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엔지니어 위상, 엔지니어링 수준.


[기고] 대한민국 엔지니어 위상, 엔지니어링 수준

이석종 구조기술사


    노후  시설물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기존시설물을 보강할 때 필요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노후시설물의 안전 관한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노후시설물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도로 교량 중 30년 이상 된 노후시설물의 1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0년대 이후에 완공된 기반시설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노후 시설물 비율은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노후시설물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보강 설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격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감사를 통해 서울교통공사가 과다하게 내진보강을 했다면서 교통공사 담당자들을 징계하고 설계자들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는 감사의견을 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의견은 '보강할 필요가 없는 데 보강했다'는 것이고, 설계자의 주장은 '설계기준에 철근 상세를 지키도록 되있다'는 것이다.




감사와 설계자가 충돌한 대목은 '연성보강'에 대한 판단이다. 설계자들은 설계기준에 나와있는 기준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고 감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양쪽이 충돌한 이유는 이 규정이 힘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진력에 의해서 철근의 배근 여부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기준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콘크리트기준에는 단부구역에는 부재력과 관계없이 철근상세를 지키도록 되있다. 일종의 최소기준 같은 개념이다.


문제는 이 최소기준을 기존 구조물을 보강할 때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다. 서울시 감사 의견은 설계기준은 신설구조물에 적용하는 것이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설계자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문제는 설계기준을 기존 구조물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설계기준이 구조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봤을 때 지켜야 된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에 이미 만들어진 구조물에 적용이 힘들다면 일부 규정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의 기준은 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국토부장관이 고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기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현재 보강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 즉 기존 구조물의 상태에 따라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보강을 할 것인지? 보강을 통해 앞으로 몇년을 더 쓰려고 하는 것인지 등 보강의 방법과 보강의 목적 등이 명확하게 제시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성능개선 또는 보강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설계기준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엔지니어들의 의견이다.


한편 기술적으로 보강에 대해서 '기준' 수준으로 규정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설계기준은 새로운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라서 설계기준이 가정한 그대로 시공을 하면 설계기준이 추구하는 안전률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구조물을 보강하는 것은 기존구조물의 결함, 노화 등 변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판단'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시설물의 보강 관련한 규정들은 매뉴얼, 요령, 가이드라인 등으로 나와 있다. 예를 들어 교육부는 '학교시설 내진성능평가 및 보강 매뉴얼'을  운용하고 있다. 행안부도 내진보강사업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운용중이다. 시설안전공단도 '내진성능평가 및 향상요령'을 운용중이다.  


문제는 내진과 관련된 각종 법률 및  가이드라인, 요령 등에는 대부분 설계기준들을 참조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계기준의 어느 조항을 참조하고 어느 조항은 참조하지 않다도 된다는 식으로 기술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보강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설계기준 전체를 만족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부는 만족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는 설계자와 발주자가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설계자와 발주자는 이런 기술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발주자는 감사의 대상이고 설계자는 벌점이나 행정처분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엔지니어링 판단의 권한이 없다보니 발주자가 각종 심의기구와 자문기구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 지하철 내진보강의 논란을 보고 '명확한 보강설계기준을 만들면 되겠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주장은 엔지니어링을 '흑과 백' 또는 'OK와 NG'의 논리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다.


엔지니어링은 OK와 NG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판단을 하는 과정 그 자체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고 결국 엔지니어가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지 기준이나 위원회가 사회의 안전을 책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엔지니어들은 '엔지니어링 판단'의 주체가 아니었고 전문가보다 훨씬 높은 법적 지위를 가진 '기준'을 따르도록 강요받아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번 서울지하철 내진보강 감사는 설계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엔지니어링 판단'을 했다. 


이번 건은 202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엔지니어의 위상과 엔지니어링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이석종 

구조기술사

본지 발행인

구조기술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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