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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끼셔야지

2020.07.08

전에 비슷한 소재로 쓴 칼럼(2018. 6. 19) 기억 못 하시겠지요? 이사 후 집이 좁아 책을 정리해 버리던 중 만난 파지 수거 아저씨와 나누었던 이야기였습니다만. 글 제목이 ‘책은 버리셔야지’였죠. 차츰 이삿짐 정리가 돼 책 버리는 일이 뜸한 어느 날이었어요. 연세가 좀 돼 보이는 아저씨가 요즘은 왜 책이 안 나오느냐고, 그래도 근수가 나가는 책이 파지 분야에서는 ‘상등품’이어서 그나마 돈이 되는데 아쉽다고 내게 불평 겸 푸념을 했더랬죠. 이 글은 그러니까 ‘시즌 2’에 해당합니다. 당시 오갔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여기 이사 온 분이쇼?”
  “아, 예. 고생 많으십니다.”
  “책 버리신 분 맞나요?”
  “아, 예. 그렇습니다만.”
  “근데 요샌 책이 왜 잘 안 나와요?”
  “아, 예. 대강 정리가 끝나서요.”
  “그래도 책은 버리셔야지. 다른 건 몰라도.”
  “예? 아니, 무슨 말씀을?”
  “그나마 책이 돈이 좀 되거든요.”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혼잣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도 먹고살지.”

그 일이 있고 난 후 ‘책의 운명’을 생각하며 자괴감도 들고 씁쓸한 사념이랄까, 잡념에 사로잡혔지요. 조금은 비감한 느낌도 들고요. 내다버린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되는 책의 기구한 운명에 대하여. 지식과 지성, 지혜의 상징인 책이 물질과 돈, 일상의 삶에 저당잡히다니! 그렇게도 낮추어보려 했던 물질에 헌신하는 책의 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에 더해 그렇게 또 역설적인 삶을 꾸려가는 이웃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등이 굽고, 앞니가 빠졌으며, 듬성듬성 수염이 돋은 아저씨의 인상착의에 대해서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저씨는 한쪽 눈이 의안(義眼)이었어요. 아저씨의 모습은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야기 속 망태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한쪽 눈알을 요술처럼 뺐다 꼈다 한다는 불구의 형상을 떠올린 것이에요. 상상 속 망태할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습니다.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들과 개가 가장 무섭다는 말도 있잖아요.

한동네에 살다보니 파지를 수거하고 쏘다니는 아저씨와 이따금 조우했습니다. 그렁저렁 살가운 정도 조금은 들었지요. 알고 보니 아저씨는 지역 상권을 관장하는 ‘셀럽’이자, 새벽부터 열심히 일을 하는 ‘근면성실남’이었습니다. 한번은 동네 산책 중 그럴싸한 양옥집을 지나는데 낯익은 손수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저씨의 손수레였지요. 수레 위 벽에는 휘갈겨 쓴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촉수엄금. 주인 있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수레를 대하니 조금은 반갑기도 했답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비좁은 집에 감당할 수 없을 만치 많은 책은 적지 않은 골칫거리였습니다. ‘책이 사는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불평 섞인 핀잔도 핀잔이려니와, 책 모둠을 레고 블록처럼 침대 밑에 매트리스 대용으로 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요.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며 어영부영 집안이 정리 되고 더 이상 책을 버릴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그 아저씨와 만났습니다. 다음은 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간추린 것이에요. 뜻을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한. 그러니까 ‘병 받고 약 받은’ 이야기? 

  “이제 책은 완전히 끝물이구만?”
  “더 이상 버릴 책이 없어서요.”
  “허, 참. 그러게 내가 뭐랬소?”
  “예? 그 무슨? 아, 그러니까….”
  “저런, 그러게 책은 아끼셔야지!”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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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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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gi, conpaper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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