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국물의 민족, 한국


메밀면에 살얼음 동치미 육수

입맛 돋우는 여름철 별미

소바 좋아하는 일본도

냉소바 앞엔 `한국풍` 이름달아


냉면·오이냉국·냉콩국수…

한국만큼 다양하고 맛있게

차가운 국물 즐기는 나라 없어


    더위에 약하다 보니 여름 어귀에만 들어도 점심 때는 차가운 국물 음식을 찾게 된다. 면발 끊어 먹기도 귀찮은 더위에 쉽게 툭툭 끊어져 후룩후룩 먹을 수 있는 메밀 면을 품은 냉면은 실로 하늘이 내린 여름 음식이다. 냉면 없이 어떻게 살지? 냉면, 초계국수, 밀면, 막국수, 콩국수, 미역오이냉국, 그리고 겨울에 먹는 동치미까지. 한국인은 가슴속에 불덩이 하나씩을 안고 사나 보다. 유독 차가운 국물 음식이 많다.


 

차가운 국물 음식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경험해봤던 차가운 국물 음식은 주로 스페인에 있었는데, 토마토 파프리카 등 야채를 갈아서 만든 냉수프인 가스파초와 여기에 빵까지 넣어서 갈아낸 살모레호, 그리고 아몬드와 마늘을 함께 갈아서 만든 냉수프인 아호블랑코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음식들은 신선한 재료들을 단지 갈아서 만든 것으로 일종의 `액상 샐러드`에 가깝고 주로 식전에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가장 비슷한 음식은 아마 녹즙일 것이다. 잘 선별한 뼈와 고기로 오래 끓여낸 육수, 수개월 발효 숙성한 동치미를 오묘하게 배합해 시원함과 감칠맛을 동시에 폭발시키는 냉면 육수의 정교함과 비할 바는 아니다.




옆나라의 차가운 국물 음식을 살펴보자. 1990년대부터 국내 중국집에 등장한 `중화냉면`은 중국 어딜 가도 찾을 수 없다. 연변냉면이 유명하긴 하지만 어떻게 봐도 한민족의 음식 혈통을 이어받고 있고 갖은 해물과 땅콩소스를 넣어 먹는 중화냉면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이 중화냉면의 기원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어쨌든 중국에는 없는 음식이다.


일본에는 차가운 국물에 면을 담가 먹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소바(そば)의 수프는 우리 냉면처럼 국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 면에 간을 더하는 용도다. 일반적인 소바보다 덜 짠 국물이 그득하고 갖은 고명과 살얼음이 낀 냉소바는 일본에서 `한국풍`이라고 이름 붙인다. 일본식이 아니다. 그리고 물에 밥을 말아 먹는 오차즈케(お茶漬け)는 국물 요리라기엔 무리가 있고, 본디 오차는 따뜻한 차를 뜻한다.


일본에 냉중화면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이름에 중화(中華)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만 차가운 면을 간장과 참깨소스를 섞은 소스에 담가 먹는 일본 음식이며, 국물이 주가 되는 음식은 아니다. 일본에서 `냉면`은 기본적으로 한국 음식이라 인지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각 지역 이름을 붙인 냉면을 지역 특산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근원을 찾아가면 한국 냉면이 나타난다. 판단의 근거는 명쾌한데 김치, 깍두기 또는 이와 비슷한 매운 채소류를 고명으로 올리거나 함께 낸다. 교포 1세가 냉면 레시피를 일본으로 전달한 경우가 많다.


모리오카 냉면의 원조는 한국/Live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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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모리오카 냉면은 역사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함흥 출신 교포 양용철 씨가 어릴 적 먹던 냉면을 구현한 사례다. 보통 함흥식 냉면을 비빔으로만 알고 있지만 양씨는 물냉면을 흔히 먹었다고 했고, 이를 모리오카에서 구현했다. 일본 각지에서 우리에겐 잊힌 예전 냉면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일본 각 지역색과 결합해 변형된 냉면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모리오카 냉면과 벳푸 냉면은 이미 지역 특산 음식이 됐고, 이제는 일본풍 냉면(和風冷麺)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냉면이 나오고 있지만 레시피를 보면 한국 영향이 분명하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 옛 냉면을 찾으러 일본에 가야 할 판이다.


더운 날 차가운 국물 음식을 먹는 건 우리에겐 상식인데, 대부분 문화권에서 차가운 음료는 마셔도 차가운 국물 음식을 먹는다는 상상은 못하는 것 같다. 차가운 국물 음식의 종주국 대한민국. 동치미를 담가 먹는 우리 식문화가 이 종주국 지위의 출발점에 있다. 여름엔 역시 차가운 국물과 툭툭 끊기는 메밀 면이라는 진리를 널리 전파해주고 싶네. 아, 얼음이랑 꾸덕꾸덕하게 비벼놓은 새하얀 콩국수도 빼면 안되는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겸

[문정훈 푸드비즈니스랩 소장]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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