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정도를 걸어야 나라가 바로 서죠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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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정도를 걸어야 나라가 바로 서죠

2020.07.10

얼마나 정권에 부담이 되었을까요? 언제는 “우리 총장님”, “검찰개혁 최적임자”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해달라”더니 표변했습니다. 문 정권의 기획자라는 조국은 ‘검찰 파쇼’라고 극언했고 조국 사건에 연루된 최강욱 의원은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는 윤석열 부부가 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검찰총장 공격 최전선에 선 ‘폭언의 여왕’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말을 잘라먹는다, 이런 검찰총장은 처음 보았다”며 작년 7월 25일 취임해 임기가 1년도 더 남은 사람을 품위 없이 몰아쳤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 싫은가요?  2013년 10월 그의 국정감사 발언에 감명을 받은 듯 조국 교수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의회 독재를 막는 장치라고, 야당 때 외치던 사람들이 정파를 초월해 국회를 운영하라는 ‘무소속 국회의장’의 정신을 무시한 박병석 의장의 협조로 불문율의 야당 몫이던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빼앗고도 불안한가요? 김명수 사법부가 고분고분해도 안심이 안 되나요? 추 장관이 민주당 대표 시절에 우파의 소행으로 보고 고발한 8,840여만 건의 댓글 여론조작, 드루킹 사건의 최초 ‘발굴자’로 대통령의 최측근 김경수 경남 지사를 감방에 처넣은 ‘과오’를 만회하려고 정권과 교감하나요?  

권부와 연루된 추한 사건이 즐비합니다. 자녀 입시 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건의 조국과 정경심 부부, 울산시장 선거의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송철호 울산 시장, 단수 공천 의혹의 추미애, 유재수 비위 무마 의혹 백원우, 투자자들에게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준 라임과 옵티머스 사모펀드 의혹도 있습니다. 추 장관은 아들의 카투사 시절 미복귀(탈영) 의혹과 압력 행사 의혹에 이어 중3 때 에티오피아 의료봉사 개입 여부도 논란 중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현안은 총선 소송이죠. 4·15총선은 139건의 소송이 제기돼 20대 13건의 10배가 넘었고 원고인 후보자만 26명입니다. 기독자유통일당은 아예 총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죠. 선거 소송은 결과를 조속히 확정하기 위해 제소 기간이 30일로 짧고 법원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불법 당선자를 빨리 무효화하자는 법의 정신이죠. 선관위는 사람들이 선거 결과에 이의를 달자, 불평불만 하지 말고 소송을 내라고 했었습니다. 대법원은 뭘 망설입니까?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과거 재검표는 두 달 안에 끝났는데 4·15총선은 아직 한 곳도 안 했다. 조속한 재판과 재검표를 요구하는 민심이 커지고 있고, 시간을 끌수록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만 증폭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도권 사전 선거는 63대 36의 여야 득표율에, 서울은 424개 모든 동에서 여당 사전투표 득표율이 지역 특성을 무시하고 당일 득표율보다 평균 10퍼센트 이상 높다는 통계가 나왔죠. 법률이 정한 바코드 아닌 QR코드를 왜 썼는지도 의혹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정한 선거가 기반입니다. 60년 전 1960년 3·15 부정선거로 내무부 장관 최인규와 이에 항거한 4·19 혁명의 발포 명령자로 법무부 장관 홍진기가 사형선고를 받고 최인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홍진기는 사면되어 중앙일보를 창간하죠.

윤 총장을 찍어내면 다음은 아마 추 장관과 잘 통하고,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인 이성윤이 될 테니까 안심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국민이 지켜봅니다. 말과는 달리, 살아있는 권력이 진실의 압박이 무서워서 수사를 차단하는 것이냐고요. 그간 각종 권력형 사건을 수사하던 간부 검사들을 각지로 좌천시켜 수사팀을 공중분해 했죠. 그러니 검찰 간부들이 뭉쳐서 총장을 성원하는 겁니다. 이게 개혁이냐고요. 추 장관이 핏대 올리며 책상을 쳐도 추미애보다 윤석열이 옳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그렇게 검찰에 개입하고 싶으면 법을 고쳐서 미국처럼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하시던가요. 법조인 출신의 여당 조응천 의원은 "추미애 장관 거친 언행은 경험 못 한 낯선 광경이며 말문이 막힌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추 장관은 ‘해방 후에도 검찰이 일제 경찰을 불러 신고' 운운하며 근거가 아리송한 반일적인 프레임을 검찰에 씌웠죠. 옛날 일본이 아닙니다. 일본 검찰의 활약상을 볼까요. 동경지검 특수부는 1976년 의원 100여 명을 거느린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의 맹주 다나카 가쿠에이를, 총리 시절 미 록히드 항공에서 5억 엔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전격 체포했습니다. 1988년엔 상장 직전 주식이 정·관·재계에 뇌물로 제공된 리쿠르트 사건을 파헤쳐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를 사퇴시켰죠. 그 특수부는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부 장관과 그 부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이 작년 총선 때 각각 지방의원 매수자금 2,400만 엔과 선거운동비 170만 엔을 불법 지출한 혐의로 지난 6월 체포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안리 후보의 유세 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가와이 부부가 최측근이라는데 ‘마음의 빚’ 같은 건 없었나 봅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수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가와이 장관은 혐의가 불거지자 바로 사퇴했습니다.

1988년 12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유엔총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에게 권리를 거부한다는 것은 달성된 균형조차 위태롭게 한다. 선택의 자유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보편적인 원칙이다.” 이것이 소련의 붕괴, 동유럽 민주화를 잇는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입니다. 유재수 수사 때는 인권과 법 적용을 논의하는 검찰수사자문단을 권장하고, 윤 총장 측근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검사장과 채널 A기자가 연루된 의혹에는 수사 자문을 말라고 수사 지휘 하면서 이성윤 서울지검장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버티던 윤 총장은 강력하게 압박하는 추 장관의 지휘를 받아들였습니다. '나쁜 선례'라는 검사들의 반발도 일고 있지만 다른, 그 자리에서 더 큰 권력형 범죄 수사를 지휘하기 위한 전략적인 후퇴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요? 길고 캄캄한 터널인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로의 후진인가요? 한 일간지 칼럼니스트는 ‘대한민국은 文主공화국’이라는 기사 댓글을 읽었다고 썼습니다. “모든 권력은 문재인에게서 나온다”는 거죠. 시간은 어느덧 3년이 더 흘러 여야 모두 후임을 노리는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습니다. 부메랑은 던진 대로 돌아옵니다.

권력이 법의 적용에 개입하지 말라는 건, 법이 정도를 걸을 때만이 한 나라의 역량이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문 정권 이전엔 그렇게 잘 굴러왔다고 봅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역대 대통령들은 최측근이 부패에 구속되기까지 했으나 노골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민주국가였죠. 난잡한 연줄과 정실, 코드 인사로 난맥상을 보이는 국정 운영은 선진국의 길이 아닙니다. 요즘 한국, 인도, 호주, 러시아 등의 영입설이 나오는 G7의 원래 국가들은 정도(正道)의 전통을 살린 역사 깊은 나라들입니다. 흉내를 내려거든 겉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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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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