 이들의 행태는 정도 차가 있지만 ‘내로남불’ 정도의 말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파렴치 몰염치 후안무치의 극치입니다.

최근 대전 중구가 지역구인 황운하 의원이 그 지역 수해를 보도 중인 TV 앞에서 웃는 사진이 문제가 됐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그 모임의 등장인물들을 이렇게 설명했더군요.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받는 분”, “거짓말로 ‘검언유착’ 프레임을 만든 공작정치의 달인”, “조국 일가의 집사 노릇하다가 배지 단 분들”, “세월호를 가슴에 훈장으로 달고 제 권력욕의 자산으로 삼는 분” 등인데, 아주 적절한 소개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4·15총선이 이런 자들을 살판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선거 결과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고 조국을 편들었던 사람들이 다 당선되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내가 대체 뭘 모르고 있을까, 왜 이렇게 난 세상을 읽지 못할까. 국민들의 내밀한 변화와 욕구에 대한 무지가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선거로 심판해야 한다는 글까지 쓴 바 있으니 할 말도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대한민국은 잡것들의 세상이 됐구나’ 하는 것입니다. 예의도 염치도 없고 정의가 무언지도 모르고(아니 정의를 자가용으로 조작하고), 무슨 공선사후(公先私後)니 정직 겸손 이런 말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욕하는 자가 우두머리인 당과, 그 주변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잡것 동아리가 이 나라를 제멋대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난해부터 골몰하고 있는 사업은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며 ‘우리 총장님’이라고 떠받들던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막고 무력화하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쓰고 있습니다. ‘검언유착’이라는 틀을 씌워 한동훈 검사장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쓴 것이 대표적 양태입니다. 억지 수사에 가담한 검사들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입니다.

최근엔 최재형 감사원장을 몰아내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갈파했듯이 최 원장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집중 공세는 박근혜 정부 때 양건 전 감사원장을 물러나게 한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최 원장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에 임명하려는 청와대 뜻을 친정부 성향 인사라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양 전 원장도 당시 청와대가 추천한 위원 후보를 선거 캠프 출신 인사라며 제청을 거부했습니다. 자기들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임기가 보장된 감사원장을 쫓아낸 것이 박근혜 정부였는데,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려 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나 할는지 몰라도 그때 민주당은 "청와대는 감사원에 대한 인사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지요. 이 모든 일의 근본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지만 문 대통령은 입을 닫고 있습니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후보로 제시된 김 전 차관은 2018년 6월부터 법무부의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장관 등과 함께 검찰개혁을 추진하다 올해 4월 퇴임한 사람입니다. 최 원장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직무상 독립을 지키는 분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기 위해 현재도 노력하고 있다”며 “임명권자와 충분히 협의해 제청·임명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감사원 회의에서는 “감사원은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검찰총장도 그렇고 감사원장도 그렇고 제 편으로 생각해 임명했다가 말을 듣지 않자 쫓아내려고 혈안이 된 게 지금 상황입니다. 윤석열 총장의 임기는 2021년 6월, 최재형 원장의 임기는 2021년 12월까지입니다. 어떤 압력을 받거나 비열한 겁박을 당하더라도 결코 사퇴하지 말고 임기를 채우기 바랍니다. 더럽다고 스스로 물러나 자리를 비워주는 것은 잠시 사는 것 같아도 영원히 죽는 일입니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든 잡것들의 무리는 시간이 좀 지나면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이간질하고 패거리질하다가 망가지게 돼 있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 진중권 전 교수 등이 있어 멀미나고 토 나오는 이 시대를 그나마 간신히 버틴다”고 댓글을 쓴 사람도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