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더블로' 脫원전 ㅣ 탈원전 쌈짓돈이 된 '5조 전력산업기금'


[데스크에서] '묻고 더블로' 脫원전


 

최현묵 산업1부 차장


    지난 1일 오후 5시 20분쯤 산업통상자원부발로 불쑥 보도자료가 하나 나왔다. 2일 0시 관보에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이 입은 손실을 보전해주는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게재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에는 시행령 개정안을 알릴 때 1주일 전쯤 미리 사전(事前)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번엔 기습적으로 진행했다. 산업부 담당자는 "단순 행정착오"라고 했지만, 전에 없는 짓을 할 때는 켕기는 게 있기 마련이다.


현 정부는 탈원전과 관련한 사안은 성역(聖域)처럼 다룬다. 탈원전 여파로 한국전력 경영이 악화됐다거나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된다는 보도가 나오면 득달같이 해명자료를 낸다. '탈원전으로 인해 경영이 악화된 게 아니며, 원전산업 생태계는 건강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런데 이번에 탈원전으로 입은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자백'을 하면서는 시점을 최대한 늦췄다.


왜 갑자기 탈원전 손실을 인정하고 나선 걸까. 산업부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한수원에 대한 손실보전을 해주기로 했는데, 그동안 국회 법통과를 기다렸으나 입법이 늦어져 이번에 시행령 개정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2년 7개월을 저 이유 때문에 질질 끌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에너지업계에서 "감사원이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자 탈원전 담당자들이 책임질 게 두려워 뒤늦게 나선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게 더 설득력이 있다.




발표 방식도 개운하지 않다. 탈원전 손실 보전이라는, 어쩌면 정부 정책 실패를 자인하면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될 수 있는 국면.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와서 배경 설명을 하고,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 했어야 정상이지만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다. 세부 내용도 엉성하다. 정부는 한수원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한 월성 1호기 잔존가치를 보전해 주겠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적자가 심해 문을 닫는다"면서 가게를 뺐는데 건물주는 "가게 고치는 데 든 비용을 보전해주겠다"고 하는 꼴이다.


결국 후유증은 국민이 떠안게 됐다. 이번 손실 보전 재원(財源)은 국민이 내는 전기료에서 3.7%씩 떼어 만든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면 정부가 '피해자'인 국민에게 양해라도 구해야 정상인데 이 정부는 미안하지도 않은 듯하다. 사실 지금은 저유가 시대라 연료비 하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내릴 수 있는 환경. 그런데 탈원전 탓에 한전·한수원 경영 실적이 악화하면서 전기료 인하는 꿈도 꿀 수 없다. 세계 정상급 원전업체 두산중공업은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수많은 관련 종사자들이 사지(死地)를 헤매고 있다. 그래도 이 정부는 탈원전에 대해선 '묻고 더블로 가'만 외치고 있다. 이래저래 국민만 고달프다.

최현묵 산업1부 차장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6/2020070600001.html


탈원전 쌈짓돈이 된 '5조 전력산업기금'


정부, 한수원 손실 메우려 시행령 고쳐

필요할 때마다 기금 끌어써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의 손실을, 전기료에서 떼어내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으로 보전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 공약으로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인 정책 때문에 발생한 손실을 결국 전기료로 충당함으로써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력산업 발전과 전력 수급 안정성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전력기금을, 정부는 '쌈짓돈' 쓰듯 충분한 논의도 없이 입맛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력산업기반기금 규모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 등 에너지 전환에 따른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 비용 보전을 추진하기 위한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이번엔 개정된 시행령 34조에는 에너지정책 이행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인정하는 전기사업자의 비용 보전을 위한 사업에 전력기금을 쓸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탈원전으로 인한 손실을 전력기금에서 메우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설비 개선과 신규 원전 4기(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에 투입한 금액을 보전받을 수 있게 됐다. 한수원은 공식적으로 비용 산정을 안 했지만, 내부적으로 월성 1호기 설비 보강에 투입한 5925억원과 신규 원전 4기의 부지 매입 비용 1000억원 등 최대 7000억원 정도를 계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5조원 육박 전력기금, 탈원전 비용으로

전력기금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처음 설치됐다. 당시 한전이 6개 발전 자회사를 분리하는 등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기존 한전이 담당했던 공적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공적 기금'이다. 전력기금은 국민이 매달 내는 전기요금의 3.7%씩 부과해 적립한다. 사실상 모든 국민이 내는 '준조세'다. 징수는 한전이 하지만, 실제 기금의 사용처를 계획하고 운영하는 건 산업부다.




2015년 2조3980억원이던 전력기금은 작년 말 기준 4조4714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는 5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거둬들인 돈에 비해 실제 사업비 지출이 적어 꾸준히 규모가 커진 것이다. 산업부는 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 지원, 전력 공급 기술 개발,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사업 등에 이 돈을 써왔다.


정부가 원전 감축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메우기 위해 전력기금을 쓰는 건 당초 기금 조성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회 입법이 아니라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없던 근거를 만드는 건 앞으로 언제든 정부 뜻대로 시행령을 고쳐서 기금을 쓰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이번 시행령 개정은 탈원전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걸 정부가 자인한 셈"이라며 "이 비용을 국민의 전기료로 마련한 전력기금에서 충당하겠다는 건, 결함이 있는 물건을 팔아 놓고그 결함에 대한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 쌈짓돈 된 국민 전기료

정부의 전력기금 사용은 그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산업부는 2031년까지 총 1조6000억원이 투입되는 한전공대 설립에 전력기금을 끌어다 쓰는 안을 검토 중이다. 탈원전 등으로 한전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자 전력기금 투입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올해 지출하는 전력기금 2조354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조2220억원은 신재생에너지 보급·금융·기술개발 지원에 쓰인다.


정부는 "기금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재원이 필요한 곳곳에 쌈짓돈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올 연말이면 5조원에 이르는 전력기금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기업불편·민원 야기 규제 운영실태' 감사 결과에서 "부담금(전력기금) 요율을 현재보다 0.2%포인트 인하하면 기금 수지에 큰 영향 없이 기업·국민의 부담금 납부 부담이 연간 1183억원 줄어들 것"이라며 "여유자금이 과도히 누적되는 전력기금 부담금 요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코로나 사태로 기업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전력기금 요율을 낮춰달라'는 산업계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금 지출을 늘리고 있을 뿐 요율 인하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전기사업법 51조 6항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력기금이 축소되도록 노력하고, 이에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현재 보류 상태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사업이 앞으로 최종 종결된다면 관련 매몰 비용 역시 전력기금에서 끌어오게 될 것"이라며 "공적 기금을 정책 실패에 대한 비용 보전 수단으로 활용하는 안 좋은 선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순흥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2/2020070204633.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